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가위험도(컨트리 리스크)에서 가장 큰 비중은 전쟁 위험이다. 북한은 걸핏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한다. 지난 6일 북한은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주장한 이후 미국 전토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다. 협박이 과도하니 협박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증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6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0.26% 빠졌다가 이튿날 회복했다. 어지간한 상장기업 하나가 부도났을 때와 비슷한, 평상적인 반응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반응 중에서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던 날 2.41% 빠진 것이 낙폭이 가장 컸고, 나머지 두 번은 이번과 비슷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는 0.3%, 휴전 후 최초의 포격전이었던 그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 때도 0.79% 떨어졌을 뿐이다. 근년 들어 남북관계가 증시에 미친 영향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일인 2011년 11월 23일 3.43% 하락이 가장 큰 것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이후 언론들은 연일 후속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증시의 반응은 여전히 평시와 같다. 그것은 증시의 투자자들이 북한의 핵무기를 급박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핵을 위협으로 느낄 만큼 서민들의 일상이 한가롭지 않다는 뜻도 된다. 국내 증시 투자의 30% 정도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 이유는 ‘양치기 소년’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분단은 70년이 지났고, 남북은 6·25 전쟁 이후 무수한 대결을 벌였으나 전쟁은 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내세워 전쟁을 협박하지만 전쟁은 핵무기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시는 알고 있는 셈이다.
사실 핵무기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구상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기다. 5대 핵보유국은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잘 알기 때문에 불사용의 원칙 아래 감축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신 제3세계로의 확산을 막기 위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만들었다.
NPT 체제에는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등의 예외적 보유국이 있다. 북한이 노리는 것도 그런 예외국 지위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는 동아시아에 핵확산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게 된다면 미국으로부터의 핵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아마도 미국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 전에 탐지 및 제거 기술을 이용해 북의 핵무기를 불능 상태로 만들 것이다. 한국 증시의 반응은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할 게 있다. 북한의 실권자 김정은이 30대 초반의 예측불허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번 핵실험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30대의 혈기만으로 6·25 전쟁을 도발한 할아버지 김일성을 외모부터 닮아보겠다는 게 김정은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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