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공장 전경. KAI는 항공기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방산업체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10월 29일 정부는 금융개혁회의에서 ‘기업은행·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을 의결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출자전환 이후 정상화된 기업 5곳과 5년 이상 투자한 중소벤처기업 86곳에 대한 지분을 오는 2018년까지 매각할 계획이다. 특히 매각 대상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포함돼 있었다.
KAI는 생산액 규모 국내 방산업계 2위로, 항공기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방산업체다. KAI 지분은 산업은행이 26.75%, 한화테크윈 10%, 현대자동차 10%, 두산그룹의 특수목적법인 디아이피홀딩스가 5% 등으로 나눠 갖고 있는 구조다. KAI가 지난 1999년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등 3사 항공 관련 부문이 통합돼 설립된 데다,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출자전환을 받아 지분 구조가 이처럼 나뉘어 있었다. 이 같은 지분 구조 때문에 KAI 대주주 간 지분 공동매각 약정이 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대주주 간 지분 공동매각 약정이 끝나면서 산업은행이 다시금 매각 계획을 밝힌 것이다.
KAI의 민영화 매각 계획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여러 차례 추진돼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과거 대한항공이 몇 차례 인수를 시도했으나 무산됐고, 지난 2012년에는 한국정책금융공사(현 산업은행)가 실시한 인수 입찰에 현대중공업만 참여하고 대한항공이 불참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다. 또한 KAI는 방위산업체이기 때문에 해외 업체로 매각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가 KAI 매각 카드를 다시 꺼내들자 업계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과거 인수 의지를 표명했던 현대중공업이나 대한항공은 최근 재무구조 악화 등으로 도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화테크윈이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한화그룹 측은 모체가 화약 등을 다루는 방위업체였던 만큼, 앞으로도 ‘방산’을 주력 사업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6월 삼성그룹의 방위업체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현 한화탈레스)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이 인수로 한화는 단숨에 국내 방산업계 1위로 올라섰다.
한화그룹 입장에서는 KAI 인수를 통해 얻을 시너지 효과도 크고, 지분 15% 가량만 추가로 확보하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화테크윈이 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전량 매각해 44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하면서 KAI 인수설은 더욱 힘이 실렸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한화테크윈이 오히려 보유지분을 기습 매각해 업계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한화테크윈은 지난 5일 보유 중이던 KAI 주식 390만 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화테크윈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0% 중 4%에 해당하는 규모다. 당초 한화테크윈은 5.01%에 해당하는 주식 487만 3756주를 처분하려고 계획했으나, 목표에는 못 미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한화테크윈은 지난 5일 종가 7만 7100원 대비 7%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매각에 나서 총 2796억 3000만 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엔진과 부품 산업에 집중해서 글로벌 항공 방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는 매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화테크윈이 KAI 인수전에 사실상 발을 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이번 KAI 지분 매각 결정이 KAI 인수와는 상관이 없음을 강조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KAI 인수전에 손을 뗀 것은 전혀 아니다. 아직 KAI 매각과 관련해 매각주간사도 선정되지 않았고, 일정도 나오지 않았다”며 “KAI 매각과 관련한 정확한 발표가 나오면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한화가 일류급 방산기업이 되려면 현재 한화테크윈의 사업인 항공기 엔진부품 제작 납품에서 벗어나 항공기 완제품 생산까지 가능해야 한다”며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완제품 생산업체다. 여전히 한화에게는 매력적인 매물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업은행은 KAI 민영화 매각에 대해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이 보유 중인 110여 개 비금융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 KAI가 있어 KAI 매각설이 다시 제기된 것”이라며 “하지만 산업은행 내에서는 매각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KAI는 방산업체다. 따라서 매각에는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등 여러 부서 간에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갈 길 바쁜 두산, 뒤통수 맞은 사연 ‘매각’ 선수 빼앗겨 앉아서 손해 한화테크윈의 KAI 보유 지분 블록딜로 KAI 민영화 매각설이 다시금 소란스레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피해를 본 기업은 따로 있다. 바로 두산그룹이다. 두산그룹은 특수목적법인 디아이피홀딩스를 통해 KAI 지분 5%를 보유해 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디아이피홀딩스는 한화테크윈에 앞서 지분 5%를 매각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지난 5일 한화테크윈이 블록딜을 통해 보유 지분 중 4%를 처분하며 선수를 친 것이다. 문제는 한화테크윈의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KAI 주식이 급락했다는 것이다. KAI의 지난 5일 종가는 7만 7100원이었다. 그런데 이날 장 마감 이후 한화테크윈의 블록딜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6일 KAI의 주가는 10% 가까이 빠진 7만 300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이후 KAI 주식은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난 8일에는 6만 7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두산 입장에서는 사흘 만에 448억여 원을 손해 본 셈이다. 하지만 두산그룹에서는 KAI의 보유 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가 하락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두산 관계자는 “한화의 블록딜 매각 이후 KAI 주가가 떨어졌다고 해서 지분 매각을 철회한다든지 하는 변경안은 없다. KAI 지분을 넘길 매수자를 계속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KAI 지분 매각은 처음부터 자금 확보가 목적이 아니었다. ㈜두산은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당기순이익도 꾸준히 내는 등 실적이 좋다”며 “다만 KAI가 ㈜두산의 주력 사업과 연관성이 없어 시너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매각을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