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애인의 ‘알몸 셀카’를 인터넷에 유포한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지난 2013년 11월 서 아무개 씨와 유부녀였던 A 씨는 연인 관계를 맺었다. 사귀는 동안 A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체 사진을 찍어 휴대 전화로 전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A 씨는 3개월가량의 만남에 이별을 통보했고 그러자 서 씨는 돌변했다.
서 씨는 일전에 A 씨가 찍어 보낸 나체 사진을 자신의 구글 캐릭터 사진으로 지정한 뒤 A 씨의 딸의 유튜브 동영상에 댓글을 작성하는 방법으로 전시한 것이다. 게다가 A 씨에게 “가족을 파멸시키겠다”며 1000만 원을 요구하고 A 씨 남편에겐 “재밌는 파일 하나 보내 드리죠” 등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 씨는 차용증을 위조하는 등 A 씨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특히 나체 사진을 공공연하게 전시한 점에 대해 1심과 2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나체 사진 공개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현행법은 ‘다른 사람’을 촬영 대상자로 하여 그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뜻하는 것이 문언상 명백하다”며 “이를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A 씨가 사진을 직접 찍어 보낸 만큼 서 씨가 유포한 사진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촬영물’이 아니라고 본 것.
더구나 이번 판결에 따르면 당사자가 직접 찍은 촬영물의 경우 상대방이 동의 없이 유포해도 성폭력 특례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돼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 역시 ‘다른 사람’을 찍은 촬영물은 성폭력 특례법으로 처벌 가능하지만 ‘자기 자신’을 찍은 촬영물은 성폭력 특례법으로 처벌불가능 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연인 시절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이 헤어진 뒤 복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리벤지 포르노’라 얘기하는데 그 종류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에 문제가 된 것처럼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나체를 촬영해 남성에게 보낸 경우가 있을 것이며 남성이 여성의 나체를 찍은 경우가 있다. 또한 둘이 함께 등장하는 나체 사진 또는 성관계 동영상도 촬영 주체가 각기 다를 수 있다. 남성이 찍은 경우와 여성이 찍은 경우가 있고 촬영 주체가 모호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번 판결에서 중요한 부분은 ‘셔터를 누른 사람’이다. 여성이 셔터를 누른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이를 온라인 등에 공개했을지라도 성범죄로 남성을 처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 가운데에는 여성이 카메라를 켜거나 성관계 도중 여성이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는 등 촬영에 적극 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여성이 촬영을 한 것으로 본다면 해당 동영상을 상대방 남성이 온라인에 공개해도 성폭력 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법이 당사자의 의지까지 판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 전경. 일요신문 DB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는 입법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노 변호사는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의 의사를 따르라는 것과 촬영물을 배포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애초 입법 목적”이라며 “이번 판결은 리벤지 포르노 배포를 허용해주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노 변호사는 “너무 한 방향으로 법을 해석하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 2차 피해가 더 큰 경우에 남성중심적인 사고에서 법을 해석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법 제정 취지와 입법 취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수원대학교 법학과 류여해 겸임교수는 법 자체에 문제를 지적했다. “판사는 법에 명시된 것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일단 현재 문제가 되는 법 자체가 확장해석될 가능성이 많다”며 “때문에 최근 이에 관해 입법이 많이 되고 있는 상태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세하게 단서가 붙을 경우 오히려 판결엔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서 외의 것은 처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법으로 서 씨를 처벌할 수 없는 이유는 A 씨가 촬영에 동의를 했고 촬영에 적극 임해 ‘셔터’를 자발적으로 눌렀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자의’라는 부분을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명예훼손 등 다른 법규정을 통한 처벌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성폭력 특례법과 명예훼손 등에 관한 법의 처벌 수준은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14조 1항과 2항에 의하면 3년에서 5년 이하 징역과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나온다. 게다가 법원은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선 성명 나이 주소 실제 거주지 신체정보 사진 등록대상 성폭력범죄 요지를 등록기간 동안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개하도록 명령할 수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 등 다른 법과 비교해 처벌 수준이 높다.
한편 대표적인 불법 성인 사이트 ‘소라넷’은 리벤지 포르노를 ‘치졸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지에서 소라넷은 “리벤지 포르노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등에서도 사회문제가 되어 관련법이 새롭게 제정되고 법적 제재를 하고 있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소라넷 역시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규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