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스컵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MVP(팀동료들과 우승을 기 뻐하는 박지성·작은 사진)에 올라 부상 후유증을 말끔히 털어버린 박지성은 다가오는 시즌부터 진정한 이름값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네덜란드와 스페인으로 출국하던 박지성과 이천수의 출국 풍경이다. 1시간 간격으로 출국 일정을 잡은 두 선수를 지켜본 기자 입장에선 각자의 성격처럼 상반된 출국 장면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무릎 부상의 악몽에서 벗어나 이번 피스컵코리아대회 초대 MVP로 등극한 박지성과 한국 선수 최초의 프리메라리가 진출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달고 스페인으로 향하는 이천수. 81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출국 전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가슴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박지성]
“경기 끝나고 (홍)명보형이랑 유니폼을 교환하고 엄청 후회했어요. 구단 관계자가 절대로 옷을 교환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거든요. 그런데 명보형이 먼저 유니폼을 벗는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도 벗어드렸죠.”
박지성은 MVP에 대한 소감보다 지난 20일 LA갤럭시와의 경기에서 벌어진 유니폼 소동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인트호벤에선 선수들한테 파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 있는 유니폼을 딱 2벌만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유니폼을 잃어버릴 경우엔 경기 출전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더욱이 피스컵 대회를 마쳤다고 해도 2벌의 유니폼은 깨끗이 빨아서 네덜란드로 가져가야 하는 게 구단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LA갤럭시전이 끝난 뒤 홍명보가 다가와 유니폼을 교환하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후배인 박지성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어 건넸던 것.
그후 바빠진 사람은 박지성의 부모였다. 동대문 의류시장을 불나게 뛰어다니며 박지성의 등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짝퉁’ 에인트호벤 유니폼을 구한 뒤 경기 전날에야 박지성에게 전해줬고 박지성은 서울에서 산 유니폼을 입고 결승전에 출전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무릎 수술 후 처음 서 본 그라운드. 그것도 네덜란드가 아닌 한국에서의 재기 무대는 박지성한테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줬다. 특히 지난 월드컵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한국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피스컵 대회를 통해 박지성은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팬들 또한 왜 그토록 박지성한테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골을 더 넣을 수도 있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엔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하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을까’가 중요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피스컵 대회는 에인트호벤 동료 선수들한테 박지성의 한국에서의 인기와 존재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 ‘한마당’이었다. 호텔 숙소나 훈련장, 경기장까지 박지성을 ‘오빠’라고 부르며 쫓아다닌 팬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 피스컵 결승전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이 나란히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 ||
‘오빠부대’의 열광적인 응원 덕분에 동료들 앞에서 ‘가오’ 잡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컸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보여준 게 거의 없었잖아요. 그런 선수가 인기 있다는 게 동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겠죠. 그나마 다행인 건 게임을 잘 풀어나갔고 결과가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말하길 꺼려 했던 군사훈련 기간의 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박지성은 부대 내에서도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신기하게 쳐다보는 수많은 시선들로 인해 한동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4주 동안만이라도 남자들과 부대끼며 사나이들만의 진한 우정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어딜 가나 스타로 대접받는 바람에 처신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사격은 배운 대로 했는데 1등을 먹었어요. 제일 무서웠던 건 수류탄 던지기였습니다. 만약 실수로 잘못 던져 제 옆에서 터져버리면 그냥 죽는 거잖아요. 훈련 마치고 퇴소식을 할 때 사람들이 연락처를 적어주며 전화하라고 했는데 아마도 못할 것 같아요. 축구선수로 이름이 알려지면서부터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하는 병이 생겼어요. 축구 외적인 인간 관계는 별로 득이 될 게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에요. 정말 안타깝죠.”
박지성은 피스컵대회 기간 내내 주전으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처음엔 히딩크 감독의 배려 아닌 배려에 속깊은 고마움을 느꼈지만 대회가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 슬그머니 감독을 원망하게 됐다고 토로한다.
“제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잘 아셨을 거예요. 그래도 팬 서비스 차원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교체해 주질 않더라고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과연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에서도 피스컵대회에서처럼 절 주전으로 쓸까요?”
박지성도 이천수처럼 출국 전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손질하고 염색도 했다. 그날 밤 아버지 박성종씨로부터 엄청난 ‘핀잔’을 들었지만 ‘순진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박지성도 멋을 낼 줄 알고 패션에 신경을 쓰는 신세대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터뷰 말미를 장식하는 멋진 대답을 주문하며 단서 하나를 달았다. “최선을 다하겠다든가 열심히 하겠다든가 하는 말 하지 않기.”
