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리스트(왼쪽)를 수사중인 경찰은 “실제 성매매가 있었다 하더라도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내 한 모텔촌 전경. 일요신문DB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일보 기자임. 잡지 말 것’ ‘한의사라 함. 선릉 쪽에 병원이 있는 것 같음’ ‘피부과의사 아우디○○○○’ ‘확인된 경찰’
<일요신문>이 입수한 명단에 기재된 메모 중 일부다. 대다수 메모에서는 남성의 직업보다 차량과 인상착의가 주로 묘사돼 있다. 그렇지만 특이한 직업의 경우 리스트에 메모가 돼 있었는데 의사, 변호사, 경찰, 기자 등이 눈길을 끈다. 남성들이 스스로 직업을 밝혔거나 유추해서 메모를 남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은 의사와 경찰이다. 70여 명이 의사나 한의사라고 기재돼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의사가 아님에도 자신을 의사라 소개한 성매수남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또 ‘경찰’ ‘경찰 같은 느낌’ ‘경찰 의심’ 등의 메모 역시 50여 개 발견됐다. 심지어 특정 경찰서 소속 경찰이라는 등 구체적으로 기재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경찰이 성매수남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매매 리스트에서 경찰이 중요하게 기록된 까닭은 여러 정황상 경찰이 성매매 수사를 목적으로 성매매 조직에 접근하는 것을 조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번에 공개된 ‘강남 성매매 리스트’는 확인된 문건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 문건인 터라 경찰이 확인 작업에 돌입해 있지만 경찰이 해당 문건이 실제 성매매 리스트라고 확인을 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성매매 리스트에 등장하는 몇몇 성매수남들과의 전화 통화로 해당 문건의 신빙성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아직 확인된 문건이 아닌 만큼 리스트에 나오는 휴대전화 번호 역시 성매수남의 번호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따라서 기자는 리스트에서 경찰이라고 언급된 이들로 국한해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그렇지만 경찰이라고 기록돼 있는 휴대전화 번호의 상당수는 전원이 꺼져 있거나 최근 수신자의 요청으로 착신이 정지돼 있는 상태였다. 해당 리스트가 경찰과 언론사에 공개된 뒤 문의 전화가 쇄도하기 때문에 전원을 끄거나 착신을 정지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번호는 전화를 받았다. 특히 전화를 받은 몇몇은 말투와 주변 소음 등의 정황상 형사로 추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자임을 밝히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전화 연결이 됐지만 자신은 경찰이 아니며 최근에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고 밝힌 이들도 있었다. 경찰로 기재된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한 50대 여성이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 여성은 자신은 경찰이 아니며 얼마 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이 여성은 “요즘 뉴스에 나온 그 리스트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포함돼 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전화 연결이 된 한 남성은 “이런 기자들의 전화를 벌써 몇 통 받았다”며 “거듭 얘기하지만 난 경찰이 아니고 성매매를 하지도 않았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강남 성매매 리스트’에 현직 경찰관의 휴대전화 번호가 있다는 내용이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찰의 휴대전화 번호가 리스트에 있는 까닭이 실제 성매수남이기 때문인지 수사 차원에서의 접근 때문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강남 성매매 리스트’에 적혀 있는 휴대전화 번호 가운데 실제로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남성과 통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리스트에는 이 남성의 휴대전화 번호 옆에 ‘경찰 의심’이라 적혀있었다. 휴대전화를 받은 남성은 당황스럽다면서도 과거 성매매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우선 “나는 경찰이 아니며 오랜 기간 지금의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며 우연히 과거 경찰이 사용하던 번호를 사용하게 된 경우는 아니다. 그렇지만 리스트에 ‘경찰 의심’으로 언급돼 있듯이 의심만 샀을 뿐 실제는 경찰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수년 전에 성매매를 한 적이 있다”면서 “그렇지만 성매매 사실이 적발돼 경찰서 조사를 받고 관련 교육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리스트 수사 방향은? 이른바 지도층 최소 100명…증거 확보가 문제다 지난 18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6만 6385명의 연락처·차량번호·직업·특이사항 등이 기재된 일명 ‘강남 성매매 리스트’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수사는 라이언 앤 폭스 김웅 대표가 성매매 리스트를 경찰에 넘기면서 시작됐다. 김 대표는 “강남 성매매 업자가 노트 8권에 수기로 적은 내용을 건네받았다. 이 조직은 하루 평균 1000만 원씩, 2011년부터 5년간 1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며 “사회지도층 인사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최소한 100명은 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경찰은 200여 개의 개별 명단이 합쳐진 전체 명단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분석 작업에 돌입했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장부 분석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는 장부 내용의 진위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아직까지 제보자나 관련 있다고 보이는 인물들을 소환하지 않은 상황이며 실제 성매매가 있었다 하더라도 성매매의 증거를 확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