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전 비서관, 김종민 전 부지사.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사석에서 정재호 전 청와대 비서관과의 인연에 대해 한 말이다. 학생운동 시절, 안 지사에게 접선 지시가 떨어져 장소에 갔는데 그 상대가 정 전 비서관이었다. 그런데 안 지사가 보기에 정 전 비서관이 또래 학생으로 안 보여 주변을 빙빙 돌았다. 잠바를 입고 겨드랑이에 스포츠신문을 끼고 있는데다, ‘노안’이라 안 지사가 정 전 비서관을 경찰로 의심한 것. 안 지사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 인연이 32년 동안 이어져 정 전 비서관은 ‘안라인’으로 통한다.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 때 안희정 캠프의 총괄특보와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외환카드 노조위원장 출신인 정 전 비서관은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정무보좌역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정 전 비서관 측 천경덕 변호사는 “정치입문 자체를 안 지사를 통해서 했다”며 “정 전 비서관은 대학 다닐 때부터 안 지사와 함께 수배를 피해 다녔다. 안 지사와 인연이 가장 길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 정 전 비서관은 더불어민주당에 경기 고양 덕양을에 공천 신청을 했다. 이곳은 흥미로운 경선이 펼쳐질 전망이다. 문용식 더민주 덕양을 지역위원장은 ‘문재인계’, 송두영 전 지역위원장은 ‘손학규계’다. 덕양을은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지역구로 김 의원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승리했다. 안철수 의원의 측근 이태규 정책네트워크 내일 부소장도 가세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대권잠룡들의 대리전이 성사될 수 있다. 천 변호사는 “다른 곳보다 특이한 그림이긴 하다. 야권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오히려 흥행요소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안의 남자’ 김종민 전 충남 정무부지사(더민주 지역위원장)는 충남 논산·계룡·금산에 도전장을 냈다. 안희정 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 전 부지사의 경선 상대는 황국연 전 더민주 금산군의회 의원이다. 김 전 부지사가 예선을 통과해도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이 지역 터줏대감은 ‘불사조’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이다. 이 의원은 현역 의원 중 충청권 최다선(6선)이자 논산·계룡·금산에서 내리 4선을 기록한 거물이다.
김 전 부지사는 “안 지사와 나는 20대부터 동고동락 해온 사이다. 내가 청와대 대변인을 한 이유도 안 지사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후 안 지사가 고향에서 일 좀 하자고 해서 부지사도 맡았다”며 “공천은 문제없을 거라 생각한다. 자꾸 안 지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안 지사와 함께 갈등의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소열 더민주 충남도당 위원장도 안라인이다. 나 위원장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안 지사의 재선을 도왔다. 3선의 서천군수를 지낸 나 위원장은 충남 보령·서천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지역은 17대와 18대 총선에선 류근찬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재선을 한 곳이다.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류 전 의원을 따돌렸다. 그만큼 보수 색채가 짙다. 나 위원장은 안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걸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나 위원장 측 관계자는 “지역민의 유일한 신뢰를 받는 사람이 안 지사다. 노년층도 거부감이 없다. 역효과를 걱정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솔직히 임종석 전 부시장도 이재오 의원이랑 붙어서 자기 이름 알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익명을 요구한 이재오 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그는 “은평은 지역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오면 힘들다. 후보자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라도 나와야 한다”라며 “임 전 부시장이 처음에 서울 출마를 고려한다고 하더니 생뚱맞게 은평에 나간다고 하고, 갑자기 그쪽에서 험지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의원 때문에 그런 거다. 득표율만 따지면 야당이 항상 높았다. 이곳이 야당의 험지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은평을 출마를 경계하는 대목이다.
임 전 부시장은 대표적인 ‘박원순 라인’이다. 제16·17대 국회의원(성동을)을 지낸 그가 1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인 휴식기에 들어갔을 때 손을 내민 이가 박 시장이다. 지난해 임 전 부시장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직후 박 시장은 임 전 부시장을 서울시로 불러들였다.