“지켜봐 주세요. 노력하는 모습 모여드리겠습니다(이 정도면 할 말이 없다). 참, 다음주부터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그때 꼭 다시 만나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 세계축구계의 왕별인 베컴과 자신을 비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당돌한 아이’ 이천수에게서 낯선 무대에 발을 내딛는 두려움이나 긴장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작은 사 진은 출국 전에 부모와 형 등 가족과 함께한 모습. | ||
박지성처럼 이천수도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그 느낌이 극과 극이다. ‘튀는 아이’ 이천수답게 소매 없는 티셔츠에 요즘 유행하는 캡이 달린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에다 가죽 팔찌까지 두른 경쾌한 차림새다.
이천수와의 인터뷰는 팬들의 사인 공세를 피해 공항 내 비즈니스센터에서 단독으로 진행됐다. 먼저 전날 5시간 넘게 공을 들였다는 헤어스타일을 모자로 감춘 이유에 대해 묻자 이천수는 이런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원래 스페인 무대에서 보여드리려고 한 염색이거든요. 레알 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고 뛸 때 별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선보이고 싶어 일부러 감췄어요. 멋진 플레이에다 멋진 골 세리머니, 그리고 멋진 헤어스타일까지 3박자를 갖춘다면 소시에다드 팬들은 물론 국내 팬들도 훨씬 더 큰 기쁨을 맛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휴대폰 화면에 ‘아시아의 베컴’이라고 해놨는데 베컴을 타깃으로 삼는 이유가 있다면.
▲‘아시아의 베컴’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건방지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수가 베컴보다 못할 게 뭐가 있냐, 자존심 상한다’고 절 옹호하는 분들도 있어요. 현재 축구선수 중 가장 인기가 있고 가장 멋진 플레이와 코디네이션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선수가 베컴이잖아요. 그를 능가할 만한 선수가 되고 싶은 게 진짜 저의 솔직한 욕심입니다.
(어떤 질문에도 청산유수처럼 답변하는 이천수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느낄 수 있다. 팬과 기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진출 소식이 알려진 후 선후배들이 ‘몸살’을 앓았다는 소리도 들린다(실제 외국에 있는 A선수는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했단다). 부러움 반, 질투 반이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 다른 선후배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전 한번도 제가 실력이 없어서 못나간다고 생각해보질 않았어요. 운도 없었고 에이전트 관계가 미묘하게 꼬여서 못나갔을 뿐이지 축구에선 내가 제일 잘한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잘 풀리는 걸 질투하지 않았어요. 아마 그들도 절 질투하거나 시기하진 않을 거예요.
제 역할이 상당히 크다고 봐요. 아시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가 왔는데 제가 못하면 다음에 후배들이 들어오기가 힘들잖아요. 누나(기자를 지칭)가 잘못 들으신 것 같은데, 누가 배 아파 하겠어요. 박수를 쳐줬으면 쳐줬지. 안그래요?
―다른 선수보다 유독 안티 팬들이 많았는데 지금과 같이 팬들의 뜨거운 애정(밖에선 이천수를 빨리 내보내달라는 팬들의 성화가 대단했다)을 느끼면 가슴이 뭉클해질 것 같다.
▲아마 안티 팬클럽 회원들이 1만 명이 넘을 걸요? 하지만 신경 안써요. 절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만 있어도 전 그들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골 세리머니를 연구할 거니까요. 언젠가는 1만 명의 안티 팬들이 모두 저의 열렬한 팬들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정말 자신 있어요.
인터뷰를 하다가 공항 3층의 한 식당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자리를 옮겼다. 비즈니스 센터를 나서는 순간 또 한번 이천수는 사인을 원하는 팬들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매니저 송대한씨의 손에 이끌려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가는 이천수 뒤에 기자, 그리고 사진기자도 붙어 덩달아 1백미터를 달리는 기분으로 열심히 뛰었다.
―스페인에 진출하면서 이적료를 포함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며 무조건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돈을 많이 벌려고 대학에 다니다 프로에 진출했고 지금처럼 외국에도 나가는 거죠. 아직 멀었어요. 현재까지의 수입은 모두 부모님 드렸어요. 전 정말 빈털터리예요. 이제부터 벌어야죠. 4백만~5백만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죽기살기로 뛰어야죠.
이천수는 때론 형처럼, 때론 친구처럼 대했던 매니저 송대한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힘들 때 제 곁을 떠난 사람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대한이형은 절 끝까지 지켜주셨어요. 스페인에서 함께 생활할 예정이에요. 둘이서 멋진 ‘작품’ 만들어서 돌아올게요.”
이천수 ‘홧팅’이다. 오랜만에 본 이천수의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그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부쩍 성숙해진 이천수의 멋진 플레이와 골 세리머니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