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지난 2015년 12월 25일 오후 11시 34분께, 정 아무개 씨(39)는 대전 유성구 봉명동의 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뒷문이 열렸고, 마스크를 쓴 괴한이 들이닥쳤다. 정 씨는 뒤를 돌아보기도 전, 차가운 쇳덩이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괴한은 정 씨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거 진짜 총이야!” 그리고 얼마 뒤, 차 안에선 총성이 울렸다.
괴한은 범행 이후 그대로 달아났다. 오른쪽 어깨 부위를 맞은 정 씨는 경기도 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권총 모양의 라이터나 장난감인 줄 알았다. 저항하려 뒤를 도는 순간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전지방청 광역수사대와 강력 4개팀 등 53명을 즉시 수사 전담팀으로 편성했고, 주변 탐문 수사와 인근 CCTV 분석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괴한이 주변을 배회하며 몰고 다니던 은색 아반떼 차량을 특정했으나, 이후 행적에 대한 별다른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이 흘렀지만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 입수 경로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용의자가 소지하고 있던 총기는 스페인산 권총 ‘라마(LLAMA) 9㎜’였다. 해당 총기는 국내에서 유통도 되지 않을뿐더러, 경찰이 허가·관리하는 총기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결국 밀반입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실제로 경찰은 용의자가 지난 2002년 이후 10여 차례 해외에 다녀온 것을 확인하고 해외에서 밀반입했거나 제3자에게 구매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전 경찰청은 지난 4일 “어떤 경로로 총기를 입수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과 주변 인물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불법 총기류는 해마다 꾸준히 적발되는 추세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5년간 불법 총기 자진 신고 현황’을 보면, 지난 5년 동안 회수된 불법 총기는 2010년 6048정, 2011년 4728정, 2012년 4192정, 2013년 2748정, 지난해 4484정 등으로 한 해 평균 4400정이다. 또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국내로 들여오다 적발된 실제 총기류도 76정에 달했다. 연평균 18정이 밀반입 과정에서 적발됐다. 박 의원은 “관세청이 밝힌 수치는 단속 실적이라 어느 정도의 밀수 총기가 유통되고 있는지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총기 관련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부산에서 러시아 선원이 러시아제 4.5구경 가스발사 식 권총 1정과 쇠구슬 형태의 총알 5발을 소지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 2013년 4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50대 남성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 결과 미국 제닝스사가 1989~90년에 제작한 22구경 모델 J-22로 일반인이 소지할 수 없는 총기였다. 또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피를 위해 준비한 여행가방 속에서도 사격선수용 공기권총 1정을 포함해 권총 5정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총기는 어디서 유입되는 걸까. 경찰 관계자들은 러시아와 필리핀, 중국을 대표적인 총기 밀반입 경로로 꼽았다.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90년대부터 ‘부산에 가면 러시아산 토가레프 권총이 쌓여있다’ ‘20만 원이면 토카레프 한 정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실제로 러시아 마피아들끼리 다투면서 총기 사건이 일어난 사례도 있다”며 “소련이 무너진 이후 무기들이 해외 시장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당시 국내에도 일부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산 총기는 대부분 오래된 것이라 고장이 잦고 성능이 떨어지고, 총알 구경도 7.62x25라서 9구경이나 45구경, 38구경, 22구경과 같이 해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실탄과 맞지 않아 최근에는 실제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밀반입 경로는 필리핀이다. 또 다른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은 사제 총기가 대량 제작 되는 곳으로, 특히 일본 야쿠자의 총기 공급처이기도 하다. 정식 총기 브랜드도 없지만 민간에 공급된 총기만 390만 정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공정 거래가도 형성돼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필리핀산 총기는 일본 야쿠자들이 유통했는데, 국내 조직폭력단이 이들을 통해 유입하거나 필리핀으로 직접 넘어가 들여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일부 일반인들도 섞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도 한 은행 강도 사건에 사용된 총기가 필리핀에서 부산 감천항을 통해 밀반입된 것으로 밝혀진 사례도 있다.
성탄절 총격사건 용의자 공개수배 전단과 범행에 사용된 총기인 스페인산 라마 9㎜. 용의자의 자살로 총기 입수 경로가 파악되지 못했다.
최근에는 중국과 대만도 주요 총기 밀반입 경로다. 인천의 한 경찰 관계자는 “2000대 초부터 중국에서 총을 들여오다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국내 밀반입보다는 한국을 거쳐 일본을 향하는 ‘삼각 무역’을 하다 적발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유입된 총은 중국제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등의 총기도 많다. 해외에서 중국에 유입된 총이 다시 또 다른 국가로 유통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국가에서 밀반입되는 수법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방법은 선원을 통해 반입하는 방법이다. 앞서의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외국 선원들에게 접근해 거래를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서 권총 구입비에 배달비를 얹어주는데, 배달비가 실제 총기 가격의 3배에 달한다”며 “여행이나 사업차 해외를 자주 오가다 일면식을 갖고 그를 통해 총기를 들여오는 일반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총기 부품을 분해해 들여와 재조립하는 수법을 활용한다. 이밖에 외국 영화사 등을 통해 ‘촬영용 소품’으로 총기를 들여오거나, 국내를 떠나는 주한 미군 등을 통해 불법 매매한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해외직구’로 부품을 각각 구입해 조립하기도 한다.
실제로 취재 중 부산 남포동에서 “총기를 구해줄 수 있다”는 판매상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런 걸 왜 구하려 하느냐,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감옥 간다”며 경고하면도 “구해오면 무조건 사야한다”며 거래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총포사나 사무실 등에서 총기류를 거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구두로 계약을 하고, 지정한 장소에서 따로 만나거나 던지기 수법(돈을 받고 약속된 장소에 총기를 두고 가는 방법)을 활용한다고 했다. 그는 “보통 알고지내는 지인들이나 미리 약속한 사람들끼리만 거래하기 때문에 쉽게 구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총기 밀반입과 매매가 물밑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은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총기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만큼 ‘첩보’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총기류가 얼마나 있는지 추정조차 어렵다”며 “단속은 2, 3곳의 수사부서와 합동으로 진행하지만, 첩보 입수부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첩보 입수 이후에 수사에 나서기 때문에 불법총기 단속 건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수십년 동안 근무한 경찰이라도 총기 밀수를 다뤄본 직원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최근 총기 밀반입에 대해 세관도 철저히 검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세청과 공조해 불법무기 밀수 단속 더욱 강력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