지난 12월 22일 그는 부시장 직을 내려놓은 뒤 친이계 대표주자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내리 5선을 기록한 서울 은평을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임 전 부시장 측근은 “이 의원이 은평에서 다섯 번 국회의원을 했지만 지역 숙원사업들이 해결이 안 됐다”고 공세를 폈다. 임 전 부시장은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은평은 통일시대 서울의 관문이다. 통일로를 따라 박원순 시장 임기 내에 은평 발전의 새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30 서울 동작을 재보선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 선거 활동 모습. 당시부터 ‘박원순의 남자’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제공=기동민 캠프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은 ‘박원순 키즈’다. 박 시장과의 인연은 2011년 박 시장이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시작됐다. 기 전 부시장은 정무수석과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박 시장을 보좌했다. 지난해 7·30 재·보궐 선거 당시부터 ‘박의 남자’로 화제를 모았다. 기 전 부시장은 ‘박원순의 부시장, 기동민’이라는 어깨띠를 두를 정도로 박 시장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당시 기 전 부시장은 광주 광산을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은 동작을에 전략 공천했다. 함께 동작을에 공천을 신청했던 20년 지기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은 격렬히 반발했다. 기 전 부시장은 선거 일주일 전 노회찬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결국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이 노 후보를 꺾었고 야권은 전략공천의 명분과 실리를 전부 잃었다. 지난 총선은 기 전 부시장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성북 출마가 확정되진 않았다. 박 시장님도 신중하게 잘 판단하자는 말씀을 했다.”
지난 6일 기 전 부시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기 전 부시장은 지역구를 정하지 못했지만 신계륜 더민주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성북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기 전 부시장은 공천 파동을 의식한 듯 “당하고 잘 상의해 판단해야 될 시기다. 일방적으로 정하기는 상황이 좀 그렇지 않나 싶다”며 “전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주변 사람과 충분히 상의하고 있다. 당 쪽에서 조금 기다리자고 한다”며 말을 아꼈다.
임종석 전 부시장, 권오중 전 비서실장.
권 전 실장은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대문을에서 정 의원의 지지세는 상당하다. 이곳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이강래 전 더민주 의원도 권 전 비서실장을 위협하는 존재다. 남원과 순창에서 3선을 한 그는 서대문을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권 전 실장 측 관계자는 “이 지역구는 원래 야당 강세였는데 최근 선거에서 전부 졌다. 박원순 시장을 모시고 있는데 좀 쉬운 곳으로 가면 말이 나올 것 같아 일부러 험지를 골랐다”며 “정 의원이 12년을 했다고 하지만 남가좌동 북가좌동 홍제동에선 개발이 전혀 없었다. 이 전 의원도 센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원에서도 아쉽게 떠나보낸 게 아니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선거 때마다 박 시장의 법률지원단장을 맡아온 민병덕 변호사도 ‘안양의 박원순’을 자처하고 있다. 경기 안양 동안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민 변호사는 경선부터 험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국회 부의장이자 5선의 더민주 이석현 의원이 버티고 있기 때문. 민 변호사 측 관계자도 “자타 공인 거물이다. 어려운 싸움이지만 4년 전과 분위기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 변호사는 지난 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재보선을 이긴 10월 27일, 박 시장이 ‘이제 민 변호사는 뭐할래?’라고 하자 ‘시장님과 정치를 하겠다’고 답했다”며 “박 시장도 나도 시민운동을 하는 변호사였다. 정서적인 일체감이 있다. 결코 박원순이란 상품을 파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원희룡 지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 원희룡 지사가 보증해줄 수 있다.”
이기재 전 본부장.
양천갑은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의 지역구지만 원 지사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곳이다. 원 지사를 의원 시절부터 보좌해온 이 전 본부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출마를 준비해왔다. 같은 당 신의진 의원(비례)도 예비후보로 등록을 했다. 원 지사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이 전 본부장의 경선은 쉬운 싸움이 아니다. 이 전 본부장 측 관계자는 “우리 후보는 1980년대 운동권 생활을 했고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원 지사님이 사람을 뽑는단 얘기를 듣고, 원 지사 친구의 추천으로 정치를 시작했다”며 “양천 쪽 민원을 쭉 처리를 해왔다.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수영 전 부지사.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은 내년 12월 20일. 이번 총선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시작점이다. 대권잠룡 중 총선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용의 남자들’이 꿈틀대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