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은 유아인과 황정민이라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두 별을 주축으로 기술적으로 촘촘하게 짜인 액션으로 관객의 쾌감을 이끌어낸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이 벽돌을 쌓듯 완성한 작품이다. 스타와 장르의 전문 분야 감독의 만남은 충분히 1.000만 관객 돌파의 개연성을 입증할만하다.
하지만, 여타의 영화들 중 스타와 전문 감독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한 경우를 예를 든다면 이 개연성은 어디까지나 성과 후에 따라다니는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흥행에 성공한 작품에는 그간의 과정이 모두 의미 있게 해석되는 반면, 반대의 경우엔 과정 역시 비난의 요소로, 아니 분석의 대상에 선정되지도 못한다.
1.000만이라는 관객 동원의 이면에는 분명 여타의 영화와는 다른 감정유발 요소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요소를 필자는 ‘베테랑’의 구성 중 장면의 극대화에 따른 카타르시스의 폭발 과정이라 정리했으며 이 요소를 중심으로 영화 ‘베테랑’을 살펴보고자 한다.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이끈 -영화 ‘베테랑’
‘베테랑’의 흥행 요소는 무엇보다 장면의 극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의 정점에 있다. 필자는 당시 이 영화의 기사에 ‘가슴에 맺힌 것이 있다면 편하게 앉아 있다 나오면 속이 후련해지는 영화’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소의 어우러짐이 있으며 첫 번째로 장면의 극대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장면의 극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의 분출은 생소한 경험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이미 춘향전을 통해 충분히 공감한 경험이 있다. 춘향이를 옥에 가둔 채 탐관오리들이 모여 향락을 즐기는 와중에 천둥소리처럼 들려오는 ‘암행어사출두요’라는 함성만으로 향연의 자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어서 들이닥치는 이몽룡 병사들에 초토화되는 현장은 가히 헐리웃 영화의 전시 장면 못지않은 비장함이 서려있다.
이 장면은 전날 춘향이와 해후한 이몽룡을 알아보지 못한 월매의 괄시와 당일 암행어사를 거지로 착각한 탐관오리들의 행포가 있었기에 더욱 카타르시스를 분출하게 된다. 당대의 백성들은 이몽룡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핍박받고 억압당하는 현실을 과감히 타파해버리고 대상을 응징하는 순간의 카타르시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 ‘베테랑’에서 보이는 장면의 극대화는 춘향전에서 방출하는 카타르시스와 계보를 잇고 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에게 다량의 마약을 투입할 만큼 사이코패스의 요소를 지닌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님 분)은 그가 배기사가 당한 의문의 사고의 배후임을 알게 되고, 조태오가 해외로 도피하기 몇 시간 전 마약 파티 현장에서 도망가는 그를 쫒게 된다.
결국, 오랜 추격 끝에 조태오는 서도철에 의해 검거되지만 그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서도철은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의 신분이 경찰이었기 때문.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 와 시민들 앞에서 아무리 범죄자지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한 심경을 참으며 조태오의 무자비한 주먹세례를 받던 서도철 형사는 충분히 정당방위가 인정될 만큼 맞았다고 싶은 순간 이후, 통쾌한 복수를 가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 ‘베테랑’의 심장부라 할 만큼 장면의 극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실현하고 있다. 관객들은 도심지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량을 통한 추적 신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조태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며 참고 있던 서도철 형사의 반전 신에서 저마다 가슴에 맺힌 그 무엇인가가 후련하게 풀리는 카타르시의 정점을 경험한다.
세대별 장면의 극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부각시킨 주변 요소들
영화 베테랑에서 드러나는 장면의 극대화에 따른 카타르시스의 경험은 춘향전과 공통의 정서를 공유하지만 좀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신분제에 의한 억압으로 대표되는 시대와는 달리 현대는 복합적 요소가 어우러진 첨단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를 통해 풀어내는 관객의 정서 또한 다양하며 이에 대한 분석 또한 면밀함을 요구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영화 베테랑이 이끌어내고 있는 관객 감정의 다양성을 살펴 보기위해 예매율에서 드러나는 세대별 현황을 먼저 살펴보았다. 영화 ‘베테랑’은 10부터 40대 이상까지 고른 연령이 동참함으로써 연령대별 특유의 감정선과 교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맥스무비 예매율 현황
위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영화 베테랑은 여성이 58%, 남성이 42%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층을 살펴보면 20대와 30대가 전체 관객 중 과반 수 이상인 57%를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0대 이상에서도 41%라는 높은 비율을 보임으로써 중장년층까지 흥행에 참여시키는 결과를 보였다.
불투명한 미래와 천만 번을 흔들려야 성인이 된다고 하지만 천만 번이상의 흔들려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더 나아질 것이 없는 2030세대는 영화 베테랑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또한, 한 때는 영웅을 꿈꾸었으나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중장년층에게 서도철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의 승리는 곧 그들의 꿈이 비현실 속에서 승리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수반하게 된다. 같은 장면에서 2030세대와 4050세대는 각기 다른 그들의 삶이 내포하고 있는 우울을 훌훌 벗어버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통쾌하게 받아들인다.
1)현실적인 대사는 관객들을 극에 몰입, 서도철과의 일체감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양상에는 영화 베테랑이 담고 있는 현장을 담보로 한 대사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운전기사의 의문의 사고사에 배후가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 광역 수사대의 포위망이 좁혀오지만 조태오는 최상무(유해진)에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라는 이 시대의 부패의 상징과도 같은 대사를 한다. 법의 엄격함은 인맥 없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만 적용되는 현실의 부당함을 영화를 통해 새삼 느낀 관객은 자연스럽게 서도철 형사를 통해 한 방 펀치를 날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또, “형사 나부랭이가 어딜 헛소릴 지껄이고 있어” 라는 최상무의 날선 대사와, 자신을 찾아온 서도철을 향해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을 할 수 있겠어요? ” 라며 어떠한 압박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조태오의 냉정한 대사에 관객은 이미 예측한 내용처럼 곧 추락할 조태오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되도록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패배할 모습을.
이러한 예상과 억눌린 감정은 서도철이 어렵게 잡은 조태오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어퍼컷을 날리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경험하게 된다.
2)코믹코드의 적절한 사용으로 고발성과 오락성의 간극을 조율
두 번째로 영화 베테랑이 1.000만 관객과 호흡하게 된 요소에는 코믹코드의 적절함에 있다. 영화 베테랑의 내용은 거대 자본을 획득한 재벌로 상징되는 불의에 맞서 싸운 시민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회 고발적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고발의 성격을 지닌 여타의 영화들이 다소 무겁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 영화 베테랑은 코믹코드를 통해 무겁고 식상함을 동반한 지루함에서 탈피하는 양상을 보인다.
3)신체적 스릴감을 극대화시킨 정교한 액션 플롯
신체적 스릴감을 극대화시킨 정교한 액션 플롯은 영화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한 주요 요인이자 앞서 강조한 장면의 극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폭발하게 만드는 중요 포인트다. 지붕 추격씬부터 부산항에서의 폭발적 액션씬을 관객들은 서도철의 시선으로 따라가면서 마침내 조태오를 잡아 소위 말하는 ‘한방’을 날리는 지점인 클라이맥스에서는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영화 ‘베테랑’은 액션 스릴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고단했던 2015년을 위로해주었다. 적어도 1.000만 관객은 ‘베테랑’을 통해 예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미학을 통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여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였다.
이거면 됐다. 한 편의 영화가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미덕은.
전안나 기자 jan02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