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본격 출범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김기동 단장이 서울고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특별수사단인가
지난해 8개월간 진행된 포스코그룹 수사가 일단락되자 언론들은 검찰의 특수수사 역량 저하 문제를 직접 지적했다. 기획기사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면서 검찰의 항변 또한 거셀 것으로 예상했지만 검찰은 의외로 단 한마디 해명도 없이 언론의 지적을 ‘덥석’ 물었다. 서울중앙지검에 특수5부를 설치하는 방안이나 중수부 성격과 유사한 한시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후 한 달여 만에 드러난 특별수사단의 윤곽은 김기동 단장(검사장)과 검사 4명, 수사관 10여 명이었다. 일단 이렇게 출범한 후 사건이 발생하면 추가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게 검찰의 구상이다.
검찰은 특별수사단에 대해 한사코 중수부의 부활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 등으로 폐지된 중수부를 2년 만에 다시 살린 것을 여론이 달가워 할 리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중수부 못지않은 특별수사단을 구성키로 한 것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러면 과연 특별수사단 구성은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특별수사단 구성이 김수남 검찰총장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이를 두고 김수남 검찰총장 작품이라는 설과 청와대 하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동시에 나온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 총장이 대검차장으로 있으면서 중수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패범죄를 수사할 총장 직속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며 “따라서 김 총장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김 총장이 외풍만 막아준다면 특별수사단은 사실상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는 데다, 김 총장의 권한 또한 막강해질 수 있다. 검찰의 다른 고위 인사는 “중수부가 폐지된 후 검찰총장의 힘이 너무 많이 빠지면서 오히려 외풍이 심해진 측면이 있다”며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특별수사단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경우 현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다보면 특별수사단도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중수부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중수부 32년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지적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중수부 창설 이듬해인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을 맡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 씨를 구속한 것을 시작으로 수서 비리사건(1991),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1995),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 씨가 연루된 한보 비리사건(1997) 등을 수사하면서 중수부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4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수사로 검찰은 ‘국민 검찰’이 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를 구속한 세종증권 비리 수사, 다음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급기야 2009년 5월 중수부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중수부 책임론이 비등했다. 2012년 저축은행 비리 당시 중수부가 다시 나섰지만 성적이 시원찮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이 중수부 폐지를 검찰 개혁안으로 들고 나오면서 결국 32년 만에 사라졌다.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 32년 역사는 검찰이 현실 정치권력에 너무 가까이 갔을 때 화를 당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특별수사단이 막판 중수부가 보였던 행태를 반복한다면 검찰은 중수부 폐지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청와대 사정 도구로 출발했든, 총장의 권한 강화를 위해 구성됐든 특별수사단이 가야 할 길은 외풍 없이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누구를 향한 특별수사단인가
특별수사단의 윤곽이 드러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부패 척결’을 새해 첫 일성으로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6일이었다. 이를 두고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사와 함께 특별수사단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는 것은 첫 타깃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이미 정해졌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더구나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발맞춰 특별수사단 구성안을 내놓지 않았느냐”고 분석했다.
김기동 단장 역시 특별수사단이 본격 출범한 지난 13일 “업무를 시작했다”면서 “평검사 인사 전에는 현판식이나 출범 관련 티타임 등을 열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 안팎에선 “손에 쥔 게 없는 상태에서 현판식이나 티타임을 언급한 것 자체가 무리일 텐데, 그런 얘기를 한 것 보면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얘기가 돌았다.
현재로선 황교안 국무총리가 최근 제시한 부정부패 4대 백신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사업이 모두 물망에 올라 있다. 재난안전통신망사업, 평창동계올림픽사업, 대형국책사업, 방위사업비리 예방시스템 구축, 우정본부 자산운용 투명성 제고, 철도시설공단 개혁, 무역보증 시스템 개혁,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방지, 실업급여 부정수급 방지, 부정식품, 환경사업 등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동안 단골메뉴였던 고위 공직자, 기업인 비리 등이 수사 타깃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4개 특수부에서 하고 있는 사건이나 대검 범죄정보 파트에서 수집하거나 내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벌써부터 물밑 스크린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이달 하순 평검사 인사까지 끝내고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