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오바마, 에너지· 핵 폐기전쟁, 화폐전쟁 승리, 미국에 내린 축복
‘오바마 성공의 역설’, 미국 금리인상이 한국 4·13 총선 구도를 결정
박근혜, 공약 1호 가계부채 방치, 최경환 팀 역주행 책임 물어야
안철수, 김무성-문재인 프레임 허구성 드러나며, 새로운 대안 떠올라.
아프리카 출신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에게 내린 신(神)의 축복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역사는 독립전쟁기간을 모두 합산하면 460여년이다. 유럽이나 동양의 장구한 역사에 비교하면 턱없이 짧다.
그러나 그들이 청교도 시대정신, 풍요로운 대지에서 세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와 실용의 철학은 미국만의 독특한 경쾌함과 유연성을 낳았고, 그 특징이 정신과 물질문명의 세계를 융합하고 혁명화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미국은 유럽문명에서 갈라지고, 또 새로운 인종과 문화가 만나 융합되어 들끓는 가마솥, 즉 통괄적인 현재진행형의 연결망 과정이다.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의 흑인 청년이 제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이다. 솔직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이나, 중국, 아시아로서는 꿈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아들 부시정권의 경제실패, 리먼 브러더스 사태의 국난 속에서 정권을 인수받았다. 오바마는 부시를 비난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노선을 걸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기조를 선택한 뒤, 세일가스를 개발하여 중동(사우디)산유국과 에너지 전쟁에서 승리하고, 2015년 12월 16일 미국발 금리인상, 즉 풀린 달러를 거둬들이기 위한 중국과 화폐전쟁을 시작했다. 화폐는 국가역량의 물질적 화신(化神)이다.
1990년대에는 일본의 엔화가, 2000년대에는 유럽의 유로화가, 2010년대에는 사우디의 오일이 대 달러와의 전쟁에서 무릎을 꿇고, 모두 미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한-일간의 정신대 무리한 협상 배경에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신(神)의 한수인 오바마 행정부는 전세계에게는 두려움과 공포 그자체이다. 오바마 성공의 역설이다. 미국은 아예 화석에너지인 오일과 세일가스를 넘어서 태양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해 버렸다. 2015년 12월 파리 기후협약이 그 출발점이다. 연이어 미국은 의회의 전폭적인 법령개정 지원에 힘입어 석유수출을 개시했다.
미국은 스스로 전 세계 안보와 경제중심 축임을 자증하고 있다. 향후 2년간 국내 경기가 연착륙하는 한, 순차적으로 2% 정도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경기침체와 경제 위기국면에 처해 있다. 60년 오일 에너지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중동 산유국, 중남미, 소련 등이 모두 기약없는 장마전선에 휩싸여, 늪에 빠져있다. 사우디 신세가 이렇게 추락할 줄 인간으로서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불행한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석유자원 부국 사우디, 브라질, 베너수엘라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소련과 유럽 경제는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달러대비 유로화 가치는 약화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를 통해 부흥시킨 해안도시 항만부두에는 산더미 같은 철과 자원들이 시간을 겹겹이 쌓고 있다. 세계의 공장을 자부하던 굴뚝에는 연기가 멈추고 있다.
시진핑의 야망 일대일로(一帶一路)는 그 아킬레스건을 드러냈다. 서부 내륙지방은 하천이나 바다가 없어 도시건설이 불가능하다. 도농간 소득격차, 상위 3%와 하위 90%의 소득격차는 그야말로 중세기 영주와 농노의 수준이다. 유일한 해양출구인 난사군도에는 미국 항공모함이 버티고 있다.
미국 발 금리인상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무엇보다 중국의 대미국 수출시장의 상실로 귀결된다. 중국 월평균 생산 인건비는 60-80달러의 적정선을 넘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미국 바이어들은 생산기지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로 옮기고 있다. 믹국 금융자본은 중국 증시를 통해 차분하게 달러를 회수해 간다.
금리와 환율방어, 주식시장 경쟁력을 매개로 한 경제 생존전쟁이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을 앞세운 (유태계) 헤지펀드들은 견디지 못해 비틀대는 먹잇감들(국가와 기업)이 있으면 승냥이 떼처럼 몰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물어 뜯어 삼킨다.
