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차례대로 박 씨가 폭행당할 당시 CCTV에 찍힌 모습. 박 씨가 치안센터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누워 있다. 박 씨 동생과 후배가 의식 잃은 박 씨를 집으로 데려가고 있다. 박 씨는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8일 만에 사망했다.
지난 5월 23일 새벽 5시, 치한센터에 한 남성이 들어간다. 코피를 흘리고 있었고 바지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 남성은 치안센터 소파에 누워있다 이내 바닥에 누워 버린다. 그리고 손과 다리로 바닥을 치며 괴로워한다. 해당 치안센터 CCTV에 촬영된 그의 모습이다. 그로부터 8일 뒤 남성은 사망한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형님, 술 한 잔 사주이소.”
박준호 씨(32)는 본업과는 별개로 보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후배들이 그를 통해 보험에 가입했고, 이들은 지난 5월 22일 늦은 오후 만나 부산 사하구 하단2동의 한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후배 2명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노래방에서 나온 후 박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성 일행과 마주쳤다. 그런데 그 중 두 명의 남성이 “왜 쳐다보냐”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고, 해당 일행은 박 씨를 인근 골목으로 데려갔다.
당시 상황이 촬영된 상가 CCTV를 보면, 남성 일행 중 한 명인 A 씨(23)가 박 씨의 멱살을 잡는가 싶더니 이내 다리를 걸어 그를 넘어뜨린다. 박 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A 씨는 박 씨의 얼굴을 무릎으로 강하게 가격한다. 함께 있던 또 다른 일행이었던 B 씨(22)도 그 자리에서 박 씨의 얼굴과 머리를 발로 찼다. 박 씨는 반항을 하지 못한다.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당시 그 상황을 목격한 한 상인은 “주변 사람들이 나와서 말릴 정도였다. 코에서 피를 덩어리처럼 뚝뚝 흘렸다”고 기억했다. 또 다른 주민은 “다툼하는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 보니,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달려와서 걷어찼다. 나도 모르게 ‘그만 때리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10여 분 뒤, 박 씨는 사건 현장에서 100여m 정도 떨어진 치안센터로 스스로 걸어갔다. 박 씨의 손과 옷에는 코에서 흘린 피가 묻어 있었다. 해당 치안센터 CCTV에 촬영된 영상을 보면, 박 씨는 치안센터 한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 앞 의자에 앉더니 이내 엎드리며 머리를 감싸 쥔다. 이후 소파로 자리를 옮겨와 엎드리더니, 갑자기 몸부림치다 바닥에 떨어졌다.
박 씨의 동생은 “당시 치안센터에서 근무하던 경찰은 박 씨를 주취자로 판단해, 잠을 자며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형은 이날 치안센터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도 말하지 못했다. 이미 그때부터 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는 스스로 걸어들어 간 치안센터에서 1시간 6분이 지난 후에야 후배에게 업혀 나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역시 박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CCTV를 보면, 박 씨는 후배와 동생 두 명이 달라붙어 겨우 ‘들고’ 1층 현관으로 들어간다. 박 씨의 동생은 “(형의 후배와) 둘이 옮기다 무거워서 현관 앞에 그대로 뒀다. 계속 의식이 없었다. 뺨을 때리고 가슴을 눌러봤는데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단순히 술에 취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평소 코를 골지 않던 박 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코를 골았다. 박 씨의 어머니가 입을 열어보니 혓바닥이 꼬여있고 입술도 새파랗게 변해있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박 씨 어머니는 119에 신고를 했다. 당시 출동한 긴급구조대원은 가족들에게 “호흡도 거칠고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뇌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긴급히 인근 대학병원으로 후송했다.
박 씨가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상황은 크게 악화돼 있었다. 박 씨의 전두엽, 측두엽, 얼굴 뼈 등 두개골이 세 군데 골절돼 있었고, 이로 인한 출혈이 심해 머릿속에 고여 있던 피가 뇌를 옆으로 밀어냈다. 당시 담당의사는 가족들에게 “망치나 몽둥이 등 둔기로 맞은 것처럼 머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은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보려 수술을 부탁했다. 박 씨는 폭행당한 후 약 12시간이 지나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8일 뒤, 박 씨는 끝내 숨졌다. 사인은 외부충격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과 대뇌부종이었다.
