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 콜라텍이 최근 노인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이들이 찾는 클럽에서는 혼자, 둘이 혹은 여럿이 춤을 추지만 노인 전용 콜라텍에서는 남녀가 짝을 정해 춤을 춘다.
“춤 한 번 추실까요?”
한 남자가 혼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부끄러운 듯 남자의 손을 잡고 따라 나가 춤을 춘다. 이는 제기동 소재의 한 노인 콜라텍을 찾은 60~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음 만난 상황이다.
기자는 이런 기본 정보를 기반으로 제기동역을 찾았지만 노인들이 자주 찾는 콜라텍의 위치까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 상인들과 행인들을 상대로 수소문해 찾아갈 계획이었는데 놀랍게도 상인들은 대부분이 콜라텍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제기동역에 도착한 지 채 10분도 안 돼 A 콜라텍이 있는 건물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오후 1시께 A 콜라텍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외부에서 어떤 휘황찬란한 광고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하 1층으로 분주히 걸어 내려가는 노인 여러 명을 본 순간 그곳이 콜라텍임을 직감했다. 건물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콜라텍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보답하고자 평일 입장료가 무료’라는 문구의 ‘오픈 3주년 이벤트’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또 ‘반바지를 입은 자, 슬리퍼 신은 자는 다른 손님한테 혐오감을 줄 수 있어 강제 퇴출’이라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의상 등에 일정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주로 찾는 홍대, 강남 클럽이 연상되기도 했다. 클럽에서도 슬리퍼를 신거나 혐오의상을 입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벤트 덕분에 무료로 입장을 한 후 마주친 곳은 물품보관소였다. 이곳에서는 입고 있는 외투와 소지하고 있는 가방을 500원을 주고 맡겨야 한다. 짐을 맡기고 보관증을 받는 모습 역시 홍대클럽에서의 상황과 흡사했다. 이미 많은 짐들이 바구니에 담겨져 있었다. 물품 보관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입장하는 노인들과 ‘오랜만이다, 아프다더니 다 나았냐’는 등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노인들은 이들에게 시장에서 사온 한약재나 스카프를 선물하기도 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다.
짐을 맡긴 뒤 안 쪽을 돌아보니 전통차와 커피를 파는 찻집, 기본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각종 술안주를 파는 실내 포장마차와 매점이 펼쳐져 있었다. 여러 공간 가운데 한 군데에서는 여러 가지 차를 파는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식사 및 술안주를 팔았다. 벽면마다 음식 메뉴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빈 의자와 빈 테이블뿐이라 아직 노인들이 올 시간이 아닌가 생각하며 희미하게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랑의 트위스트’가 흘러나오는 무도회장은 콜라텍 안쪽에 있었고 그곳에 수백 명의 노인들이 짝을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춤을 관찰하고 있자니 약간 어색한 점이 있었는데 그들의 춤사위가 매우 느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춤은 파트너와 손을 잡고 천천히 제자리를 돌거나 천천히 일정 범위를 걷는 모습에 불과했다. 활기는 없어보였지만 오랜 시간 파트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춤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 할아버지들은 춤을 추고 있는 상대가 아닌 주변을 탐색하는데 집중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클럽과 마찬가지로 노인 콜라텍에도 ‘패셔니스타’들이 있었다. 중절모는 기본이었고 정장을 빼입은 할아버지들이 있는가하면 진주목걸이와 진주귀걸이를 착용한 투피스 차림의 할머니들도 여럿 보였다. 그중에서도 색동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온 할머니는 한눈에 띄었다. 뛰어난 비주얼을 자랑하는 패셔니스타들에게는 춤을 청하는 이성이 끊이지 않았다. 한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 때 거절했던 할머니가 베이지 색상의 양복을 차려입은 키 큰 할아버지가 다가오니 못이기는 척 춤을 추러 나가기도 했다. 모두가 처음 콜라텍에서 기자를 발견했을 때에는 ‘왜 저런 어린애가 이곳에 와 있지’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각자의 춤에 심취했다.
입장한 지 10분도 안돼서 기자는 한 가지 특이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춤을 추기 전 모든 이들이 홀의 구석에 위치한 나무틀에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갔다 발을 비빈 후에 내려오는 것이었다. 나무틀에는 노란 가루가 들어있었는데 이것은 송진가루였다. 노인들이 춤을 추다가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홀에 입장하기 전에 신발에 묻힐 수 있도록 송진 가루를 준비해 둔 것이었다.
분명 바깥은 환한 대낮이었지만 시장 통 내의 어두운 콜라텍 내에서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과 미러볼이 돌아갔고 블루스와 트로트가 나오면서 파티가 한창이었다. 청춘들이 찾는 클럽에서는 홀의 맨 앞은 소위 춤을 잘 추는 ‘죽돌이, 죽순이’들로 가득 찬다. 이들의 뒤를 따라 많은 이들이 뒤섞이고 어우러져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노인 콜라텍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춤을 추는 남녀는 홀의 중앙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클럽에서는 혼자, 둘이 혹은 여럿이 춤을 추지만 콜라텍에서는 오로지 남녀가 짝을 정해 춤을 췄다.