우리나라처럼 가계부채가 뇌관으로 노출된 나라도 먹잇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죽하면 1997년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자본주의의 악마들이라고 탄식했을까. 결론적으로, 2016년은 전세계 국가운명의 생존이 걸린 세기적 패러다임 전환의 해이다.
미국은 핵무력 안보전쟁에서의 승리(남아공, 이란), 해양패권 억제(난사군도), 에너지와 화폐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 결과 전 세계는 지구가 미국을 중심축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는 값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게 오바마는 ‘신이 내린 지도자’이다.
이제 남은 곳은 단 한 곳 한반도이다. 오바마에게 한반도는 북한은 핵 딜레마가, 한국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절체절명의 시간에 직면해 있는 한 덩어리이다. 역사적 명운이 걸린 2016년을 주도할 두 지도자 박근혜와 안철수는 당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본지는 미국발 금리인상이 4·13 총선구도를 박근혜대 안철수로 결정했다고 제시했다. 2015년.12월17일자)
미국발 금리인상이 몰고 올 경제위기는 4·13 총선구도를 “박근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라는 프레임으로 구축했고, 양대 대결세력을 박근혜집권세력 대 안철수 신당으로 제시했다.
2016년 미국발 경제 시간표를 펼쳐 볼 필요가 있다. 미 연준(FED)은 2015년 12월 17일 (한국시간) 0.25% 금리인상결과 2, 3개월 뒤 미국내 경기의 연착륙이 확인되면, 순차적으로 2년간 2%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다음은 3월말에서 4월 중순께로 전망된다.
우리의 경우 은행들은 이미 2-3% 변동금리를 올렸고, 금융기관들은 가계 대출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하락과 거래감소, 한달 새 용인아파트 미분양 45% 누적, 아파트 분양연기 등이 속출하고 있다.
2월 중순 구정 설 이후부터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얼어붙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총선이 있는 4월을 넘기면 기준금리를 인상할 방침이다. 그러나 누가 확신하겠는가? 4·13 총선이면 국민 체감경기가 최악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 재상 최경환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계부채 공약을 소홀히 했고, 미국발 금리인상을 예견하지 못한채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통한 주택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결국 미국 금리인상이 이뤄지자 ‘빚으로 소잡아 먹은 집안 꼴’이 되고 말았다.
이와 함께 모두 경제비전을 결여한, 중학교 선후배 김무성 여당대표와 문재인 야당대표도 사태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은 선구조정을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읽고 선 구조조정 방안으로 노동·경제관련 법안을 제출했으나, 문재인은 무시했고, 김무성은 문재인에 무기력했다.
농본국가에서 씨종자 보존법칙은 산업사회의 기업 보존법칙과 동일하다. 기업이 살아 있으면 노동자는 돌아올 수 있으나, 기업이 죽으면 공장의 기계는 고물 값에 팔려나간다. 경제가 회생되었을 때 노동자가 돌아올 곳조차 없어진다.
박 대통령은 12월 7일 김무성·원유철 투톱과의 청와대 면담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달 째 협박과 애원을 다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렇게 펄쩍 펄쩍 뛰고 있음에도 김무성과 문재인의 손아귀에 있는 국회는 꿈쩍 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정법안이나 대안조차 내놓지 않는다.
오직 깨어있는 지도자만이 국민들을 위기에서 질서 있게 인도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긴급명령권, 그 이상이라도 각오해야 한다. 경제 재앙이 닥치면, 4·13 총선을 계산할 틈이 없다. 필요하면 새누리당 탈당하고, 야당이 포함된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경제 재앙을 돌파하는 특단의 조처와 대응방안들을 예비해 놓아야 한다.
일요신문 DB
안철수가 왜 박근혜 대통령의 2016년 카운트 파터인가. 안철수는 신당의 노선을 탈이념, 중도개혁, (성장을 기반으로 한) 공정성장, 민생경제, 대북한 전략을 제시했다. 그 노선은 노무현과 전혀 다르다. 김대중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신당이 창당되고 나면, 역사철학과 경제비전 방면에서 구체적인 당면과제와 미래대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1998년 대선국면에서 맞은 IMF환란 국면에서 김대중은 놀랍게도 슬로건으로 ‘김영삼 정권 심판론’을 내놓지 않았다. 김영삼 인형을 만들어 야구방망이로 후려치던 이회창 진영과는 전혀 달랐다.
