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엄마 잃은 슬픔을 이겨낸 투우자가 다시 수업에 열중한 모습과 쟈스민 꽃을 시로 노래한 로리타(오른쪽)가 화병의 꽃을 만지는 모습. 맨 아래는 자기가 쓴 시를 읽고 있는 학생들.
제가 ‘공연’ 중간에 지난번 약속한 시상을 하기 위해 이름을 부릅니다. 크리스티나 칭, 산룬, 망산, 먼상, 빠우보이. 5명과 나머지 2명 로리타와 투우자. 보름 전 우리 학생들 모두 한국어로 시 쓰기를 배우고 시를 모국어로 쓰는 숙제를 했습니다. 오늘 발표하고 시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시 제목은 바다, 엄마, 비, 꽃 4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 미얀마어로 쓰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시를 써주어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실 시는 잘 쓰든 못 쓰든 한번 써보는 게 더 소중합니다. 근데 한 사람만 빼고 다 시제목이 ‘엄마’여서 선생님이 놀랐어요. 또 상을 주기 위해 뽑기가 너무 힘들어 여러분이 수업시간에 모두 낭독한 뒤 투표로 뽑은 5명에게 시상하기로 결정했답니다. 거기에 선생님이 두 사람을 더 뽑았어요. ‘쟈스민 꽃’을 쓴 로리타와 ‘그리운 엄마에게’를 쓴 투우자입니다. 상품은 예쁜 머리핀과 멋진 그림엽서입니다. 총 7명의 시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자, 로리타부터.”
무대 위에서 마이크로 시가 낭독됩니다. 학생들에겐 생애 처음 쓰는 시입니다. 그런데 로리타의 시를 번역해보고 제가 놀랐습니다. 쟈스민 꽃향기를 맡으며 꽃과 같은 마음을 닮아가려는 자신의 모습을 잘 그렸습니다. 은유를 압니다. 학생들 투표에서 등수에는 들지 않았지만 시인이 될 소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시를 써보라고 합니다. 이 학생은 의사를 꿈꾸고 있답니다. 투우자의 시도 낭송되고 있습니다. 디야바데 아메…. 그리운 엄마에게.
투우자의 시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쓴 시입니다. 가슴 아픈 시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7남매를 두고 엄마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 갈 수가 없습니다. 고향 마투비는 버스로 이틀이 넘게 걸리는 오지 중의 오지라 가족들이 막내 투우자는 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와봐야 장례가 끝나니까요. 그날밤 우리 학생들 숙소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옥상에서 하루종일 울고 있는 투우자의 슬픔을 아니까요. 웃음기 많은 고향 언니 로리타의 얼굴은 창백합니다.
보름 전 한국어 시간에 시 쓰는 것을 가르치며 저도 생애 처음 쓴 시가 생각나 그 시를 칠판에 쓰고 설명해주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목은 ‘첫눈’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새벽, 병실엔 저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전날 밤 꿈을 꾸었거든요. 엄마가 새벽에 숨을 거두기 전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어린 너를 두고 가서. 하지만 널 위해 하늘에서 꼭 기도할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해 겨울 첫눈이 왔습니다. 첫눈을 보며 선생님은 엄마가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눈이/ 하얀 꽃송이처럼/ 하늘에서 내립니다
첫눈은/ 세상의 더러움을/ 하얗게 덮어줍니다
첫눈은/ 내 마음을/ 하얗게 씻어줍니다
첫눈은/ 하늘의 눈물/ 하늘의 기도
첫눈은/ 엄마가 뿌리는 하얀 꽃잎/ 엄마의 첫 편지’
저와 로리타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컴컴한 옥상 구석에 투우자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습니다. 엄마의 장례에도 못 갔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우린 손에 손을 잡고 기도를 합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더 이상 눈물 없이 살기를, 투우자도 슬픔을 이기고 일어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투우자의 시낭송이 끝나고 있습니다. 아메구 칫데…. 엄마 사랑해요. 언니 로리타가 시상으로 받은 은빛 머리핀을 투우자에게 꽂아주고 있습니다. 투우자가 환하게 웃으며 언니를 끌어안습니다. 한국 가수 엑소를 좋아하는 투우자. 노트에 그 가수들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다음에 한국 가면 그 노래를 사다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