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록의 히딩크 감독은 조심스레 가꿔온 한국의 16강 진출 꿈을 미국전 승리를 통해 보다 현실 에 가까운 일로 만들 수 있을까. | ||
6월10일 오후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는 한국축구 1백년 역사에 최고의 축제가 예고되고 있다. 한국의 제물은 바로 미국. 양팀은 월드컵 조 편성 직후 두 차례 맞붙어 1승1패를 기록했다.
2001년 12월 평가전에서는 한국이 1대0으로 이겼고, 2002년 1월 북중미골드컵에서는 미국이 2대1로 승리했다. 그렇다면 대구에서는?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 뛰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그룹별 예선 결과를 놓고 볼 때 2002한일월드컵의 최대 변수는 날씨와 체력이다. 노장의 관록은 신예의 패기 앞에 판판이 깨지고 있다. 후반전에 힘이 떨어지는 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프랑스가 세네갈에 무너진 것은 노쇠한 수비진 때문이었으며, 우루과이가 덴마크에 패한 결정적 원인도 뒷심 부족이었다.
6월10일 대구의 날씨는 어떨까. 기상청이 지난 20년간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평균기온 27.3도, 습도 67.8%로 나왔다. 한마디로 끈적끈적한 날씨다. 경기장소는 한국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고, 경기시간은 한낮의 열기가 살아있는 오후 3시30분이다.
물론 지난 31년간 6월10일에 대구에서 비가 내린 확률도 38.7%(12차례)에 달한다. 하지만 평균 강수량은 6mm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수중전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불쾌지수가 높은 상황에서 경기가 열린다는 뜻이다.
미국팀 아레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체력전으로 가면 한국에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수중전이라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선수들도 무더위에는 잘 적응돼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가마솥 더위 속에서 진행된 94미국월드컵에서 선전했다. 당시 미국은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과도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미국의 더위와 한국의 더위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은 건조한 반면, 한국은 후텁지근하다. 한낮의 기온만 따지면 미국이 높겠지만, 체력소모라는 측면에서 분석하자면 한국이 더 힘든 조건이다.
▲ 아레나 미국 감독 | ||
대구에서 한국은 홈 관중들의 뜨거운 성원을 등에 업고 경기를 치르는 반면, 미국은 90분 내내 야유와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스탠드를 가득 채운 6만6천명의 관중들은 지난 겨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인들을 크게 실망시킨 미국 쇼트트랙 선수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경기력은 반감되기 마련. 세계 최강 프랑스도 5월26일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혼쭐이 났다. 프랑스의 로저 르메르 감독은 “한국 축구팬들의 뜨거운 함성에 놀랐다. 어느 팀이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을 만나면 애를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기장이 축구전용구장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도 않다. 결국 한국은 심리적으로 미국을 압도하는 가운데 경기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전술적 측면에서는 양팀이 좀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한국과 미국은 모두 수비보다는 공격이 강한 데다, 상대를 잡지 못하면 16강 진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불꽃 튀는 난타전이 예상된다.
일단 미국은 한국의 스리톱에 대비한 포백 라인으로, 한국은 미국의 투톱을 막기 위한 스리백 포메이션으로 맞설 것이다. 수비의 총 지휘자는 한국의 홍명보와 미국의 제프 아구스. 두 선수 모두 30대 중반의 노장이다. 하지만 경기운영 능력과 리더십에서 홍명보가 앞선다.
미드필드는 미국이 다소 유리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어니 스튜어트, 클라우디오 레이나, 코비 존스, 랜던 도너번 등 힘과 기술을 겸비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기동력과 파워로 열세를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히딩크 감독은 전반전에는 파워가 뛰어난 선수들을 투입해 체력전을 펼치고, 후반전에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 지난해 12월 제주 서귀포구장서 열린 한국과 미국의 평가 전에서 프리킥을 허용한 한국팀 선수들이 벽을 쌓은 채 공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전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하면 승산은 한국에 있다는 전망이다. | ||
승부의 최종 변수는 양팀 감독의 머리싸움이다. 일단 관록에서 히딩크 감독은 아레나 감독을 압도한다. 네덜란드 대표팀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팀을 이끌던 명장답게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1년 만에 무섭게 바꿔놓았다. 4년째 미국대표팀을 맡고 있는 아레나 감독도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지만, 월드컵 경험이 없다는 게 큰 부담이다.
축구전문가들이 “미국전 승패는 히딩크에게 달렸다”고 보는 것도, 히딩크의 경륜을 중시한 평가다. 즉, 히딩크의 훈수 실력에 따라 한미전의 장기판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이 미국을 꺾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취골을 따내야 한다. 홈팀이 선취골을 얻으면 홈 어드밴티지를 무한대로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첫 골을 내주면 홈 어드밴티지가 오히려 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이 초반부터 미국 선수들을 거칠게 압박하고 먼저 득점까지 올린다면 승산은 80% 이상이다.
한국 선수들은 결전에 앞서 역대 월드컵이 남겨준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월드컵에서는 대충 하는 게임이 없다.’ 미국은 프랑스보다 약하지만, 프랑스보다 더 강하게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략은 이미 나온 셈이다. ‘물에는 물, 이에는 이’가 바로 미국전의 필승전략이다.
정순영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