춤을 추는 노인들이 더 많아질수록 바빠지는 사람이 더 있다. 바로 홀 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직원이다. 그는 음식을 만들다가도 틈 날 때마다 홀에 들어와 혼자 있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혼자 있는 할아버지에게 데려다주는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도 하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할머니에게 춤을 추자고 대시하는 할아버지들이 있는가하면 다가가지 못해 짝이 지어지기를 바라는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그가 “이 언니 잘 춰”하며 한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를 소개해주자 둘은 곧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거침없이 포옹했다. 그는 이런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여기 장난 아니지. 언니 나이도 어린 데 벌써부터 이런데 알면 못써”라고 말했다.
춤을 추는 공간 말고도 이를 지켜볼 수 있는 좌석과 홀 가장자리에도 의자들이 배열돼 있어 언제든지 춤을 추다가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었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노인들은 의자에 앉아 ‘춤 출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기자 역시 이곳에 앉아있었는데 6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춤 한번 추러 나가자고 손짓을 했다. 당황했지만 할머니를 찾으러 왔다며 정중히 거절했고 몇 분 뒤 다른 파트너를 찾아 춤사위를 펼치는 그 할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업 시작할 때부터 왔다는 김 아무개 할머니(64)는 “친구들과 지난해 처음 왔는데 한 번 오니 계속 오게 된다. 집이 경기도라 두 시간 정도 걸리지만 지하철 타면 편하게 올 수 있다”면서 “열아홉 살 때는 무대를 날아 다녔는데 이제 예전 같지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수백 커플의 노인들로 댄스홀은 뜨거워졌다. 분명 실내온도는 15도였지만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 정도로 홀은 후끈 달아올랐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던 김 할아버지(67)는 “요즘 무료라서 자주 온다. 집 앞인데다가 돈도 안들이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며 “오늘 이 정도는 없는 편인데 할머니들이 특히나 없어 춤을 못 추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제기동 콜라텍에서 만난 노인들은 단순히 춤만 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젊은 노인-늙은 노인’ 노는 물이 다르다 팔순구순 커플은 거침없이 주물럭 제기동 소재의 A 콜라텍을 취재하며 만난 한 할아버지가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분명 대부분의 이용객이 노인인 콜라텍이다. 그럼에도 그 할아버지는 “그나마 여기는 조금 젊은 친구들이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젊은 노인이 아닌 나이든 노인은 어디를 갈까. 이 할아버지는 “M마트에 있는 콜라텍이 가장 오래됐고 사람도 많다. 이곳의 주연령 층이 60~70대라면 거기는 70~80대가 많다”며 “제기동과 청량리 일대에는 연령대별로 즐길 수 있는 콜라텍이 6군데 정도 있다. 제기동이 노인들 위주 콜라텍이 있다면 청량리에는 40~50대가 즐길 만한 곳이 있다”고 성명했다. 제기동과 청량리 일대에는 연령대별로 즐길 수 있는 콜라텍이 6군데 정도 있다. 이에 기자는 A 콜라텍을 나와 70~80대 노인들이 많이 간다는 콜라텍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얼마 전까지 A 콜라텍에서 춤을 추던 한 노인 커플이 기자와 같은 콜라텍으로 향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해당 콜라텍은 건물 4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는 4층을 서지 않아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에는 푸드코트 형태의 여러 가지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었고 가운데 식탁마다 만석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노인들이었고 찌개에서부터 회까지 각종 음식에 반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이들 중 식사를 끝내고 4층으로 내려가는 무리를 따라 같이 내려가니 아까보다 더 큰 규모의 콜라텍이 있었다. 이곳은 생긴 지 10년이 넘어 노인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오전부터 초저녁까지만 영업을 하는 점, 입장료 1000원에 물품보관료 500원을 받는 점은 아까의 콜라텍과 같았다. 차이점이 있었다면 아까보다 머리가 더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더 많이 보였고 대부분 혼자가 아닌 네다섯 명이 짝을 지어 방문했다는 것이다. 홀에는 족히 1000명은 돼 보임직한 노인들로 붐볐다. 이곳에는 짝을 지어주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부킹’이라고 글씨가 빛나는 조명 목걸이를 걸고 이리저리 다니며 짝이 없는 노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전의 콜라텍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이 먼저 춤을 추자고 손을 내밀기도 했고 춤도 더 끈적끈적했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는 스킨십뿐만 아니라 가슴을 만지는 스킨십도 더러 있어 민망했다. 20대의 여기자가 그들 사이에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다. 홀 밖에는 식당이 있어 춤을 추다가 에너지 충전을 위해 식사를 하는 노인들이 보였다. 식후에 건강관리를 위해 잊지 않고 약을 복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노인맞춤광고가 게재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청년들이 주로 가는 곳에 토익학원, 미용실, 맛집 광고가 붙어있다면 노인만의 공간에 제격인 광고는 따로 있었다. 임플란트, 정형외과 광고뿐만 아니라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전단지가 붙어있었고 샘플상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진열돼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바둑을 두는 이들의 바둑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콜라텍 밖에서 약재를 파는 상인 황 아무개 씨는 “노인들이 10년 전부터 찾는 곳이라 노인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자자하다”며 “일을 하느라 한 번도 못가 봤지만 한 번 가고 싶다”며 웃기도 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