2002한일월드컵은 유럽이나 미국 대륙을 벗어난 제3세계에서 열리는 최초의 대회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성공해서 세계 축구무대에 한국의 저력을 알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전은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 편성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폴란드보다 미국을 첫승 제물로 삼았었다. 그러나 계속된 평가전을 통해 각팀의 전력이 노출되면서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이 한국의 ‘복병’으로 등장한 것.
미국은 영국의 전통 축구를 구사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은 유난히 영국 스타일에 맥을 못춘다. 체격이 좋고 스피드로 무장한 선수들이 미드필더진을 압박하며 공격을 가해온다면 역습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의 정신력을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것도 상대의 예상치 않은 역습에 침착하게 대응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하기론 미국전에선 골이 많이 터질 것 같다. 최소한 2-2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히든카드로는 좋은 체격과 터프한 축구를 구사하는 수비수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최용수가 적임자다. 허리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회복만 된다면 최용수를 원톱으로 내세워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유상철은 앞뒤로 왔다갔다하면서 몸으로 때울 것으로 예상되고 윤정환은 큰 체격의 미국 선수들 틈새에서 기습적인 전진패스로 결정적인 한방을 찔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90분 풀타임은 무리가 있고 전반이나 후반에 교체 투입되면서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세네갈의 개막전에서 디오프가 골을 성공시킨 장면을 기억하길 바란다.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붙은 결과 앉아서 골을 성공시키는 이색 장면을 연출했다.
골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선 힘든 슈팅이다. 우리 선수들도 심판의 휘슬이 울릴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말고 계속 액션을 취해야 한다. 비벼서라도 들어가면 골은 골이다.
만약 한국이 폴란드, 미국전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낸다면 한국의 월드컵 분위기는 일찌감치 파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한국팀이 한 게임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16강에 진출하기만 한다면 순풍에 돛단 듯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선 일단 온 국민의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을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층 부담이 덜할 것이다. 어차피 우승이 목표가 아니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8강에서 맞붙게 될 팀으론 이탈리아가 유력한데 세리에A에서 활약중인 안정환이 ‘정보원’으로 나서며 쏠쏠한 도움을 선사한다. 어차피 이기든 지든 50:50 싸움이 아닌가. 토너먼트의 매력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8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언컨대 16강보다는 오히려 8강이 훨씬 쉽다. 커트라인만 통과한다면 말이다.
▲김덕기(스포츠투데이 축구대기자)
미국이 D조의 다크호스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가 상대하기에 제일 껄끄러운 대상이다. 세계축구는 유럽과 남미로 양분되지만 정확히 얘기해서 유럽과 라틴축구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틴축구는 힘과 체력을 기본으로 두고 있고 유럽은 전술과 전략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미국은 북중미임에도 정통 유럽 축구를 구사한다. 하지만 유럽 스타일과 라틴축구를 혼합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미국의 아레나 감독은 겉으로는 태연자약하지만 사실은 한국전에 대비한 준비를 상당히 많이 했을 것이다. 미국의 파상 공세에 맞서 한국이 강한 수비와 가공할 공격으로 초장에 미국의 수비진을 뒤흔든다면 의외로 승부가 쉽게 갈릴 수 있다.
1승1무1패가 한국팀의 16강 진출 성적표다. 골 득실에 따라 16강에 오르고 못오르는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미국전은 희비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미국전만 잘 해낸다면 8강은 토너먼트 경기라 무승부를 염두하고 90분간을 버틴다면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이탈리아든, 크로아티아든 상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미국전에서 승기를 잡아야만 이런 ‘호사스런’ 상상도 가능한 것이다.
▲신문선 (SBS 해설위원)
D조에서 맞붙는 3팀의 전력이 한국보다 월등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조별리그 예선전을 보면 개막전을 제외하곤 별다른 이변없이 예상된 경기 결과가 나왔다. 객관적인 전력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데이터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 출전했던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소매 걷어붙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띄우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평가전에서 드러났듯이 가파른 전력 상승으로 D조 상대팀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미국팀의 진짜 실력을 체크할 수 있겠지만 한국팀은 역대 최상의 컨디션으로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틈새를 노출했다가는 상당히 고전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런저런 시나리오로 미국전 비책을 강구하는 동안 미국도 똑같이 한국전에 대비해 다양한 작전을 수립하며 한국을 무너뜨릴 생각에 여념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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