김대중 진영은 오히려 ‘준비된 대통령론’을 내놓았다. 나아가 김종필과 연합하고, 박태준 등 역사적 정적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곱셈했다. ‘심판론’은 국민과 지지세력의 뺄셈과 나눗셈의 정치다. 이회창은 뺄셈의 정치를 했다.
안철수 신당이 ‘박근혜 정권 심판론’을 제기하면 국민들은 지지자를 내편, 네편으로 나누고, 뺄셈하겠다는 사람들로 판단한다. 2012년 대선부터 모든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한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선수가 안철수든, 김한길이든, 문재인이든 그 배경에는 ‘국민 뺄셈과 나눗셈의 공식’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남이 노무현에게 진저리를 치고, 문재인 당에게서 등을 돌린 이유이다. 4·13 총선뒤 대선후보 문재인은 상상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안철수 신당의 전략과 정책의 성패는 수권역량이 있는 ‘대안정당’에 있다.
안철수 신당에게 충고한다. 박근혜 선수는 선거 10단이다. 선거에 관한한 김영삼-김대중을 비월한다는 얘기다. 실례로, 박근혜 대표선수가 주도한 선거는 100% 승리했다. 이번 4·13 총선은 박근혜 대표선수가 주도한다.
박근혜의 정치 정체성은 마치 중국 스촨성의 가면마술인 ‘변검’처럼,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경제혁명가이자 독재자 박정희의 얼굴도 있고, 한국 어머니와 아내의 상징 육영수 여사의 얼굴도 있고, 부모를 총탄에 잃고 두 동생을 데리고 청와대를 쫒겨 나가는 소녀의 얼굴도 있고, 외국어구사 실력에서 드러나 듯 쉼 없이 공부하는 모범생의 얼굴도 있고, 독신여성의 연약함도 있고, 그 속에 감춰진 단단함과 강인함의 얼굴도 있다.
어떤 선거판에서 박근혜를 향해 ‘독재자 박정희’의 이미지를 덧씌워 집중포화를 때렸으나, 정작 화살을 맞고 쓰러진 쪽은 인자한 얼굴 육영수여사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우리나라 역사상 국민들 뇌리 속에 가장 강력히 남아있는 충격적인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이다.
당시 TV뉴스에서 펼쳐진 광경은 지금까지 국민 모두의 뇌리에 생생히 살아 있다. 정치에서 국민적 역사적 정서적 일체감보다 강력한 행위역량이 또 있을까. 대표선수가 박근혜라고 해서, 인신론이나 정체성을 공격하면 역풍이 초래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보자. 세월호 사태 국면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겠으나, 박근혜에 대한 지나친 인신 공격에 ‘반감’이 일어난 측면이 핵심적 요인가운데 하나이다. 진영논리는 아무리 잘해봐야 49%의 승리에 불과하다. 일대일 전쟁에서 승수는 51%이다. 2%가 100%를 결정한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은 정권심판론이 아닌, ‘준비된 대통령’과 같은 수권능력을 갖춘 ‘대안정당’이 면모를 보여야 한다. 국회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노동·경제관련 법안을 외면한 문재인이나 김무성이 대안정당론을 내세운다면 국민들이 믿을 리 만무하다.
선거판에서 박근혜에 대한 공격은 마치 외과의가 수술을 집도하듯 세심 해야 한다. 공격 포인트는 철저한 진단이 전제되고, 건강한 전문 집도의를 통해 환부를 예리하게 절개하여 집어내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노력과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상대방의 결점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정의 핵심을 콕 집어내고, 반드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없는 비판은 아니함 만 못하다.
버락 오마마는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북한·이란 핵딜레마를 넘겨준 아들 부시를 거칠게 공격하지 않았다. 어떻게 당면한 과제를 실사구시와 실용으로 해결해 나가고,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구조와 틀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김대중과 오바마를 더하면, 안철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신(神)이 위기에 빠진 미국에 지도자 오바마를 선물한 것처럼, 2016 한국경제 위기국면에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지도자 안철수가 있었다는 말이 진리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2016년 국민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 깨끗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한판을 기대한다.
박요한 선임기자/정치학박사. yohanletter@ilyo.co.kr.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 이시오니 원하건 데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성경: 대하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