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구해서 먹는 쌀, 보리, 밀 등 기본 곡물부터 감자, 딸기, 바나나 등 다종다양한 재배식물들은 인류와 어떤 관계와 의미가 있을까? <곡물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최초의 경작지에서부터 현대의 슈퍼마켓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곡물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돌아본다.
가장 오래된 재배식물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밀, 보리, 콩 등 ‘기초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농부’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식물을 재배하면서 최초의 경작도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재배식물을 먹이 경쟁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곡물을 경작하면서 한곳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다. 단순히 야생식물을 재배식물로 만들기만 한 게 아니라, 나아가 정착 생활을 ‘고안’하기도 한 셈이다.
유럽에선 중세가 되면서 재배식물을 경작하는 주요 장소가 농부들의 농경지에서 수도원의 정원으로 바뀌었다. 특히 그곳에서는 양귀비, 파슬리 등의 향신료 식물과 약초를 재배했기 때문에 수도원 정원을 ‘살아 있는 약국’이라 불렀다.
이어서 15세기 말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가마로 대표되는 유럽의 신대륙 발견을 통해 많은 재배식물이 신대륙에서 구대륙(특히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토마토는 유럽에서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당시 유럽에선 토마토를 ‘사랑의 사과’라고 표현했다. 카카오와 담배도 이때 전해졌다. 그리고 페루가 원산지인 감자를 비롯해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많은 식물들(호박, 땅콩, 피망, 생강 등)이 구대륙으로 들어왔다.
밀은 그 반대로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전해진 대표적 식물이다. 정원에서의 식물 재배와 신대륙 발견을 통한 새로운 식물의 전파는 재배식물이 글로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가 거의 매일 이용하는 슈퍼마켓에는 다양한 식품이 있다. 빵, 밀가루, 설탕, 과일, 채소 등 수많은 식물을 우리는 1년 내내 사서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산지의 중요성도 사라졌다. 이는 재배식물이 글로벌화되었고, 농업 기술이 발전해 대량으로 재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키위는 원래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데, 20세기 초 뉴질랜드에 들어와 대량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1950년부터 뉴질랜드산 키위가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사람들은 으레 키위를 뉴질랜드 과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재배식물, 곧 곡물 생산자인 농부와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의 배후에 ‘농업’이라는 문화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식품이 경작, 농경문화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곡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곡물에 모든 것이 달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다.”
한스외르크 퀴스터 지음. 송소민 옮김. 서해문집. 정가 1만 49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