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차기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된 김병원 전 전남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오른쪽)이 최원병 회장의 축하를 받고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김 당선인은 농협중앙회가 민선 회장을 선출한 이래 처음으로 호남(전남 나주) 출신 회장이 됐다. 관선 시절인 1964~1966년 전북 진안 출신인 제4대 문방흠 회장 이후 50년 만에 농협중앙회가 호남 출신 회장을 맞게 된 것이다. 민선 1·2대 한호선 전 회장은 강원, 3·4대 원철희 전 회장은 충남, 5·6대 정대근 전 회장과 7·8대 최원병 회장은 각각 경남과 경북 출신이다. 회장 투표권을 갖고 있는 291명 대의원 중 영남 대의원이 87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호남 출신 후보의 당선은 ‘이변’이라 할 만하다는 것이 농협중앙회 안팎의 평가다.
특히 1차 투표에서 2위에 머물렀던 김 당선인에게 결선투표에서 영남 대의원들의 표가 몰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놀라움은 더 컸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워낙 진정성이 있는 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을 순리대로 진행해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선거 과정에서 그 성품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만큼 기존 세력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 아니겠느냐”며 “새로 당선된 인물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았던 듯한데 역전승을 한 것을 보면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당선인에게 결선투표에서 패한 이성희 전 조합장은 8년간 농협중앙회장을 맡은 최원병 현 회장 체제에서 무려 7년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을 지낸, 최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기존 세력’인 셈이다.
비록 최 회장이 비리 혐의 등으로 중도하차한 이전 민선 회장들과 달리 연임 기간을 끝까지 지켜내기는 했지만 전산장애, 검찰의 농협 비리 수사 등으로 신뢰를 상실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또 지난해 검찰의 농협 비리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 대부분이 이성희 전 조합장이 감사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있었던 일이라는 점도 투표에 임하는 대의원들이 이 전 조합장에게 등을 돌린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예상을 깨고 당선된 김 당선인은 오는 2월 자산 430조 원에 달하는 농협의 새 회장 자리에 오른다. 1953년 생으로 광주농업고와 광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당선인은 1978년 나주 남평농협에 입사해 제13~15대 남평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다. NH무역 대표, 농협양곡 대표, 농협중앙회 이사 등을 거치면서 농협중앙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개혁적 인사로 통하는 김 당선인은 당선 소감으로 “임기 4년 중 1년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 쓸 것”이라고 한 만큼 농협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우선 김 당선인이 내건 공약부터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김 당선인은 “농협경제지주로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이 모두 이관되면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은 업무 경합을 피할 수 없다”며 “경제지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모형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농협경제지주를 폐지해 현재 농협이 갖추고 있는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를 ‘1중앙회-1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른바 ‘신경분리’에 따른 현재의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는 농협이 과거 수년간 애써 추진한 일로 2011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성사된 일이다. 게다가 오는 2017년까지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현재 절반 이상의 업무가 이관된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이다. 이를 다시 농협법을 개정해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병원 당선인은 민선 첫 호남 출신, 파격적 공약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무엇보다 이 같은 일은 농협중앙회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경제지주 폐지든 직선제 전환이든, 농협중앙회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농협금융의 변화 개혁에 대해서는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의 ‘재가’가 필요하다. ‘농민대통령’으로 불리는 농협중앙회장은 비록 선출직이지만 정부 영향력에 있는 자리로 알려져 있는 현실이다. 농협중앙회 내부 직원들조차 “농협은 준정부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김 당선인이 앞으로 4년 단임제인 농협중앙회장으로서 공약을 제대로 실천해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그동안 겪어본 성품상 자신의 말을 뒤집는 스타일은 아니다”라면서 “농촌과 농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순리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다른 관계자는 “회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생각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선거에 나서는 후보가 내건 공약을 다 지키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