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해설가로도 잘 알려진 에이전트인 홍이삭씨는 네덜란 드를 찾아 히딩크 감독과 반가운 만남을 갖기도. 그는 올림 픽 및 청소년 대표 10여 명을 관리한다. | ||
웬만한 A급 스타들은 이미 베테랑들이 입도선매한 터라 화려한 ‘장사’와 ‘흥정’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험과 자본력의 한계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 게다가 ‘비 축구인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신진 에이전트’들의 근황과 함께 그들의 솔직한 심경을 들어봤다.
2001년 9월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후 본격적으로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한 홍이삭씨. 2002년 월드컵 때 KBS 축구해설가로도 활약해 일반 축구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도 이용수 위원과 함께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중계를 맡고 있다.
일천한 경력이지만 홍씨는 지난 5월 울산 구단으로부터 이천수 이적을 담당하는 대리인으로 위임돼 레알 소시에다드행을 이끌어내며 신예의 힘을 과시했다. 포르투갈 1부에 진출한 기대주 정병민과 올림픽 및 청소년 대표 선수 10여 명을 관리하고 있다.
홍씨는 아시아권 선수에게 투자를 꺼려하는 유럽의 편견에 맞서 한국 선수들의 기량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더욱 진땀을 뺀 것은 ‘임대 절대 반대, 과다 이적료’만을 외치는 한국 프로구단의 입장을 유럽의 구단 관계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었다고.
‘이렇게 사정을 모를 수가 있나. 없었던 일로 하자’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간 들인 공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최태욱의 이적 실패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는 홍씨. “지난해 8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롭반 이사가 최태욱을 임대해 4개월 뒤 이적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단에서 ‘임대’는 절대 불허하겠다고 해 무산된 바 있다.
줄기차게 폐예노르트 측을 설득한 끝에 그해 11월 롭반 이사가 내한해 경기를 지켜봤으나 최태욱이 후반 중반에 나서 저조한 플레이를 펼치자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며 크게 실망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는 이천수 역시도 충분히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면 이적료로 4백50만달러를 제시한 잉글랜드 명문 첼시나 지난해부터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사우스햄튼 ‘입성’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홍씨 이외에도 몇몇 자격증 보유자들 역시 신예 에이전트로 나서고 있으나 그 활약상은 미미한 편이다. 자본력이 떨어져 과감한 투자가 힘들기 때문에 그야말로 ‘돈이 되는’ 특급 선수들과의 계약은 사실상 어렵다. ‘대박’은 고사하고 오히려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
▲ 사진은 컴퓨터로 각종 기록을 점검하고 있는 에이전트 정효웅씨. | ||
박영욱씨는 “연봉을 지나치게 많이 받게 해달라고 하거나 일본이나 유럽으로 당장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예상외로 곤혹스럽다”며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미룬 채 계약 조건에만 집착해 진솔한 대화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배드민턴 선수 출신으로 2002년 9월 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이기완씨는 몇몇 크로아티아 용병들과 실업 및 고교 선수들의 프로 입단을 추진하고 있다. 신인으로선 파격적으로 차세대 스트라이커 조재진(22·상무)을 품에 안아 축구계에서 화제가 된 유지호씨는 ‘미스터 조’를 얻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하면서도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의 공개는 극구 꺼렸다.
이들 외에 상당수 합격자들은 아예 3∼4년간은 정보 수집에만 매달리겠다며 ‘개점 휴업’을 선언한 상태다. 스포츠 경영학 박사 1호인 김체주씨는 대학에 출강하다 3년 후에나 에이전트로서 활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씨는 “아직은 축구판에서 에이전트는 그저 ‘매니저’일 뿐이다.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경비 또한 부담스럽다. 대부분 에이전트들이 여유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또한 창원법원에 근무하는 신호재씨 역시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 그는 중·고교축구대회를 주로 다니며 ‘보는 눈’을 키우는 중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일찌감치 베테랑들이 운영하는 에이전트사나 축구협회 등 축구 관련 기관 취업을 노크한 사례 역시 적잖다. 심지어는 연 보험료(약 1백95만원)를 FIFA에 납입하지 않고 그냥 ‘자격’을 포기한 이도 있다.
이들 ‘신인’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공인 에이전트들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서는 것이다. 무분별한 선수 접촉 등 기존 관행의 개선과 함께 학부모, 지도자들이 에이전트를 전문인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또한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선수들도 자신의 상품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선진적인 ‘공생’ 관계 구축을 역설했다.
유재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