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3일자 <경향신문>의 당시 기사
1968년 1월 13일. 북한 정찰국 124부대 소속 31명이 지령을 받았다. 당시 북한 정찰국장인 김정태가 이를 지휘했다. 목적은 청와대 습격과 대통령 암살. 당시 요원들은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채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했다. 침투 요원들은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며칠에 걸쳐 청와대 인근까지 진입한 요원들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곧 이어 저항이 사작됐다. 국군은 곧바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작전은 31일까지 계속됐다. 피해도 컸다. 최규식 종로경찰서장 현장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요원들 중 29명이 사살됐고, 1명은 북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남은 이가 바로 그 유명한 김신조였다. 김신조는 투항한 뒤 우리 정부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앞서의 사실을 밝혔다. 이 때 나온 유명한 말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 목 따러 왔수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당시 전개됐던 노동 및 민주화 운동은 반공을 명분으로 더욱 탄압받기 시작했다. 장교 양성을 위해 3사관학교가 개교했으며, 일선 학교에선 교련 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군에선 이른바 ‘유격훈련’이 정기적으로 실시되며 전력 강화를 꾀했다.
한편 김신조는 현재 국내로 귀순하여 목사로 활동중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