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발생한 농협 주유소. 현재는 농협 직영점이 아닌 일반 주유소로 바뀌었다. 작은 사진은 해당 지역 농협.
“벌써 다 자셨는가? 밥 한 그릇 더 줄랑게 더 자시게.”
광주 광산구 하산동의 작은 식당. 서울서 혼자 내려왔다는 말에 주인은 메뉴에도 없던 굴비와 호박죽을 내밀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 한 그릇을 더 내왔다.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은 이날 가까운 익산에서 발생한 지진 이야기부터, 가족 이야기까지 친근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기자임을 밝히고 “10년 전 이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기억하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순박하게 웃던 주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니께. 나는 모르지”라며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지난 22일 기자가 찾은 곳은 주민 대부분이 특정 성(姓)을 가진 집성촌으로, 광주시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꽃게백반거리’로 잘 알려져 있는 이곳은 마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꽃게백반 식당을 제외하면 주민센터와 파출소, 초등학교, 농협 등이 전부였다.
살인은커녕 좀도둑조차 없을 것만 같은 조용한 마을. 기자와 만난 주민들은 앞서의 식당 주인과 같이 친절했다. 식당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이 많아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도 익숙한 듯했다. 하지만 유독 당시의 그 살인사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들은 마치 말을 맞춘 듯 “직접 본 것도 아니라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피해자의 노모는 지난해 노환으로 별세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사건 발생 직후 마을을 떠났다는 귀띔만 간단히 들을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쉬쉬’하는 이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 발생 현장은 마을 인근에 위치한 농협 직영주유소다. 지난 2005년 5월 16일 오전, 이 주유소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사무실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평소 자신이 출근하기 전에 관리소장 김 아무개 씨(당시 46)가 문을 항상 열어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 반대편에 위치한 뒷문을 열고 들어가 평소와 같이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간단히 주유소 주변을 청소하고 몇 대의 차를 보낸 오전 11시 30분께, 사무실에 꺼내놓은 휴지가 다 떨어진 것을 발견한 종업원은 창고로 향했다. 역시 문은 잠겨 있었고, 사무실에서 열쇠를 꺼내와 창고 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창고 문 앞에는 앞서의 주유소 관리소장 김 씨가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혼비백산한 종업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김 씨는 후두부를 둔기로 두 차례 맞아 숨져있었다. 두개골이 함몰된 채였고,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목격자도 없었고 CCTV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최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 사건을 의심했다. 식당을 찾는 외부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으며, 이 마을에서 가장 현금이 많은 곳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단순 강도 사건으로 보기엔 이상한 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범인은 김 씨와 가까운 인물일 가능성을 높게 본 경찰은 사건 발생 전 날 김 씨의 행적부터 추적했다. 김 씨는 지난 2005년 5월 15일 오전부터 주유소에서 근무하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열린 마을 축구 대회에 참석했다. 이후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해당 마을 농협 조합장 A 씨와 오후 7시까지 주유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A 씨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인 오후 8시 50분께까지는 주유소 옆 주택에 거주하는 B 씨와 함께 있었던 것이 확인 됐다. 당시 농협 감사를 맡고 있던 C 씨가 오후 8시 50분께 주유를 하러 들렀다 김 씨와 B 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김 씨는 오후 9시 20분과 25분, 두 차례에 걸쳐 C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처 전화를 받지 못한 C 씨가 1분 뒤인 9시 26분께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김 씨는 답이 없었다. 김 씨의 사망 추정 시간은 바로 이 시간 이후부터 발견 시간인 11시 30분께다.
