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에 있는 구벼욱지 사원. 아버지를 기리는 효심이 가득한 내부의 벽화가 감동적이다(위). 양곤항에서 달라 섬으로 가는 페리리 위에서.
노부모는 부부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내의 친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이 친구의 친어머니입니다. 부부가 홀로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겁니다. 한 번도 문제없이 서로 배려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손님인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노부모를 뒤로 하고, 페리 선착장으로 돌아오며 이 친구의 가족사를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효심이 지극한 아들입니다. 가족들을 얘기할 때, 참 표정이 밝습니다. 아내의 아버지를 친아버지 이상으로 존귀하게 생각합니다.
고대 유적지가 있는 미얀마 중부지방 바간에 가면 구벼욱지(Gubyaukgyi) 사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내부 촬영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사진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내부 천정에서 사방 벽까지 온통 벽화로 채워진 그곳을 거닐며, 관광객들은 ‘효심’에 감동을 받습니다. 아들 야자쿠마가 1113년에 아버지인 짠시타 왕을 기리며 세운 곳입니다. 짠시타 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아들 야자쿠마는 왕이 되진 못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이 사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름다운 벽화 속의 동물들과 꽃들과 문양들이 살아나오는 듯 느껴집니다. 온 내부를 가득 채운 섬세한 벽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옵니다. 시작에서 끝까지 아들이 지켜보며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구벼욱지 사원 옆에는 먀제디 사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들 야자쿠마가 아버지 짠시타 왕의 공적을 4가지 고대 언어로 세운 비문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세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 돌아가셨을 때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적지입니다. 지금 미얀마에선 아주 중요한 역사자료가 되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이 거의 다 아는 설화가 있습니다. 마하기리(Mahagiri) 설화입니다. 대표적인 민간신앙이 되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입니다. 만달레이 인근 따가웅 왕국에 한 대장장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사나운 코끼리의 상아도 부러뜨리고, 망치로 내려칠 때는 온 땅이 진동을 할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이 왕국의 왕은 이 대장장이가 늘 두려웠습니다. 왕위를 뺏길까 노심초사하다 그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 사실을 안 대장장이는 숨어서 살아갑니다. 그러자 왕은 대장장이의 여동생을 왕비로 맞습니다. 그리고 처남인 대장장이를 왕궁으로 부릅니다. 대장장이가 나타나자 왕은 그를 잡아서 나무에 붙들어 매고 불에 태워 죽입니다. 왕비인 여동생은 모든 것이 오빠를 죽이기 위한 왕의 술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자,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불길에 뛰어들어 오빠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후 대장장이를 묶은 그 나무를 지나는 사람이나 동물이 이유 없이 자꾸 죽어나가자, 놀란 왕은 나무를 베어 에야와디 강에 버렸습니다. 나무둥치는 강을 따라 바간 왕국까지 떠내려왔고 당시의 띤리짜웅 왕이 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오누이의 슬픈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했다는 전설입니다. 여동생을 ‘위대한 여동생’이라는 뜻인 흐나마도지(Hnamadawgyi)라고 합니다.
아내를 키워주신 장인어른. 백성의 존경을 받은 왕이지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은 아버지. 자신을 끝까지 돌본 오빠.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보답하고 배려하려는 미얀마의 전통. 그 전통이 역사와 삶에 스며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기. 힘든 덕목입니다. 새해 아침에 문득 양곤항 건너편 달라섬의 노부모들이 생각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