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지냈던 그리스 미코노스섬 풍경. 아래는 카렌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사진출처=하루키 페이스북·카렌 박물관
하루키는 마흔을 앞둔 1986년 아내와 함께 지중해로 떠나, 로마에서 시작해 그리스의 한 섬에서 출세작 <상실의 시대>를 쓰게 됩니다. 3년간 완전히 일본을 떠나 살았습니다. 카렌은 1913년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떠나, 그 체험을 쓴 자전적 소설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입니다. 그녀는 18년간 완전히 덴마크를 떠나 살았습니다.
하루키는 문학상을 받은 작가였지만, 떠날 무렵까지는 번역일이나 프리랜서로 르포 등 잡문을 써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떠나서도 번역일은 계속 해야 했고, 때로는 반찬용으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리스 바닷가에서 매일 새벽부터 6시간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진정한 독자 한 사람을 위해 쓴다. 모든 사람을 웃음 짓게 할 수는 없다. 대신 그 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소설이 1000만 부가 넘게 나갔습니다. 그도 놀랐습니다. ‘하루키 붐’이 시작된 겁니다.
<상실의 시대>는 87년작입니다. 떠난 그 이듬해 작품입니다. 떠난 3년간 <댄스 댄스 댄스>까지 두 편을 썼습니다.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인 화자 와타나베와 절친 기즈키, 그리고 두 여자 나오코와 미도리가 등장인물입니다. 줄거리도 복잡하지 않고 반전이나 클라이맥스도 그리 없고, 결말도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어본 사람들은 다들 재밌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친한 친구가 아주 사소한 얘기를 진지하고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줄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문체가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얘기의 작품이든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는 떠나야만 했던 인생의 ‘모티브’를 이렇게 <먼 북소리>에 진솔하게 썼습니다. 3년간 치열하게 산 생활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내가 두려운 것은, 어떠한 시기에 달성되어야 할 것이 달성되지 않은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는 익숙한 환경에 그냥 젖어 살다가는 자신의 인생이 침몰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구까지 다 가지고 일본을 떠났던 것입니다.
영화로 더 유명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여류작가 카렌 블릭센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녀가 아프리카 케냐로 떠나 겪은 삶을 담은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하여 그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수상했지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바베트의 만찬>도 그녀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은 당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의 소설은 시적이며 아름다운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당시 ‘식민지 시대’를 주름잡고 살던 유럽인들에겐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불행합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자살하여 청소년 시절을 암울하게 보냈습니다. 막대한 유산을 받은 그녀는 27살 때, 스웨덴 귀족 블릭센 남작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낭비벽과 바람기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카렌과 데니스. 영화 속 주인공들입니다. 커피농장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카렌은 그곳에서 남작부인이라는 명예 대신 진정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모험가인 데니스를 통해 진정한 위안과 사랑을 알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경비행기 타던 두 사람의 모습, 데니스가 카렌의 긴 머리를 감겨주던 모습, 사막에서 하얀 테이블보를 깔고 저녁식사를 하던 모습들이 기억납니다.
그녀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데니스의 장례식 때, 검은 상복을 입고 낭송했던 시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18년을 살고 돌아온 이후 그녀는 그렇게 사랑했던 아프리카를 다시는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와의 아름답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만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녀가 살아생전 일궜던 케냐의 커피농장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녀의 이름을 따온 ‘카렌 골프클럽’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살던 고풍스런 집은 지금 ‘카렌 기념박물관’이 되었습니다.
3년과 18년. 그 기간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두 사람은 삶의 ‘모티브’를 통해 자신의 ‘알맹이’를 찾았습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과감한 작별’을 통해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