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한 스타플레이어 홍명보가 ‘취중토크’를 통해 카리스마의 이면을 보여줬다. 그는 2004 시즌이 끝난 후 축구선수 유니폼을 벗을 거라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홍명보를 마주하고 있다보면 예전 총각 시절, 슬며시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려줘 기자한테 특종을 안겨줬던 고마움과 인터뷰 때마다 유독 성실하게 응하고 자신을 보여주려 애쓰던 진지함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홍명보라는 이름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축구선수 홍명보’는 2003년의 끝자락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미국 진출 전과 후의 생활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였다. 대표적인 부분이 봉사활동이었다. 지난 21일 전·현직 축구 스타플레이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소아암 환자돕기 자선경기’는 홍명보가 한국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인케 해준 무대였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봉사활동을 통해 ‘환원’하려고 무지 애쓰고 있는 홍명보를 지난 23일 강남의 한 팬 사인회가 끝난 뒤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취중토크’의 주인공으론 다소 거리감(?)이 있는 진중한 스타플레이어였지만 진지와 카리스마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색다른 술자리였다.
12월8일 귀국 후 23일까지 단 하루도 쉬질 못했다고 한다. 아직은 탈이 안 났지만 조만간 병이 날 것 같다고 말하는 표정 속엔 그동안의 강행군에 따른 고단함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돌아보면 홍명보의 귀국 일정은 팬 사인회와 방송 출연, 보육원 방문, 자선경기 홍보 행사 등으로 연예인 못지않게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귀국 행사의 백미였던 자선축구대회가 끝난 후에도 홍명보는 한 스폰서 업체의 팬 사인회에 나가 1시간여 동안 사인과 사진촬영을 곁들였는데 나중에 손목의 통증을 호소할 정도였다.
“자선경기만 아니었다면 가급적 행사를 자제했을 거예요. 처음 열리는 대회였고 날씨마저 추운 상태라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거든요. 말 그대로 몸 바쳐 홍보 활동을 위해 뛰어다녔어요. 제가 주선한 대회인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대회가 지속되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홍명보는 진심으로 대회에 참가해준 동료 선후배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미국에서 우연히 소아암 환자의 투병기를 방송을 통해 본 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미처 손을 쓰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부모의 심정이 돼 자선축구대회를 마련했다고 한다.
“제가 좀 ‘진지’하긴 해요. 하지만 가정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아요. 특히 아이들하고 있을 때는 재미있게 놀아주는 여느 아빠들과 다를 바 없어요. 집에서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밖에 나오면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 하질 않네요.”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그렇게 진지하냐’고 묻자 모처럼 환한 웃음을 띠며 “그런 자리는 좀 다르죠. 편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조차 무뚝뚝한 눈빛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정운, 황선홍, 유상철 등 홍명보와 가깝게 지내는 선수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술자리에서만큼은 홍명보의 카리스마도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제가 만약 술자리에서 완전 딴판이라면 지금의 모습이 가식이나 마찬가지겠죠. 남들처럼 분위기에 적응하며 즐기는 스타일이라 마냥 망가지진 않아요. 그냥 조금 여유 있어지는 거죠.”
술과 ‘인연’이 깊은 고려대 출신이라 술과 관련한 커리어 또한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젊었을 때는 술 꽤나 마신 편이었다고 자진 고백을 하는 걸 보면.
“제일 많이 마셨을 때가 대학 4학년 때 고연전이 끝난 뒤였을 거예요. 우리 후배들이 3-2로 역전승을 했는데 4학년 마지막 경기에서 제외가 되는 바람에 무척 섭섭하고 아쉬웠어요. 그때 뒤풀이 장소에서 엄청 마셨던 것 같아요. (그때 마신) 술 양이요? 정말 모르겠어요. 병을 세어보질 않아서.”
