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측은 통합 직후부터 ‘하나와 외환이 만나 대한민국 1등 은행이 탄생했다’는 광고 문구를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화학적 통합’을 이루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해 9월 KEB하나은행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KEB하나은행 측은 통합 직후부터 ‘하나와 외환이 만나 대한민국 1등 은행이 탄생했다’는 광고 문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옛 외환은행 영업점에는 ‘KEB외환은행’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다. 하나·외환은행에서 서로의 업무를 볼 수도 없다. 아직 통합 전산망이 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인만 통합됐을 뿐 사실상 투 뱅크(Two Bank) 체제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서울의 한 영업점에서는 하나은행 업무를 보러 왔다가 되돌아가는 고객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 영업점 한 행원은 “지난해까지는 기존 하나은행 고객들이 (전산 통합이 안 된지) 모르고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현재는 그런 고객은 거의 없다”며 “업무에 차질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애써 문제를 외면했다.
하나금융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기 통합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4년 12월 외환은행 IT부서를 서울스퀘어 건물로 이전시켰다. 당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위해 전산통합을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전산통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존 두 은행 전산 시스템의 장점을 합쳐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다보니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적어도 10년은 쓸 정도로 전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하나금융은 지난해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 전산 통합 시 ‘사고’를 낸 전력이 있다. 당시에도 통합 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다보니 전산 오류 사태가 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사실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인수·합병(M&A)은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통합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동안 다른 은행들의 뒷모습만 보고 쫓아가던 하나은행이 경쟁자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을 여유롭게 내려다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 영업력 제고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1등 은행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한편에서 외환은행은 그간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실’ 은행이란 멍에를 뒤집어썼다. 그러다 지난 2003년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에 인수됐다가, 2011년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이때 론스타는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나며 ‘먹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또 2007년에는 HSBC은행이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외국 자본에 대한 반발 심리로 최종단계에서 인수가 무산되기도 했다.
2011년 하나금융지주 산하로 편입된 후 꾸준히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외환은행 측의 반발로 파행을 겪기 일쑤였다. 특히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반대가 거셌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7월 외환은행 측은 조기 통합에 합의했고 9월에 법인이 통합돼 KEB하나은행이 탄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나금융 측이 외환맨들의 자존심을 얼마나 세워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함 행장은 강경상고 출신으로 소문난 ‘영업통’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나은행에 인수된 서울은행 출신이다. 거기다 행장 임명 직전에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충청사업본부 역시 하나은행에 인수된 충청은행이 그 전신 격이다. 앞서의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누구보다 행장님께서 외환은행 출신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것”이라며 “행장님 성격 자체가 친화력이 정말 좋으신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은 여전히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은행 출신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승진 인사에서 외환은행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의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인사에서 출신에 따른 차별은 전혀 없다. 행장님도 밝히셨듯이 인사는 오직 성과에 근거한다”라며 전면 반박했다.
가장 민감한 임금과 직급체계 일원화도 난제로 남겨져있다. 승진은 하나은행이 빠르지만 급여수준은 외환은행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년 동안은 (두 은행) 각자의 기존 체계대로 갈 예정”이라면서도 “통합 후 다시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 한 금융지주사에 두 시중은행이 제각각 영업을 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 통합을 하면 비용 감소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다. 통합에 시간이 걸리며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들어간 총 통합 비용은 3000억 원 정도다. 올 6월까지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될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최근 JB금융지주는 산하의 전북·광주 두 은행의 전산을 통합해 ‘원 뱅크’가 되며 시너지효과를 보고 있다. 다만 은행명까지 통합하지 않은 건 지역은행이라는 특성이 반영 됐기 때문이다.
함 행장은 취임사에서 빠른 화학적 통합을 이룰 것을 주문했지만, 이를 위한 필요조건인 물리적 통합마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앞서의 외환은행 출신 관계자는 “쓸데없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만, 졸속으로 통합을 서두르다가는 앞으로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