박 씨가 병원으로 후송된 이후, 박 씨의 부모는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그리고 경찰은 지난 5월 24일 새벽 A 씨와 B 씨 등 가해자 2명을 긴급 체포했고,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일행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A 씨와 B 씨는 1차, 2차 경찰 진술에서 다리를 절뚝거리고 심하게 부은 다리를 보여주며 오히려 “박 씨에게 맞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앞서의 상가 CCTV를 통해 그들이 “맞아서 부었다”고 진술한 다리로 박 씨의 머리를 걷어차는 장면을 보여주자, 이내 폭행 사실 일부를 시인했다. 경찰은 최초 A 씨와 B 씨를 폭행 혐의로 체포했지만, 박 씨가 사망하자 상해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27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301호 대법정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와 B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교도관들과 법정 경위들이 박 씨 가족 측 근처에 머물렀고, 재판부의 선고를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상해치사의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해당 범죄는 사람의 신체를 다치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상해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사망의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당시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 된 폭행 CCTV 영상을 통해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의 사망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CCTV 영상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각각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강하게 가격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결국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폭행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전과는 없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젊은 나이라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때린 것이며 피고인들의 앞길을 고려해 ‘3년 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검사구형 (각각 A 씨 징역 9년, B 씨 8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 형량이다. 가해자 A 씨와 B 씨는 재판이 끝난 이후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박 씨 아버지는 “술에 취해 때렸든, 안 취해서 때렸든 숨진 사실은 똑같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서른 살에 결혼해서 8년 만에 낳은 아들이다. 합의해줄 생각도 없었고,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도 넣었다”며 “가해자 측에서는 합의하자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반성문 몇 장 제출한 것으로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있다’며 최소 형량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씨의 동생은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청소년 때 이미 폭행으로 보호관찰을 받은 전력이 있고, 최근에도 2건의 폭행 사건으로 재판이 계류 중인 사실도 드러났지만 ‘술 한 잔’에 이 모든 것들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은 상해치사 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에게 무거운 형량이 선고됐다. 권 아무개 씨(42)는 지난 7월 20일 오전 9시 20분께 강원도 동해시의 한 공원에서 라디오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최 아무개 씨(70)에게 ‘소리를 줄여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즉각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원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014년 11월 30일 서울 이태원의 한 주점에서 한국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은 한 미국인은 항소심 재판부에서 형이 가중됐다. 그는 해당 주점에서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 유리벽에 밀치고 주먹으로 얼굴을 5차례 가격했다. 피해자는 7분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6년으로 늘었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감경의 사유가 될까.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최근 형사사건에서 음주감경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음주로 감형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 다른 사유들을 들어 감형하고 있는 추세다. 음주로 인한 명확한 ‘실수’라고 보이는 경우가 아니면 형을 감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는 법원에서 자의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일 뿐, 강행규정은 아니다. 앞서의 박 씨 사건처럼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이 바뀔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법안 개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음주와 관련된 일부 판결이 관대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을 법리적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간혹 일반 정서와는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입법부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2015년 ‘징역 3년’ 사건들 상해는 있어도 살해는 없었다 법원에 따르면 2015년 징역 3년을 선고한 판례는 대체로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남의 돈을 빼앗거나 혹은 남을 다치게 한 경우가 많았다. 박 씨의 사례처럼 죽을 때까지 때려 숨지게 한 사례는 없었다. 심지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살인미수 사건에도 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 12세 여아 성추행 사건 2. 뇌물 받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해양수산부 6급 공무원인 피고인은 출항정지를 해소시켜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범죄 전력도 없이 초범인 데다 18년간 성실히 공직에 임해왔고, 당뇨병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모두 고려해 징역 3년과 벌금 1억 2000만 원을 선고했다. 3.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 피고인은 지난 2014년 8월 새벽 50대 피해자의 새벽 출입문 여닫는 소리에 불만을 제기했다가 피해자가 “욕하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자 격분해 집에 있던 칼을 들고 나와 피해자를 찌르려고 했다. 피해자는 오른쪽 어깨를 찔리는 부상을 입었다. 법원은 이 사건이 미수에 그쳤고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우발 범행인 점 등을 고려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4. 울산 16세 여학생 강제추행 사건 피고인은 지난 5월 성적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길거리를 배회하다 영어학원에 들어가 혼자 공부하던 16세 여학생을 발견하고 강제 추행했다. 피고인은 성행위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피해자의 배를 수차례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고 피해자가 큰 충격을 받은 점을 고려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5년간 신상정보 공개와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5. 수면제 박카스 금품 편취 사건 피고인은 여러 명의 고령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박카스나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먹인 뒤 돈을 가로챘다.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했고 피해회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사기죄 2건 벌금형 외에 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6. 회사 돈 3억 원 횡령 사건 피고인은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총 128회에 걸쳐 회사자금 3억여 원을 횡령했다. 법원은 피고에게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