일본 J리그 생활 중에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숨어 있었다.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동할 당시 한국에서 온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축구 내공이 깊고 좀체 굳은 표정을 풀지 않던 홍명보는 일본 선수들한테마저 접근하기 어려운 선수였다.
“시즌 마지막 경기 후 가진 모임에서였을 거예요. 모든 경기 일정이 끝났다는 속시원함에다 1년 동안 좋은 팀워크를 보여준 선수들과의 모처럼만의 술자리라는 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막판에 한국식 술 문화의 진가를 여과없이 보여줬죠. 바로 ‘원샷’이었어요. 선수들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취해가는 걸 느꼈고 그때 처음으로 일본 선수들과 동료애라는 걸 나눌 수 있었습니다.”
홍명보는 술을 마시면 말수가 조금은 많아진다. 아내 조수미씨의 증언(?)에 따르면 워낙 집에서도 한결같은 사람이라 술 마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말이 많아지고 자주 웃는다는 것.
홍명보는 이번 귀국 기간 동안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환해졌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보다도 국가대표선수로부터의 ‘자유’가 그의 어깨에 놓인 짐들을 줄어들게 한 일등공신이다. 뒤집어보자면 그만큼 태극마크에 대한 긍지와 집착이 강했던 셈이다.
▲ 홍명보가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산타가 돼 사랑을 실천했다. 사진은 인터뷰 중 보여준 다양한(?) 표정들. | ||
이렇게 표현하는 건 정말 싫지만, 저도 어쩔 수 없네요. 요즘 선수들 말이에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우리나라 대표팀 경기를 제대로 보진 못했어요. 따라서 경기력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젊은 선수들이 갑작스런 신분 상승에 도취돼 남을 배려하지 않고 개인주의적인 행동에 치중한다는 소릴 전해듣고 무척 안타까웠어요. 특히 그 중에서 스타급 선수들이라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파장을 생각해서라도 개인적인 행동은 자제해야 하거든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국가대표선수죠.”
2002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선수로서의 가장 큰 꿈은 태극마크였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의 화려한 순간들을 보낸 지금은 그에게 축구선수로서 못 다 이룬 꿈도,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지금은 선수 이후의 목표를 새롭게 정하고 가다듬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고 구단주, 행정가, 지도자 등 다양한 미래의 행로들이 홍명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확실한 가닥을 잡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미래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불안감이나 불투명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2004년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축구선수 홍명보의 마지막 시즌이냐’고 다소 장엄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간단하게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정말 마지막이에요. 그 마지막에 좋은 걸 두루두루 배우고 있습니다. 선수생활을 마친 다음에는 어학을 공부할 계획이에요. 그 다음은 생각 안해봤습니다.”
홍명보다운 분위기로 ‘취중토크’가 진행되다보니 술자리에서마저 진지와 카리스마의 이면을 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지막 기자의 히든 카드! ‘즉문즉답’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밖에.
“노래 잘하세요?” “별로. 노래하는 데 가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마이크 잡을 기회가 별로 없어요.”
“혹시 선글라스 없어요? 요즘 선수들 공항에 들어올 때마다 선글라스 쓰고 폼 잡는 게 유행인데.” “선글라스는 있지만 오히려 그런 시선들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못 써요.”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명품은 어느 정도?” “옷 구입은 순전 아내 담당이고 설령 새로운 옷을 사다 줘도 그게 명품인지 뭔지 잘 몰라요.”
“강남에 단골 미용실이 있나요?” “무슨 단골까지. 그냥 머리가 길다 싶으면 가까운 데 가서 잘라요.”
“마지막으로 아내와 쇼핑을 즐기는 걸로 유명하던데.” “웬 헛소문? 제가 아내한테 자주 하는 말 중 하난데 1시간 동안 쇼핑할 바엔 차라리 운동장 2시간을 뛰는 게 더 낫겠다고 해요. 쇼핑은 정말 별로. 가끔 장은 같이 보죠. 카트 담당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