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일각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일 열린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경축 평양시 군민연환대회’, 오른쪽 사진은 김정은. 연합뉴스
지난 7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선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이와 함께 몇몇 최고위원들은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북한이 머리 위에서 핵무기라는 총을 겨누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 제재라는 칼만 갖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자위권 차원에서 우리도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했다. 그러자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중국·러시아에 이어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국이 됐고 일본도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을 할 수가 있다. 우리도 이젠 우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절실히 찾아야 할 때”라고 거들었다.
여당 지도부가 현실적인 불가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장론을 꺼낸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총선을 겨냥한 행보라고 받아들인다. 4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보수층 표를 노린 계산된 발언이라는 얘기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한반도 비핵화는 1992년 남북이 공동 서명한 사안으로 우리 스스로 그 원칙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집권 여당이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며 핵무장론을 들고 나온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자 북한의 불장난에 춤추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논란이 확산되자 “개인 입장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지금의 여당 내부에선 핵무장 발언이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던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이 터지자 친이계 공성진 전 의원은 “비핵화 공동선언이 과연 유효한지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핵무장 필요성을 언급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땐 새누리당 중진 정몽준 전 의원이 “이웃집 깡패가 최신 기관총을 구입했는데 돌멩이 들고서 집을 지키겠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 6일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뉴스를 용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시청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러나 이러한 핵무장론은 현실적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우리는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핵 문제는 미국과 함께 가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깨지 않는 한 핵무장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겠다고 하면 일본, 대만도 다 따르는 핵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주변국과 등지고 살지 않는 이상 핵무장은 어렵다. 정부 차원에선 핵무장 얘기를 꺼낼 수 없으니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표현하는 것 아니겠느냐. 북한의 위협이 높아지는데 미국 핵우산은 충분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무장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정부 입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7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정부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관철시킨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핵무기의 생산, 반입 등이 안 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한다”며 핵무장론을 일축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북한 핵실험을)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신중한 대처와 함께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러 주장들이 혼재돼 있다”면서 “핵무장론은 여러 의견 중의 하나일 뿐, 중론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를 종합해봤을 때 여권 일각의 핵무장론은 정치 구호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기술적으로’ 핵무장은 가능할까. 정치·외교적인 주변 여건은 모두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전문가들은 어렵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1년 6개월 안에 핵무장을 끝낼 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과학기술이 떨어지던 시절에 핵개발을 시작해 핵보다 더 파괴력이 있는 수소폭탄을 7년 만에 개발해 냈다. 우리는 그때보다 과학수준이 훨씬 앞서 있다. 핵개발과 관련된 모든 기술을 이미 우리는 가지고 있다. 플루토늄을 추출하기만 하면 된다. 기술이나 인력 모두 풍부하다. 결정만 되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균렬 교수는 우리가 핵개발을 할 경우 실험도 필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와 북한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가 50년 정도 앞서 있다. 북한처럼 굳이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하다. 이스라엘도 핵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핵을 갖고 있다”며 “다시 말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고 통수권자 결심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다. 내가 핵과 관련된 논문을 국내에서 발표했는데 미국에서 먼저 전화가 오더라. 그만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 차원에서 핵무장을 추진한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초부터 카터 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을 간파하고 은밀히 핵개발에 나섰다.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유럽과 캐나다 등지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려 했다. 1975년 6월 26일 <워싱턴포스트>와의 대담에선 “미국이 만일 핵우산을 철수한다면 핵무기를 포함하는, 우리 생존을 보장 할 수 있는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공개적으로 핵개발을 천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월 3일 측근들에게 “1981년 핵무기 제조를 완수할 수 있다. 그때 여의도에서 원자탄을 전 세계에 공개할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사망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핵개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간간이 핵무장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정도였다. 양욱 연구위원은 “지금 핵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북한이 저렇게 핵실험을 하는데 우리는 가만있을 수밖에 없는 이런 현실을 외교적으로 잘 이용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하려 하자 핵개발로 대응했다. 결국 핵개발은 실패했지만 미군 철수를 막는 효과를 거뒀다”면서 “오늘날 핵무장론 역시 현실적으론 힘들다고 해도 충분히 유리한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프랑스가 핵개발을 반대하는 미국에게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시킬 수 있느냐’고 물으며 결국은 핵을 만들었던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