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고수들의 공부 방식은 그 수법만큼이나 다양하다. 원 안은 이세돌 9단. 사진제공=한국기원
―기자실은 오랜만이네요.
“오늘 입단대회 최종국 있는 날이잖아요. 사실 징크스가 생겼어요. 전에 우혁이가(강우혁 초단. 작년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했다) 입단 결정국을 치를 때 초조해서 이곳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기더군요. 이번에도 혹시나 싶어서…(하지만 이번에는 제자 문유빈 군이 애석하게 지고 말았다).”
―요즘 연구생들 공부 많이 하죠?
“공부는 다들 어마어마하게 하죠. 하지만 공부 양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죠.”
―혹시 기억에 남는 공부법이 있을까요. 바둑 천재들은 평소 어떤 공부를 합니까.
“천재라니까 생각나는데 제가 본, 그러니까 인정하는 천재는 딱 2명이에요. 이세돌과 신진서. 뭐 사람마다 달리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들을 꼽고 싶어요. 이 9단은 어릴 때부터 봐왔는데 평소 열심히 공부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다른 기사들과 어울리는 법도 없고 연구회도 나가지 않고. 그런데 가끔 눈이 반짝반짝 빛날 때가 있어요. 복기할 때 그래요. 이 9단은 자신이 이기든 지든 복기를 참 열심히 해요. 같이 하다보면 처음에는 좋죠. 고수한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런데 좀처럼 끝이 안 나요.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그만두는 법이 없어요. 그럴 때면 이 자리를 어떻게 벗어나나 그런 생각뿐이죠. 지독해요(웃음). 이 9단은 실전을 통한 복기가 가장 중요한 공부법일 겁니다.”
―요즘 성적 내는 신진서는 어떤가요?
“사람들이 진서를 두고 ‘어릴 때 빨리 도장에 입문하지 않고 독학하는 바람에 성취가 늦다’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일찍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건 맞지만 습득 능력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안 돼요. 사실 천재들은 공부가 의미 없어요. 공부가 필요하면 이미 천재가 아니죠. 다만 천재도 대성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데 진서는 노력도 많이 합니다. 기사들이 밤에 인터넷 대국을 많이 하는데 뭐가 걸리지 않으니 심심풀이나 시간 때우는 용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진서는 안 그래요. 열심히 둡니다. 열심히 두고 다음날 전날 둔 기보를 가지고 나와 형들이나 사범님들에게 물어보고 같이 연구합니다. 이세돌 9단이나 신진서 5단이나 바둑 말고 한눈 팔 줄을 몰라요. 아마 그래야 대성하나 봅니다.”
신진서 9단(왼쪽), 박영훈 9단
“영훈이도 그렇죠.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영훈이가 경마를 좋아하는데 가끔 경마장에서 만날 약속을 합니다. 한번은 도착했다는데 안 보여서 전화를 했더니 약속 장소에 있다는 거예요. 한참을 찾았는데 글쎄 그 북새통 한구석에서 바둑돌을 놓아보고 있더라고요. 기가 막히죠. 해마다 발행되는 두꺼운 바둑연감 있지요. 그거 아무 연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10여 수 놓아보게 하고 누가 언제 두었는지 맞힐 수 있는 사람이 영훈이예요.”
워낙 천재들이 득시글하다 보니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 바둑동네다. 지금은 시합보다 해설로 돌아섰지만 송태곤 9단도 한때는 많은 이들을 좌절시켰던 장본인. 입단 전 송태곤은 장난꾸러기로 유명했다. 도장에 왔으니 바둑을 두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머지 시간엔 만화책을 끼고 살았단다. 그런데도 성적은 항상 톱을 달렸으니 밤낮으로 바둑에만 매달렸던 다른 아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수밖에. 다행히 같이 공부하던 많은 동료들이 송태곤에게 자극을 받아 입단에 성공했다고 하니 나쁜 영향만 끼쳤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철한 9단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권효진 6단의 부군이 된 위에량 6단이 중국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할 때 이야긴데요. 하루는 최철한 9단이 그곳에 놀러갔는데 위에량이 자기 도장에 유망주가 있는데 선으로 한번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나 봐요. 최 9단이 어이가 없죠. 당시 세계 최강자 중 일인이었는데 프로도 아닌 친구에게 2점도 아니고 선이라니. 도저히 그렇게는 안 되겠고 해서 결국 2점에 뒀는데 최철한이 졌답니다. 그러자 최철한이 그러더래요. ‘난 왕년 쟤 나이 땐, 쟤보다 잘 뒀어’라고요. 참, 그때 그 아이는 요즘 잘나가는 양딩신입니다.”(한종진 9단)
사람들이 한국 바둑에서 천재를 논할 때 흔히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을 꼽지만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송아지 삼총사’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은 여전히 건재하다. 89년생 강동윤은 7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중국 신예들이 20대 초반까지 반짝 활약하다 사라지는데 반해 한국 기사들의 수명이 긴 이유’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대답은 이렇다.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강동윤도 천재이기 때문이다.”
유경춘 객원기자
‘전자랜드배 한국바둑의 전설’ 개최 5인 거장들 진검승부 지난 2015년 조훈현 9단(왼쪽)과 조치훈 9단의 대국 모습. 2016전자랜드배 한국바둑의 전설에는 이들도 참가한다. 전자랜드가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2016 전자랜드배 한국바둑의 전설에는 조훈현 9단(63)과 서봉수 9단(63), 조치훈 9단(60), 유창혁 9단(50), 이창호 9단(41) 등 5명이 참가한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이들 5명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로 타이틀 수를 합하면 모두 428개에 달한다(조훈현 9단 통산 160회, 서봉수 9단 통산 30회, 조치훈 9단 통산 74회, 유창혁 9단 통산 24회, 이창호 9단 통산 140회 우승). 토너먼트가 아닌 풀리그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5명의 서열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다. 우승상금은 5000만 원, 준우승상금은 2000만 원이다. 3위는 1200만 원, 4위 800만 원, 5위 600만 원의 상금도 별도로 책정돼 있다. 제한시간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1회씩이 주어지며 동률일 경우 승자승, 3인 이상 동률이 나올 경우 공동 순위로 상금을 똑같이 분배한다. 개막식은 1월 22일 오후 6시부터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릴 예정. 개막전은 1월 23일 오후 7시 바둑TV스튜디오에서 막이 오르며 2월 14일 경기를 끝으로 최종 순위를 정하고 15일 시상식을 갖는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