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과 평사원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부진·임우재 부부가 17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사진은 1999년 8월 10일 결혼식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장녀와 일반인의 결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의 러브스토리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남자가 유명인 혹은 재벌가 딸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가 방송되면 이 사장과 임 고문의 이야기가 어김없이 오르내렸다. ‘현실에서는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낸 두 사람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이 사장이 2014년 10월 법원에 이혼조정과 친권자 지정을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조명 받았다. 2014년 2월 한 80대 택시기사가 신라호텔 출입문을 파손해 4억 원가량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택시기사 사정상 4억 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기는 힘들었다. 이를 안 이 사장이 배상금을 회사 측이 부담할 것을 지시했다는 ‘선행’이 알려지면서 이 사장과 임 고문의 러브스토리가 다시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판결을 계기로 이때는 이미 두 사람이 별거 중이었던 데다 이 사장이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준비하던 시기였음이 드러났다. 재계 관계자는 “이혼을 고려하던 시기에 자신의 러브스토리가 다시 퍼져나갔으니 이 사장 입장에서 난처했을 것”이라면서 “몇 개월 사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털고 가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장과 임 고문은 1995년 사내 봉사활동을 통해 만났다. 서울고-단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물산에 입사한 임우재 고문은 당시 회사 봉사활동을 하다 이 사장을 만났다. 이 사장은 삼성복지재단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때였다.
이건희 회장은 물론 삼성가에서는 둘의 만남을 반대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장녀가 계열사의 한 사원과 교제하고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다. 더욱이 이 사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는 딸로 알려져 있다. 결혼 반대가 극심하자 이 사장은 집안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승낙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우려했던 대로 두 사람은 결국 이혼을 눈앞에 뒀다.
두 사람은 이미 2007년부터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이 사장이 이혼조정과 친권자 지정을 신청하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관계 회복을 노렸다기보다 삼성그룹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이 사장이 이혼 소송을 미뤘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2009년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합의이혼을 한 것도 이 사장이 이혼 소송을 미룬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혼 내막에 대해서는 둘의 사생활이라 잘 모른다”면서도 “14일 판결은 법원이 원고 측 요구를 다 받아들인 ‘완전승소’다”라고 평했다.
이번 이혼 판결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 사장과 임 고문의 미성년 아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이 사장이 갖는다고 한 것이다. 임 고문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을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만 인정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친권과 양육권 모두 엄마에게 준 것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고문은 줄곧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사장이 2014년 10월 법원에 이혼조정과 친권자 지정을 신청한 후 두 사람이 합의에 실패하고 소송에 돌입했을 때도 임 고문은 ‘이혼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법원이 아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마저 전부 이 사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임 고문은 자칫 삼성가에서 홀로 나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일부 이혼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 변호사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임 고문 쪽에서 ‘이혼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합의사항은 아니지만 보통 공동친권에다 면접교섭권도 월 2회가 대부분인데 전부 이 사장 쪽에 유리하게 판결한 게 의아하다”며 “이혼사유와 임 고문의 유책사유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법원 판결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보는 쪽도 있다. 박현우 법무법인 평화 변호사는 “유책사유가 불분명하더라도 7년 동안 별거를 했다면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재벌가이기에 부각됐을 뿐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쪽에 편향된 판결은 아니다”며 “실제로 부모 둘 다 경제력 등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가사이혼소송 판결의 절대 다수가 친권과 양육권 모두 어머니 쪽에 주어지도록 판결이 난다”고 덧붙였다.
영화 같은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불행한 결말로 치닫고 있다. 이혼 소송이 마무리되면 곧 재산분할 등의 문제를 놓고 또 다시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우재 고문 쪽이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이혼 소송마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지루한 법정 다툼이 계속될 전망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