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중간간부급 인사에서 국정원 관련 사건들을 담당했던 인물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인사가 발표된 후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서울고검에서 울산지검으로 발령이 난 최성남 차장검사였다. 최 차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공안1부는 국정원과 공조를 통해 유우성 씨를 간첩죄로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종 증거의 조작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할 정도로 정국을 강타했다.
이후 국정원의 증거조작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결국 조작된 유우성 씨의 간첩죄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나왔다. 당시 검찰은 “우리는 전혀 몰랐다”고 발뺌했다. “문서의 진위 여부를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느냐. 우리도 억울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여론이 너무 안 좋다는 이유 등으로 공안1부 소속 부장과 담당 검사 등 3명을 한직으로 좌천시켰다. 최 차장을 서울고검으로 보냈고, 이시원·이문성 검사도 각각 지방 고검으로 발령 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공안통인 최 차장은 공안사건이 다수를 차지하는 울산지검 차장으로, 이시원 검사는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가면서 사실상 복권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고위 인사는 “울산은 공안사건이 많기 때문에 공안통들은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고, 대구고검에 있던 이시원 검사를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보낸 것도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석열 검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윤 검사는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 당시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당사자인 국정원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 정권 차원에서 만류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윤 검사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수사팀 의견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기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던 만큼 윤 검사가 총대를 메고 검찰 수뇌부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 내에선 당시 “아무래도 강성인 특수부 검사들로 구성됐으니 수사팀은 강경한 입장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박형철 검사가 정권의 눈 밖에 난 것은 이 대목에서다. 윤 검사가 특수부 출신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안통인 박 검사까지 윤 검사 등의 의견에 동조할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당시 공안 출신 한 고위 간부는 “박형철 검사가 우리 얘기를 안 들을 줄은 몰랐다”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공안 출신의 다른 고위 간부는 “공안통인 박형철 검사가 볼 때도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며 “그건 박형철이라는 검사의 판단인 것이지, 그가 단순하게 윤 검사 등 특수부 출신 검사들에게 동조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윤 검사가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된 후 팀을 이끌어왔고, 최근까지 공판에 나와 공소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인사직후인 지난 7일 사표를 던졌다.
검사장 출신 한 중견 변호사는 “국정원 댓글사건이나 증거조작 사건의 경우 사실상 정보기관이 탈선을 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그 같은 탈선을 지적하고 문제를 삼으면 영원히 아웃되는 거고, 그렇지 않고 눈 감거나 모르면 복권을 시켜주는 게 이 정권이 원하는 검찰상이다. 그러니 결국 인사가 ‘그 나물에 그 밥’이 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