이를 통해 경찰은 가장 먼저 인근에 거주하는 B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먼저 B 씨의 경우, 숨진 김 씨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동안 B 씨가 주유소에 자주 들러 김 씨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볼 때, 주유소 사정에도 밝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다. 이에 더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온 점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뚜렷한 범행 동기가 없었다. 김 씨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으며 채무 관계도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와 헤어진 이후 행적에 대해 B 씨는 “김 씨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드라마 <토지>를 시청했다”며 해당 드라마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온 것은 당시 B 씨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B 씨의 범행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자,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B 씨 조사와 함께 진행되고 있던 김 씨와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농협 조합장 A 씨도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다. A 씨 역시 김 씨 사망 추정 시각에 알리바이가 있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A 씨는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 씨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2억 원 상당의 농협 면세유를 부정 유통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김 씨는 농협 직영 주유소 관리소장이었고, 면세유 담당 책임자였다. 해당 주유소에 근무하던 종업원 한 명은 회계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회계를 담당하던 종업원이 작성한 장부에서 일부 면세유가 사라진 정황이 발견됐다.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김창용 광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 형사는 “해당 장부는 김 씨가 관리·감독했던 것으로 나타났고, 면세유 부정 유통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면세유 부정유통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김 씨가 나주 모처에서 기름저장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던 사실도 발견됐다. 심지어 그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은 농협 직원도 아닌, 김 씨가 따로 고용했던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면세유 부정유통을 통해 사라진 2억 원의 행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살인 사건과 별개로 해당 농협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 조사까지 벌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앞서의 김 형사는 “당시 담당 형사들의 기록을 보면, 횡령한 자금이 A 씨의 ‘선거 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A 씨는 정기 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앞서 두 차례 조합장을 맡았던 A 씨에게는 세 번째 도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농협 조합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왔던 터라 A 씨도 김 씨를 중용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사건 당일 김 씨가 앞서의 C 씨에게 걸었던 ‘마지막 통화’도 A 씨가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힘을 실었다. A 씨가 두 번의 조합장을 맡는 동안 크고 작은 부정·비리 의혹이 불거졌는데, 이 때문에 조합장 선거를 앞둔 해당 마을 농협은 A 씨 측과 반대 측이 팽팽하게 맞서며 갈등이 심화된 상태였다.
여기서 앞서의 농협 감사를 맡았던 C 씨는 대표적인 반대 측 사람이었다.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C 씨는 “사건 발생 전, 나는 A 씨와 소송전을 치렀다. A 씨가 조합장을 맡는 동안 마을 내에서 나를 비롯해 일부 주민들이 조합 운영 방식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하자, 농협 조합장의 직권으로 절차 없이 나를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냈다. 이에 대해 ‘부당 전적을 당했다’며 A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이후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광산경찰서와 공조해 지난 9월부터 전면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이 김 씨의 ‘마지막 통화’에 주목한 이유는 이 대목에 있다. 김 씨에게 있어 C 씨는 반대 측 사람이며, 그동안 같은 농협 사무실을 쓰면서도 데면데면 한데다 전화 연락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C 씨 역시 “그 날 김 씨가 왜 나에게 전화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앞서의 광주지방청 미제사건전담팀의 김 형사는 “김 씨가 죽기 직전,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던 C 씨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볼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담당 형사들은 김 씨가 알고 있는 것을 C 씨에게 알리면 가장 위험해지는 사람이 누구일지 떠올렸고,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정황과 심증에 불과했다. 실제로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고, 압수수색을 한 이후에도 범행 흔적이나 특별한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본부까지 설치돼 1년간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왔던 이 사건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앞서의 C 씨는 아직도 초동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보였다. 그는 “당시 비슷한 기간 이 사건을 제외하고 두 건의 살인사건이 더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마을이라 수사가 집중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4월 18일 광주 서구의 한 원룸에서 30대 여성이 목이 졸린 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19일, 광주 광산구 한 스포츠타운 옆 도랑에서 여대생이 알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건 역시 모두 해를 넘기고 나서야 범인을 검거했다.
C 씨는 범행에 ‘제3자’가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당시 수사가 너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김 씨가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범행이 혼자 이뤄진 것은 아닐 수 있다. 김 씨는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80~90kg가량 되는 거구였다. 혼자서 한두 번의 공격으로 쓰러질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창고는 깨끗이 치워져 있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도 열어뒀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한두 사람에게만 치우쳐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숨지기 직전, C 씨에게 알리려고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C 씨의 주장대로 전화를 건 것은 정말로 김 씨였을까. 그의 전화 한 통이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흔적’이자 ‘메시지’일 수 있다.
현재 광주지방경찰청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광주 광산경찰서와 공조를 통해 지난 9월부터 추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승인 광주경찰청 강력계장은 “광산경찰서에 미제사건 전담팀 3명을 편성하고 본청에서 2명을 파견해 재수사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구성된 전담팀은 이 사건에 대해 모든 서류를 전면 재검토한 후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