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상속법 개정안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개정 상속법과 기존 상속법의 가장 큰 차이는 상속 비율에 있다. 기존 상속법은 상속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이 1.5(5분의 3)대 1(5분의 2)의 비율로 나눈다. 예를 들어 10억 원이 상속된다면 배우자는 6억 원, 자녀는 4억 원을 받는다. 하지만 개정 상속법은 상속 재산을 나누기 전에 배우자에게 먼저 ‘50%’의 선취분을 떼어준다. 그 후 다시 1.5 대 1의 방식으로 나눈다. 이 경우에는 10억 원이 상속된다면 배우자는 선취분으로 5억 원을 가진 뒤, 나머지 5억 원을 다시 비율대로 나눈다. 합쳐서 계산하면 배우자는 8억 원, 자녀는 2억 원을 상속 받는다.
상속법이 개정되면 유언에도 우선해 배우자 선취분을 50%까지 보장한다. 선취분에 한해서는 상속세도 물리지 않는다. 본래 자신의 재산을 받는 것으로 보는 셈이다. 또한 자녀에게 다시 물려주면서 이중과세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만약 노 관장이 적당한 선에서 합의이혼을 한 뒤 최 회장이 재혼하고 이 같은 개정안까지 통과될 경우 노 관장의 위상은 내연녀에 비할 바가 없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배우자의 선취분은 무조건 50%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선취분은 두 부부가 혼인기간 중 증가한 재산에 한정한다. 전적으로 내연녀에게만 유리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연녀의 입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최 회장이 이미지 실추를 감수하면서도 언론에 혼외자, 이혼 의사 등을 공개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노 관장의 친자들도 이와 같은 상황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노 관장이 <중앙일보>에 보낸 “꿋꿋이 가정을 지키렵니다. 아이들도 이혼을 원치 않아요”라는 문자메시지도 이 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서울 서린동 SK그룹 사옥.
최 회장 대에 이르러 SK그룹의 지배력이 약해 흔들렸던 사건들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지난 2003년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은 SK㈜의 지분 14.99%를 전격 매집해 최 회장 퇴진 등 지배개선을 요구하며 SK그룹을 압박한 바 있다. 최 회장은 SK그룹 지주사인 SK㈜의 대주주로 주식 1646만 5472주(23.40%)를 보유하고 있다. 또 최 회장은 SK케미칼 1만 1861주(0.05%), SK케미칼 우선주 8만 7515주(3.11%) 등을 보유했다. 만약 이혼에 합의한다면 최 회장은 30년 가까이 함께한 노 관장에게 거의 절반의 재산을 나눠줘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적대적 M&A, 사모펀드의 공격, 경영권 분쟁 등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SK그룹 안주인으로 살아온 노 관장이 충분히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이혼할 경우 재산 분할 금액이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도 분할 대상이 될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 관장이 이혼에 합의해주지 않는다면 우리 법상 최 회장이 이혼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즉, 노 관장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고’도 ‘스톱’도 모두 노 관장의 심중에 달려 있다.
재계 3위 그룹을 뒤흔든 세기의 사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딸로, 대기업 총수의 부인으로 살아왔던 노 관장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줬을 것 같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노 관장이 이대로 물러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노 관장의 지금까지 행동과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이혼까지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 회장도 이혼의 뜻은 이루지 못할 듯하다”고 전망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