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교수는 이 시대의 참 지식인이자 진보계의 어른으로 통하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신 교수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리 간단치 않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신 교수는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하며 사회의 첫 발을 뗐다. 그러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68년. 그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며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88년까지 무려 20년의 수감생활을 겪은 신 교수는 이 기간 동안 지인들과의 서간을 모았고, 그렇게 나온 책이 훗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20년의 수감생활은 그를 변화시켰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민중에 대한 애착과 이해는 부족했다. 하지만 감옥에서 그는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과 살을 부대끼여 살아갔다. 온갖 노동으로 정신과 육체를 단련했으며 그간 그의 머릿속을 채웠던 엘리트주의는 옅어졌다. 그리고 반성했고, 스스로 비판했다. 특히 감옥에서 만난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교류는 그를 크게 변화시키기도 했다.
출옥 후 신 교수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수감시절 정향 조병호 선생으로 부터 사사 받은 고전철학은 그의 유명한 강의 커리큘럼이기도 했다. 수감시절 그가 직접 창안한 서체 ‘어깨동무체’는 그의 상징이기도 했다. 소주 ‘처음처럼’의 서체는 그의 손에서 비롯됐다. 이를 통해 받은 1억 원은 학교에 기부됐다. 그의 삶과 철학은 후대에도 대단한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