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서는 한순간 방심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1월 횡성 중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43중 추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마침 일요일 아침이라 차들이 없었기 망정이지, 다른 차선에 차량이 있었다면 아마 부딪혔을 것이다. 다행히 차선은 비어 있었지만, 다리 난간까지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발, 제발’을 외치며 부딪히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난간과 10㎝ 떨어진 곳에서 차는 멈췄다. 그 이후 눈길에서는 웬만하면 차를 몰지 않았고, 불가피할 경우 굉장히 조심했다. 눈길에서는 자만심이 곧 사고를 부르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좌회전 시 왜 그립을 잃고 차가 미끄러졌을까? 만약 차가 주행 중이었다면 가속페달을 밟더라도 미끄러짐이 덜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지한 상태에서 출발할 때 강한 토크(회전력)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동식 회전문의 경우를 떠올리면 쉽다. 앞사람이 밀어서 돌고 있는 회전문은 조금의 힘만 보태도 잘 돌아가지만, 멈춰 있는 회전문을 돌릴 때는 상당한 힘을 써야 한다.
그럼 토크가 강하면 왜 미끄러지는 것일까? 할리우드 영화에서 대배기량 머슬카들이 멈춰 있다 출발할 때 헛바퀴를 돌며 연기를 피우다 총알같이 출발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를 ‘휠 스핀’이라고 하는데, 토크가 너무 강하다 보니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른 땅에서조차 바퀴가 헛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눈길에서는 멈춰 있다 출발할 때 구동바퀴에 강한 토크가 전달되면 헛돌게 된다. 헛돌면서 눈을 파헤쳐 버리므로 탈출은 더욱 요원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토크가 약한 2단 기어에서 출발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수동변속기의 경우는 2단을 넣고 출발하면 되지만 자동변속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변속기 레버가 ‘R-N-D-D2-D1’으로 되어 있다면 D1이 1단, D2가 2단 기어다. 눈길처럼 약한 토크가 필요할 때 D2에서 천천히 출발하면 된다. ‘+, ―’ 표시로 수동 변환이 되는 경우 ‘+’ 방향으로 레버를 밀면 기어가 2단으로 변경된다.
주행 중이라 하더라도 구동바퀴에 강한 토크가 전달되면 눈길에서 그립을 잃을 수 있다. 이는 속도가 높아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았기 때문이다. 눈길에서는 급가속, 급정지는 금물이다.
가끔 인터넷에는 ‘외제차의 굴욕’이라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많이 나온다. 강남역에서 역삼역까지의 오르막길에 눈이 쌓이면, 국산차는 눈길을 잘 오르는데 비해 BMW,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외제차들은 꼼짝도 못 하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외제차의 굴욕이 아니라 ‘후륜구동의 굴욕’이다.
전륜구동의 경우 엔진, 구동축, 변속기가 모두 엔진룸 안에 있어 앞쪽이 무겁고 구동축과 방향축이 같아 어느 정도 접지력이 생겨 눈길 운행이 상대적으로 쉽다. 후륜구동은 그 반대다. 트럭의 경우 적재함에 짐을 많이 싫으면 접지력을 얻을 수 있어 전륜구동과 비슷하게 운행이 가능하다.
겨울철 후륜구동 고급차들을 보면 뒷바퀴에 까만색 원반을 달고 다니는 차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이는 ‘스파이더 체인’으로 불리는 것으로, 평소 휠에 스노체인용 어댑터를 끼우고 다니다, 눈이 내리면 간편하게 스노체인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댑터가 이미 휠에 고정돼 있기 때문에 체인이 연결된 몸통을 측면 방향으로 끼우고 레버만 고정하면 금방 장착된다. 체결이 간편한 것이 장점이지만 가격이 30만~50만 원으로 비싸다. 검정색 원반은 어댑터를 보호하기 위한 커버다.
뭐니 뭐니 해도 눈길운전의 ‘종결자’는 사륜구동(AWD·All Wheel Drive)이다. ‘4WD’라는 용어도 쓰는데, 4WD는 필요에 따라 2WD, 4WD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면, AWD는 ‘상시 사륜구동(Full Time 4WD)’으로 필요에 따라 앞뒤 바퀴의 구동력을 수시로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나오는 사륜구동 자동차들은 대부분 AWD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왜 사륜구동은 눈길에 강할까? 눈길에서 리어카를 두 사람이 앞 또는 뒤의 같은 방향에 붙어서 끌거나 미는 것과, 두 사람이 앞뒤에서 동시에 끌고 미는 것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사륜구동의 경우 바퀴 하나 당 가해지는 토크가 약해지는 효과와 더불어 네 바퀴의 접지력을 모두 이용하는 효과가 있어 눈길에서 운행이 용이하다. 10년여 전에 출시된 4WD 차량은 대개 ‘4WD’ 버튼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4WD로 운행되고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2WD로 운행된다.
이런 차들은 4WD를 선택하면 운행소음이 증가하고 연비가 떨어지는 등의 단점이 있어 험지나 눈길에서만 선택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AWD는 차량에 따라 평소에는 주로 구동하는 바퀴(전륜 또는 후륜)에 100% 또는 80% 이상의 토크를 전달하고, 도로 상태에 따라 최대 50:50으로 앞뒤 구동력을 스스로 배분한다. 최근 대부분의 고급차들에서 사륜구동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EQ900 포함)도 선택이 가능하다.
주의할 점은 사륜구동이 눈길, 빙판길에서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륜구동은 주행 시에 이점이 있다는 것이지 제동 시에는 상대적인 이점이 없다. 후륜구동, 전륜구동 차량도 제동력은 네 바퀴에 모두 전달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륜구동이라 하더라도 눈길에 취약한 사계절용 타이어를 장착했다면,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한 전륜구동 차량보다도 접지력이 약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이어에도 신경 써야 한다.
우종국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