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 ‘국민의당’에서 벌써부터 내부 권력암투설이 돌고 있다. 김한길 의원(왼쪽)과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초반 승부는 안철수 신당인 ‘(가칭)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초반부터 잡음이 일었다. 돌출변수는 내부 권력구도를 둘러싼 암투. 통상적으로 총선은 수성 전략이 아닌 ‘반박근혜’, ‘반문재인’ 등의 프레임을 앞세워 험지·사지를 탈환하는, 공략 전술을 써야 한다.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총선 승리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지점이 국민의당 성패의 1차 분수령이다.
“국민의당 내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야권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실제 그랬다. 거침없이 달리던 국민의당 창준위의 초반 드라이브는 매끄럽지 못했다. 첫 번째 잡음은 지난 8일 허신행 전 농수산부 장관 등에 대한 인선 취소였다. 이는 안철수 의원의 성급함과 내부 조직의 아마추어리즘이 맞물린 결과였다. 안 의원은 “죄송하다”며 불찰을 인정했지만, 창당준비위원장인 한상진(서울대 명예교수)·윤여준(전 환경부 장관)의 투톱 체제는 빛이 바랬다.
박선숙 전 의원, 이태규 창준위원장.
반면 탈당파 현역 의원들은 상당수 배제됐거나, ‘박선숙·이태규 라인’보다 한 단계 낮은 보직을 부여받았다. 비주류 좌장격인 김한길 의원은 창준위 상임 부위원장, 김영환 의원은 부위원장 겸 전략위원장, 김동철 문병호 의원은 부위원장, 황주홍 의원은 정강정책기초위원장, 유성엽 의원은 당헌기초위원장에 각각 임명됐다. 김한길계 핵심이자 전략통인 최재천 의원과 애초 천정배 신당(국민회의) 쪽으로 쏠렸다가 막판 틀었던 권은희 의원은 아예 빠졌다. 전략가 최 의원이 신당 창당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이 완전히 빗겨간 것이다. 안 의원 측 내부에서 공천 탈락 대상자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임내현 의원도 역시 인선에서 배제됐다.
윤여준 전 장관, 한상진 명예교수.
현재 국민의당의 내부 권력구도는 크게 △안철수 의원을 필두로 한 2012년 진심캠프 멤버 △김한길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 그룹으로 나뉜다. 여기에 이미 합류한 국민공감포럼의 김경록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와 정희영 변호사, 김경주 일본 도카이대 교수 등 전문가그룹도 있다. 다만 이들은 탈당파 성향에 가깝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계’와 ‘김한길계’로 양분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 지점이 첫 번째 암초인 셈이다. 분수령은 각 계파 ‘책사 간 권력암투’다.
안 의원 측의 대표적 전략가는 윤 위원장과 박선숙 전 의원이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을 맡았던 윤 위원장은 이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 선거 전략가 등을 역임했다. 박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진심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주도했다. 탈당파의 대표적 책사는 김한길 의원이다. 그는 1997년 김대중·2002년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킨 ‘영원한 킹메이커’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의원이 신당 조기 합류 배경에 대해 보수의 책사 윤 위원장과의 힘겨루기가 단초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애초 김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한 이후 제3지대에서 야권 주도세력 교체를 위한 밑그림을 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한 측근도 “당분간 합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예상보다 빠른 지난 7일 신당 합류를 전격 선언했다. 앞서 안 의원은 건강상의 이유로 신당 합류를 거부한 ‘윤여준 십고초려’에 나선 상황이었다.
야권 다른 관계자는 “김 의원이 신당 막차를 통해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으나, 안 의원이 ‘보수 책사’인 윤 위원장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하면서 기류가 바뀐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안 의원 주변에 윤 위원장을 필두로 진심캠프 멤버들의 합류 움직임이 빨라지자, 김 의원이 내부 권력구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 템포 빠른 타이밍 정치를 구사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민의당 내부는 신당의 밑그림을 놓고도 진심캠프 멤버 등 신진인사 중심의 ‘안철수 안’과 더민주 탈당파 중심의 ‘김한길 안’이 충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지난 12일 안 의원의 봉하마을 방문에 불참했다. 다만 김 의원이 향후 탈당파를 대변하느냐, 아니면 기득권 타파 및 정치혁신을 통해 김한길식 정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신당 내부 권력구도가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민의당 외곽지대에는 신당 합류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김성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김병준 국민대 교수 등 복수의 그룹 등이 분화돼 있다. 여기에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자의 반 타의 반 외곽지대로 분류된다. 특히 원외 전문가그룹은 안철수계와 김한길계의 기득권 내려놓기와 더불어 박영선 더민주 의원의 합류를 요청하고 있다. 이상돈 교수가 연일 박 의원을 향해 “신당에 가서 큰 정치를 하시라”고 국민의당 합류를 촉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중도파 박영선’이 구심점 없는 원외 전문가그룹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다. 전문가그룹 한 인사는 “안철수든 김한길이든, 더민주를 탈당한 인사들은 현실 정치인이 아니냐”며 “아무런 방안 없이 새정치 깃발만 들고 들어갈 경우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가 신당의 두 번째 암초 지점이다.
마지막 암초는 안 의원 측 내부에 있다. 창준위 투톱인 ‘한상진-윤여준 갈등설’이다. 안 의원 측은 공동 창준위 체제와 관련, “진보의 한상진과 보수의 윤여준 간 만남으로, 양 날개의 균형을 맞췄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고열을 이유로 지난 8일 공동 창준위 수락 기자회견에 나타나지 않은 이후 1차 인선 발표 때까지 두문불출했다. 일각에선 한 위원장이 과거 이회창 캠프 전략가로 활동한 윤 위원장을 ‘구시대 인물의 표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물과 기름 같은 이들의 화학적 결합 여부가 세 번째 변곡점이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정권 프레임에 의존했던 과거와는 달리, ‘구정치 vs 새정치’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가 내부 갈등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국회 심판론’과 더민주의 ‘정권 심판론’ 프레임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