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에 나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옛 영화를 되찾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말풍선 속 사진은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최준필 기자
박 회장과 윤 회장은 둘 다 1945년생 ‘해방둥이’ 오너 경영인으로서 무리한 인수에 따른 자금 압박 탓에 그룹이 흩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룹의 덩치를 키우며 경영인으로서 찬사를 받기도 했으나, 주요 계열사들이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숱한 질타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재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은 형제간 소송으로, 윤 회장은 사기·배임 등의 혐의로 법정 공방을 치렀다는 점도 흡사하다.
이들의 나이 어느새 만 70세가 넘었다. 박 회장은 그룹의 모태이자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을 인수함으로써 염원하던 그룹 재건에 성공했다. 반면 이제 막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경영인으로서 기회를 얻은 윤 회장은 박 회장과 같은 그룹 재건은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 계열사들은 채권단이 관리하면서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시켜주고 우선매수청구권도 줬지만 웅진 계열사들은 대부분 매각됐다”며 “남아 있는 웅진 계열사들의 규모가 워낙 작고 자금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아 매각된 계열사들을 되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웅진그룹은 회생 과정에서 핵심 계열사였던 웅진코웨이(현 코웨이), 웅진케미칼(현 도레이케미칼), 웅진식품 등을 매각했다. 또 윤석금 회장은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코웨이 지분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현재 웅진그룹은 지주회사인 ㈜웅진을 비롯해 그룹의 모태인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북센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2년 29개 계열사로 재계 31위에 올랐던 상황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비록 금호석유화학 계열이 분리됐지만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되찾은 박삼구 회장이 윤 회장으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 회장도 지난 연말 집행유예 선고를 계기로 경영 활동이 수월해졌다. 옛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와 사재 출연 과정에서 지분은 모두 없어졌지만 장남 윤형덕 웅진씽크빅 신사업추진실장이 ㈜웅진 지분 12.51%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서 있다. 차남 윤새봄 ㈜웅진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웅진 지분 12.48%를 갖고 있다.
두 아들들이 그룹 지주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윤 회장은 여전히 웅진그룹 회장으로서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워낙 규모가 축소돼 윤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예전처럼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룹 재건이라기보다 재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고 말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사업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윤 회장의 재기에 청신호로 해석된다. 먼저 지난해 4월 웅진홀딩스에서 사명을 변경한 지주회사 ㈜웅진은 2014년 4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전환하더니 지난해 3분기까지 17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룹 모태인 웅진씽크빅의 실적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애를 태우던 웅진에너지 역시 2014년 4분기에 턴어라운드하더니 지난해 3분기까지 4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태양광사업을 비롯해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웅진에너지의 힘이 발휘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웅진이 출시한 기업용 IT솔루션 렌탈서비스인 ‘클라우드원팩’이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윤 회장은 판매방식이나 마케팅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기업에 IT솔루션을 렌탈서비스 한다는 것은 윤 회장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규모가 작은 부문에서는 성공할지 몰라도 최고경영인으로서 대규모 사업과 투자를 결정하거나 이끄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조만간 자체 브랜드를 가진 화장품 생산·판매 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회장은 1988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해 업계 2위로 성장시킨 경험과 2010년 출시한 자체 브랜드 ‘리엔케이’의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화장품사업의 국내외 활황이 윤 회장의 의욕에 불을 지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웅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새로운 판매방식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업체들까지 앞 다퉈 화장품 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현실에서 윤 회장의 어떤 차별화 전략으로 어떤 효과를 누릴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015년 회사 부활과 함께 집행유예 선고로 마음의 짐을 벗은 윤석금 회장의 2016년의 모습이 관심을 모은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