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이컨과 그의 아내 그레타 켈러. 켈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그만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1914년에 태어난 데이비드 베이컨은 보스턴 지역에서 유명했던 전통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 가스파 베이컨은 보스턴대학 법대 교수였으며, 1930년대엔 매사추세츠의 부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어릴 적 친구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들이었고, 종종 백악관에 놀러가기도 했다. 베이컨이 연기에 관심을 가진 건 하버드의 연극반 시절이었다. 188센티미터에 날씬한 몸매, 푸른 눈에 갈색 머리의 베이컨은 매우 재능 있는 청년이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엔 ‘유니버시티 플레이어스’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뉴욕을 거쳐 LA로 진출한다.
그를 눈 여겨 본 사람은 하워드 휴즈였다. 항공업계의 거물이었던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나름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1942년 휴즈는 베이컨과 3년 계약을 맺었다. 한편 그는 LA에서 만난 11살 연상의 오스트리아 출신 오페라 가수 그레타 켈러와 결혼했고, 1943년에 40세였던 켈러는 천신만고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배우로서 힘든 시절을 보내던 베이컨이 드디어 타이틀 롤을 맡았던 영화는 12편의 시리즈로 제작된 <더 마스크 마블>(1943)이었다. 그는 수트 차림에 마스크를 하고 등장해 일본인 악당과 싸우는 ‘마블’ 역을 맡았다. 이전에 캐스팅 된 네 명의 배우가 공교롭게도 모두 사고로 다치는 바람에 베이컨에게 기회가 간 것이었다. 행운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불운의 징크스였을지도 모른다.
1943년 9월 12일 일요일, 베이컨과 켈러 부부는 LA 산타모니카에 사는 친구 제럴딘 스프레클스의 집에 갈 예정이었다. 부부는 종종 제럴딘의 집에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임신 5개월이었던 켈러는 몸이 좋지 않았고, 외출 대신 수면을 선택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베이컨은 집에 없었다. 그리고 오후 5시경, 산타모니카의 워싱턴 대로에서 자동차 하나가 도로를 이탈해 인도로 튀어 올랐고 결국은 근처 콩밭에 처박혔다. 몇몇 목격자에 의하면, 차에서 가까스로 기어 나온 베이컨이 비틀거리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쳤고, 사람들이 달려갔을 땐 쓰러져 이미 숨졌다고 한다. 당시 그는 수영복 트렁크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등에 난 깊은 자상. 14.6센티미터의 깊은 상처였고, 칼은 베이컨의 폐를 관통했다. 그런 상처를 입으면 길어야 20분 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검시관의 소견이었다.
영화 <더 마스크 마블>의 한 장면. 이전에 캐스팅 된 네 명의 배우가 공교롭게도 모두 사고로 다쳐 베이컨에게 기회가 갔지만 그것은 지독한 불운의 징크스였는지도 모른다.
지갑의 돈도 그대로 있었고 비싼 반지도 가져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도는 아니었다. 미스터리는 지갑 속의 열쇠였다. 집 열쇠는 아니었다. 조사 결과 휴양 지역인 인근의 로렐 캐년에 있는 작은 집을 베이컨이 빌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실 하나에 욕실 하나 그리고 작은 응접실이 있는 집이었다. 그 집은 은퇴한 의사인 찰스 헨드릭스 소유였다. 근처에 살고 있는 헨드릭스는 그 집을 세놓은 수익으로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헨드릭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젊은 남자가 그 집을 빌릴 땐, 함께 온 여자가 묵을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베이컨의 동행자는 남자였다는 것. 베이컨이 죽기 이틀 전에 계약서를 썼는데, 당시 베이컨은 함께 온 남자와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헨드릭스의 묘사에 의하면 그 남자는 173센티미터에 63킬로그램 정도의 몸집이었고, 유럽에서 온 듯한 이국적인 외모였으며 억양으로 보건대 오스트리아 쪽으로 추정된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아내인 그레타 켈러는 남편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만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비극과 별개로, 남편의 죽음과 관련된 많은 의문을 느꼈다. 먼저 죽기 전에 빌렸다는 작은 집이 의혹의 대상이었다. 만약 영화에 관련된 일을 집중적으로 하고 싶었다면, 그들에겐 커다란 트레일러 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차를 몰고 한적한 곳에 가서 작업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차에서 발견된 카메라 속 사진의 배경이 산타모니카 해변이라는 데 크게 놀랐다. 베이컨은 결혼 후 단 한 번도 켈러와 함께 그곳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해변 주민들에게서, 베이컨이 종종 세 마리의 애견과 함께 그곳을 거닐곤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켈러는 남편이 과연 누구와 그곳에 갔을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베이컨이 애견 세 마리를 집에 놔두고 나갔다는 것도 수상했다. 베이컨은 항상 산책을 나갈 때 세 마리의 코커스패니얼과 함께 했다. 하지만 9월 12일엔 그냥 나갔다. 이것은 그가 그냥 기분 전환을 위해 나간 것이 아니라 어떤 약속이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원래 가기로 했던 제럴딘 스프레클스의 집에도 가지 않았다.
과연 데이비드 베이컨은 그날 누구와 해변에 갔으며, 그 ‘누구’는 정말로 베이컨을 죽인 것일까? 그렇다면 왜 죽였으며, 베이컨은 어떤 과정을 겪은 후 위험하게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게 된 것일까?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주로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