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국가안전보위부 청사에 ‘장성택 선생님을 왜 죽였습니까?’라는 전단이 살포됐다. 사진은 2012년 11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보위기관창립절을 맞아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해 보위전사들을 격려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4년 5월경, 김정은은 평양 아미산 아래에 위치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본부 청사를 들를 예정이었다. 이유는 보위부 내부 행사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 내용은 김정은이 보위부 내 승진 상황을 파악하고 대상자에게는 직접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초대형 비상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누군가에 의해 작성된 전단(속칭 삐라) 수십 장이 보위부 청사 사방에 살포된 것이다. 그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전단에는 ‘장성택 선생님을 왜 죽였습니까?’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장성택 숙청에 앙심을 품고 북한 내부에서 말하는 소위 최고 존엄(김정은)에 정면 도전을 한 셈이었다. 북한 내부에서는 응당 ‘반역죄’에 해당하는 위험한 행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를 보고받은 김정은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당시 김정은은 김원홍 보위부장에 “아직도 당의 영도를 거부하는 반당암해분자들의 뿌리가 박혀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무조건 잡아내기 전에는 보위부 현지 사찰을 오지 않겠다”고 엄포했다.
명령을 받은 김원홍은 실제 사건 발생 후 몇 달 동안 외부 노출이 극히 드물었다. 그리곤 보위부 1국(작전종합국)과 반탐정국(2국)을 곧장 비상체제로 가동하며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다. 당시 이 사건은 필자가 2014년 7월 8일과 17일, 북한 내부의 복수 소식통으로부터 전달 받은 사안이다. 이후 김원홍이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복귀한 것으로 보아, 보위부는 범인을 잡았거나 혹은 범인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상황은 아직 필자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사건 발생 장소다. 사건은 보위부 본부청사에서 발생했다. 반체제 인사를 잡아들이는 북한 내 최고 방첩기관에서 되레 반체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국가정보원 안에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이 살포되는 경우와 견줄 만하다. 더욱이 현지지도 차 김정은이 보위부 본부청사를 방문할 기회를 노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물며, 국가 원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북한의 최고 존엄을 겨냥해 방첩의 심장부이자 최후의 보루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충격적인 일이다. 이는 결국 북한 내 지하 반체제조직이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안보담당 핵심권력기관 곳곳에까지 조직돼 있고, 퍼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게다가 전단을 살포한 범인들은 김정은의 청사 방문 일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1호 행사(북한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행사를 지칭) 일정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위부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고위 핵심 인사들만 알 수 있는 사안이다. 이는 곧 보위부 내 일부 핵심인사들이 반체제조직에 연루돼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살펴볼 점은 전단의 특징과 살포 방식이다. 보위부 초기조사에서 전단은 사건 당일 새벽 4~5시 사이 누군가 본부 옥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분량은 A4용지 수십 장 정도였다. 청사 옥상에 올려 진 전단은 자연바람을 타고 본부 청사를 좌우 160㎡ 반경에 뿌려져 있었다. 특히 해당 전단은 문서 프로그램으로 작성돼 인쇄된 것이 아닌, 수기로 쓴 것이었다. 필체 역시 제각각이었다. 수거된 전단을 놓고 볼 때, 최소한 5~10명이 투입된 듯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필체 압력 분석 결과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쓴 것이었다.
이는 해당 행위를 저지른 보위부 내 반체제조직이 매우 체계적이고 치밀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첫째, 전단 살포 지점과 방식이 매우 전략적이었다는 점, 둘째, 필체 분석 결과 전단을 작성한 주체가 최소한 5~10명으로 규모가 꽤 크다는 점, 셋째, 필체 특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왼손을 사용할 정도로 치밀하다는 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북한의 각 기관들의 문서 인쇄 시스템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각 기관마다 프린팅 기계에 특정한 프로그래밍을 해놔 문서 작성 출처를 알 수 있게끔 해놓았다는 것이다. 전단을 작성해 살포한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까지 인식해 결국 수기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014년 4월 군 창건일 기념식을 앞두고 방화가 발생한 4·25문화회관. 사진은 2012년 2월 16일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번째 생일기념 행사. EPA/연합뉴스
북한의 또 다른 권력기관인 군 총정치국에서도 비슷한 시기, 큰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가 이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얻은 것은 2014년 7월 23과 8월 4일, 북한 내부의 복수 소식통에 의해서다. 사건은 2014년 4월 23일 군 총정치국 내 선전국 산하 4·25문화회관(기존 2·8문화회관)에서 발생했다. 4·25문화회관은 북한 군 최고 권력기관인 총정치국의 주요 회의 장소로 유명하다.
