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예비후보 등록자들이 은평구 2016 신년인사회 참석자들을 상대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구 공백’ 사태가 빚어지면서 현행법에서는 금지된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잠정적으로 허용해온 것을 선거구 획정이 완료될 때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이게 뭐냐 말이야, 이런 정당들이 어디 있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 창준위에 참여한 황주홍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황 의원은 작심한 듯, “문재인 더민주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거구 재획정을 하지 못한 부분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며 “양당 대표는 6개월 동안의 선거구 협상 과정에서 단 한 발짝도 진전의 걸음을 딛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황 의원은 국민의당 내부 회의에서도 총선 연기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같은 당 문병호 의원도 14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아 현역들은 상관이 없겠지만 신인들한테는 굉장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자기가 어디를 가서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의원들 중심으로 총선 연기론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예비후보의 선거운동은 공직선거법상 불법이다. 여야가 선거구의 재획정 의무를 방기했기 때문. 원칙적으로 단속 대상이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1일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운동에 대한 단속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선거구 공백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지난해 12월 30일 내렸던 단속 유보 조치를 유예한 것. 중앙선관위가 궁여지책까지 내놨지만 일선에서의 혼란은 여전하다. 특히 분구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의 예비후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남갑 이은재 예비후보는 “분구를 염두에 두고 강남갑에 등록하고 사무소를 마련했다. 이 지역이 강남병으로 획정되지 않으면 곧바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명함하고 현수막엔 ‘강남’이라고 썼다. 을이 될지 병이 될지 모르니까…”라고 하소연했다. 남양주갑 조광한 예비후보는 “이쪽은 분구 가능성 100%다. 재획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사무실 위치가 애매하다. 아파트를 구해 방 하나에서 생활하고 나머지를 선거 캠프로 활용하고 있다”며 “현수막도 못 만들고 있다. 선거구가 남양주병으로 확정되면 현수막 다시 뜯어서 새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원내대표 3+3 회동에서 선거구 획정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13일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총선 연기를 공식 제안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총선 운운하며 총선만 집착하지 말고 민생현안에 대한 대안과 실천 의지부터 보여라”고 일축했다. 문재인 더민주 대표도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기하는 것은 헌정사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국민의당의 속셈이 따로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황주홍 의원은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당 대표가 잘 했으면 그런 얘기가 나올까”라고 반문하며 “정당이나 정파적인 문제 아니다. 심각한 문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더민주 탈당파 중진 의원은 “아직 국민의당에 입당을 한 것도 아니라 총선연기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하루빨리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번 총선의 예비후보들은 참정권과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조광환 후보는 8일 “선거구 획정이 안 된 채 총선을 예정대로 치르게 되면 예비후보를 현역 의원과 차별하는 것이다. 헌법 제116조에 규정된 ‘선거운동 기회균등의 권리’에 대한 침해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조 후보의 법률대리인 송평수 변호사는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다. 헌법소원뿐만 아니라 선거법 제34조 제1항 2호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을 함께 신청했다”며 “이 조항은 국회의원 선거일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 종국결정시까지 20대 총선에서 이 법률조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판단을 구했다. 효력이 정지되면 기본권 침해가 최소화 되는 날로 총선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역사상 선거가 연기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다만 공직선거법 196조 1항은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면 총선을 연기하는 것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 조항이 선거 연기에 관한 유일한 조항이다”며 “부득이한 사유는 한두 명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