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방송 출연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허나 지금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방송을 할 수 있다. ‘플랫폼’ 덕분이다. 지난 몇 년간 ‘1인 미디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바로 그 중심에 아프리카TV가 있다. 아프리카TV를 통해 얼굴을 알린 몇몇 BJ(인터넷방송 진행자)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제는 연예인들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방송을 할 정도다. 허나 부작용도 만만찮다. 성, 도박, 욕설 등 BJ들의 ‘방송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1인 미디어 시대를 연 아프리카TV의 명과 암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0월 아프리카TV 방송 도중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상납했다고 폭로해 영구방송정지 처분을 받은 BJ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해 음란방송을 계속하다 결국 경찰에 입건됐다.아프리카TV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2015 아프리카TV BJ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 2007년부터 이어져온 아프리카TV의 가장 큰 행사다. 수백 명의 관객이 들어찬 행사장은 마치 영화제나 연말 방송대상 시상식장을 연상케 했다. 이날 서수길 아프리카TV 대표는 “아프리카TV BJ가 최고의 직업이 되는 세상”, “70억 인구가 라이브로 연결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로 원대한 회사의 비전을 밝혔다.
실적도 좋다. 2105년 예상 매출액은 640억 원, 예상 영업이익은 80억 원으로 사상 최대가 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 서 대표도 모르지 않는다. 지난 2012년 5월 기업설명회 당시 그는 “내 아이들이 봐도 괜찮을 만큼 건전하면 되겠죠?”라며 부작용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3년이 넘게 지난 지금의 아프리카TV는 서 대표의 바람대로 썩 ‘건전’하진 않다.
가깝게는 지난해 10월 초 아프리카TV의 한 남성 인기 BJ가 성상납 사실을 폭로하며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일요신문> 1223호 보도). 그 후에도 여성의 성기 사진 노출 사건, 반복적인 장애인 비하 발언 등 크고 작은 ‘방송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발생한 후 아프리카TV의 미온적인 대응 자세다. 물론 회사 측은 일정 기간 또는 영구방송정지를 시키는 등 부적절한 방송을 한 BJ에 대한 자체적인 처벌 규정을 갖춰놓고 있다.
허나 앞서의 성상납 폭로 파문이 일었을 때, 아프리카TV 측은 “관련자를 모두 조사해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 했지만 당사자만 영구방송정지 처분을 내렸을 뿐 조사는 흐지부지됐다. 당시 성상납을 폭로했던 당사자는 다른 인터넷 방송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겨 부적절한 음란 방송을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남성 BJ 두 명이 한 미성년자 여성을 고용해 실제 성행위를 하는 ‘섹스방송’을 진행한 것.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앞서의 성상납 BJ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30일 전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두 BJ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렇다면 이런 방송사고를 보고만 있어야 할까. 해법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방송 중 장애인 비하 발언, 욕설 등으로 물의를 빚은 BJ.
또 다른 어려움은 인력 부족에 있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모니터링 담당 부서에 50여 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모든 방송에 대해 24시간 모니터링을 한다”고 밝혔다. 현재 아프리카TV의 실시간 평균 동시 방송 수는 5000개가 넘는다. 또 하루 평균 방송 수는 10만 개 이상이다. 만일 20명의 직원이 모니터링을 한다면, 적어도 1인당 실시간으로 250개의 방송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BJ 개인의 일탈행위를 플랫폼 사업자인 아프리카TV에 모두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는 말도 나온다. 아프리카TV가 아무리 최선의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더라도 작정하고 방송 사고를 내는 BJ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런데 만약 BJ가 아프리카TV의 직원이라면 어떨까. 앞서의 방심위 관계자는 “방송자와 인터넷 방송 사업자가 고용관계에 있다면 제재의 방법과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단순히 플랫폼만 제공하는 것과 자사 직원이 방송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강조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아프리카TV와 BJ의 고용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근거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톡옵션, 바로 주식매수선택권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아프리카TV는 2014년 9월과 지난 7월에 각각 30명, 43명씩 총 73명의 ‘파트너 BJ’들에게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했다. 상법 제340조의 2, 542조의 3 및 동법 시행령 제30조에 따르면 주식매수선택권은 “회사의 이사, 집행임원, 감사 또는 피용자”에게 부여할 수 있다고 돼있다. 실제로 아프리카TV의 공시에도 부여대상자에 ‘해당 상장회사의 이사·감사 또는 피용자’라고 명시돼있다. 더욱이 지난해 9월에 부여한 30명의 파트너 BJ들은 회사와의 관계에 ‘직원’이라고 돼있다. 파트너 BJ들을 단순한 플랫폼 이용자가 아닌 아프리카TV 소속 직원으로 볼 수 있는 근거인 셈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주식매수선택권은 회사의 임직원에게만 부여할 수 있다”며 “일반적 계약에서도 회사에 대한 배타성이 인정된다면 사실상 고용관계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아프리카TV 관계자도 “파트너 BJ와 회사는 계약을 맺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계약의 세부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톡옵션을 받은 70여 명의 파트너 BJ들 중에는 이미 방송사고 전력이 있거나 지금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파트너 BJ는 방송 중에 장애인 비하 발언, 욕설, 도박 게임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다른 파트너 BJ는 지난 성상납 폭로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회사가 문제의 BJ를 강력히 제재할 수 없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프리카TV의 매출 중 97.7%는 ‘미디어플랫폼’에서 나온다. 사실상 회사의 수익의 전부를 BJ들을 통해서 얻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아프리카TV의 수익 대부분이 인기 BJ들에게서 나오는데 어떻게 이들을 강하게 처벌하거나 회사에서 내쫓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