이날 4·25문화회관에서 의문의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일단 주목해야 할 점은 사건 발생 시기와 장소다. 4월 23일은 북한 최대 국경일 중 하나로 꼽히는 군 창건일(4월 25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군 총정치국 역시 창건일에 맞춰 하루 전인 4월 24일 오후 5시 해당 장소에서 큰 규모의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1호 행사 버금가는 국가적 행사가 진행되기 전 시간, 그것도 군 최고 권력기관인 총정치국의 심장부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화재는 평양시 안전부 소속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진압됐지만, 그 피해규모가 제법 컸다고 한다. 다음 날 치러질 창건일 행사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총정치국과 소방대가 발표한 공식 화재원인은 ‘누전으로 인한 화재’였다. 하지만 필자가 내부 관련 소식통으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당시 화재현장을 조사한 관계자들은 화재 원인을 ‘방화’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중앙당 및 군 총정치국 내부에선 철저하게 이 사건의 배경을 숨기고 누전사고로 조작하여 보고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총정치국에선 당시 방화의 주체를 군 내부에 형성된 반체제조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상징적인 장소에서 방화가 이뤄졌다는 점은 결국 분명한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암시한다. 반체제조직의 방화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분명 상징적 방화 사건을 통해 김정은과 군 관련 핵심고위층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사건으로 인해 총정치국장에 있었던 최룡해는 김정은으로부터 굉장한 질책을 받았다. 거의 히스테리적인 발작 수준이었다고 한다. 사건 직후 최룡해는 당 근로단체 비서로 사실상 좌천된다. 최룡해의 당시 좌천은 권력 내부 사정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 화재사건 역시 그 명분의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 북한 내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앞서 필자가 공개한 두 가지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형성돼 활동하고 있는 지하 반체제조직이 수준 높은 조직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한 내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꾀하고 있는 조직은 대여섯 개 정도로 보인다. 그 조직의 실체와 성격을 좀 더 면밀히 공개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들의 신변 문제 때문에 더 이상의 공개는 생략한다.
다만 반체제조직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끔찍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북한 내 대량 아사 사태)’를 전후해서다. 1992년 발생한 프룬제사건(프룬제군사대학 출신 간부들의 쿠데타 모의 발각 사건), 1995년 발생한 6군단 사건(6군단 간부들의 쿠데타 모의 발각 사건) 등은 이러한 반체제 조직의 맹아기에 벌어진 현상 중 하나라 하겠다. 그 주체세력들 중 상당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간부들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반체제조직의 활동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 점차 확대되고 조직화 혹은 카르텔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혁적 정책을 지향했던 장성택의 숙청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 정권과 체제에 맞서는 개혁과 더 나아가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다면 그 주체는 북한 내 지하 반체제조직에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숙청설 최룡해 김양건 장의위 포함된 사연 ‘중앙무대’로 컴백하나 지난 12월 29일 새벽 6시 15분경, 북한 내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양건 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했다. 향년 73세.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그의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최룡해 당 비서. 그동안 김양건 비서는 북한 내 최고의 대남통이자 외교통으로 통했던 핵심인물이다. 특히 통전부장으로 재임한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남한을 방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에 따라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북관계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김양건 당비서의 죽음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최룡해 당 비서다. 최 비서는 30일 공개된 김양건 비서의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됐다. 그는 이번 명단에서 김기남 당 비서와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사이에 위치했다. 이는 그의 기존 공식서열인 6위에 해당하는 순서다. 그는 지난 11월 7일, 리을설 전 호위사령관의 사망 당시 장의위원회에서 제외된 이후 최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실각설이 나돌았다. 다만 최 비서가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됨에 따라 그의 중앙무대 복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12월 28일, 연재물 ‘이윤걸이 쓰는 진짜 김정은이야기(1233호)’를 통해 이미 최 비서의 신변 안전과 복권 가능성을 높게 내다본 바 있다. 당시 연재기사의 내용은 ‘(실각설이 나돌던) 리을설의 사망 이후였던 11월 14일경, 어느 때와 다름없이 최룡해 딸의 요청으로 특정 물품을 북송했는데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판매대금을 평시 계약한 방식대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골자였다. 즉, 최 비서가 숙청됐다면 친인척의 이러한 정상적인 무역 거래 성사는 불가능 하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곧 최 비서의 신변이 안전하고 복귀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상대로 최 비서는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되며 복귀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걸] |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