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시중은행 최고경영자들 앞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적지 않다.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일요신문 DB
지난 연말,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꼭 이겨야 했던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게 고배를 마신 것. 회장은 올해 대우증권을 대신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할 묘수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윤 회장은 일단 KB금융 내부의 비은행 계열사를 키우는 데 주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증권사 인수합병에 다시 도전하는 등 ‘플랜B’를 검토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이미 지난 21일 열린 KB금융 대책회의에서 “대우증권 인수가 불발돼도 플랜B 전략을 추진해 비은행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실패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윤 회장 플랜B의 핵심은 KB투자증권, KB손해보험, KB캐피탈 등에 투자해 자체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KB투자증권은 먼저 증자를 실시해 덩치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 현재 KB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5000억 원 정도로 증권업계 20위권에 불과하다. 이어 은행과 증권이 결합된 복합점포를 늘려 KB투자증권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증권사 영업에 국민은행의 영업 채널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KB손보의 경우 지분 추가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KB 측은 “KB투자증권의 증자나 KB손보 지분 인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반응에 금융권은 다른 증권사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외형 확대에 나서려던 KB가 KB투자증권의 증자나 KB손보 지분을 인수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선택지는 M&A(인수·합병)”라면서 “올해 현대증권과 ING생명 등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예정이니만큼 향후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금융과 함께 국내 금융그룹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신한금융그룹 한동우 회장은 올해 후계구도 확립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신한금융 내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응찬 전 회장 계열 인사들의 권토중래를 허용할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일단 지난 연말 단행된 신한금융지주 임원인사는 한 회장이 ‘중립’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한지주 부사장으로 발탁한 두 명의 임원이 모두 특정 계파 소속이 아닌 데다 과거 내분사태 당시 권력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지난 12월 29일 열린 이사회와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통해 임영진 신한은행 부행장을 신한금융 부사장으로 신규 선임하고, 임보혁 신한금융 부사장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신한금융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글로벌, IB, IT, 자산관리 등에서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인사를 신임 경영진으로 적극 발탁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물론 두 사람의 전문성과 경영능력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과거 신한사태 당시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한동우 회장이 두 사람을 택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우선 임영진 부사장은 지난해 초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이 갑자기 입원한 뒤 행장직무대행을 맡았던 인물이다. 신한 사태 당시 지방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그룹 내분과 무관한 길을 걸어왔던 그를 행장직무대행에 이어 지주 부사장으로 발탁한 것은 ‘탕평인사’로 볼 수 있다.
임보혁 부사장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신한 사태 당시 전략지원부장이던 그는 권력투쟁과 한 발짝 떨어진 입장을 유지했다. 덕분에 지난 2010년 신한 사태 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을 당시 단장을 맡을 만큼 중립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임영진 부사장과 함께 지주사의 쌍두마차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이는 조용병 신한은행장이다. 한동우 회장이 신한 사태 당시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그에게 신한은행을 맡긴 데 이어 신한지주 부사장 두 명도 모두 중립 인사로 채웠다는 것은 최소한 한동안은 라응찬-신상훈 두 계파 어디에도 힘을 싣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신한금융은 이제 ‘계파 없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한동우 회장이 과거와 작별하겠다는 의미인지, 라응찬 전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라인을 만들겠다는 의지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외에도 은행권에는 새해 어려운 과제와 마주할 CEO가 많다. 우선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마무리해야 한다. 지난해 여러 난제를 뚫고 두 은행의 합병에 성공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회장은 지난해 9월 외환은행 통합 직후 “3개월 내 조기 화학적 통합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지금도 내부 분위기는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하나멤버스 가입자를 단기간에 늘리기 위해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부여하는 등 무리한 영업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노조 측의 반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민영화’라는 숙제를 2016년에는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중동 국부펀드가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리며 서광이 비쳤지만 이후에는 감감 무소식이니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임기 2년짜리 단기 CEO로 취임한 이광구 행장의 임기가 올해 11월로 끝나기 때문에 적어도 상반기 안에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와야 임기 안에 민영화를 완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밖에 박종복 SC은행장은 수익부진에 계속되는 한국 철수설 등을 잠재워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총선출마설이 도는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자리를 지킬지가 변수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