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앞에 웅크린 사람들에게 말을 던졌다.
“일류 가수였다고 하면 사람들은 늙어서도 잘살겠지 하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같이 추락하고 날개가 꺾여 다시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인기 가수였고 이벤트 회사도 경영하면서 호화스런 룸살롱도 자주 갔습니다. 술집 마담조차도 걱정이 됐는지 매일 오면 사업이 망한다고 경고했죠. 접대 명목이지만 사실 저는 알코올 중독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대마초에 손을 댔습니다. 수배가 되면서 미국으로 도망을 가서 실컷 그걸 즐겼죠. 알코올 중독에 환각제 없이 못사는 인생이 됐습니다. 결국 공원 벤치에서 이슬을 맞고 밤을 새는 신세까지 됐습니다.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도 다른 청년이 앞서 가더군요.”
그는 자신의 절망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없어봐야 가난을 이해하고 아파 본 사람이라야 타인의 고통을 안다. 그들 앞에서 무릎 꿇고 섬기는 진심어린 위로 공연이었다. 화려한 호텔에서 자선을 상품으로 내세운 듯한 공연과는 본질이 달랐다.
그는 어느 날 빛이 자신의 영혼에 들어와 바뀐 과정을 얘기했다. 술도 환각제도 끊었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쪽방에 하루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현실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타를 들고 더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나섰다. 환각제보다 더 충만한 기쁨이 다가왔다. 그가 노래 사이에 털어놓는 삶의 단편은 히트곡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멜로디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얼굴에 빛이 나고 목소리가 변했다. 60대를 넘은 노인의 목에서 나는 탁한 소리가 아니었다. 맑고 투명한 천상의 소리였다. 그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원인 모를 찡한 감동이 가슴 속에서 파문 졌다. 대중의 인기가 떠난 늙고 가난한 가수가 다른 존재로 변해 있었다. 흰 날개나 머리 위에 둥근 영의 고리가 떠 있지 않아도 천사가 틀림없었다. 무료급식과 잠자리를 주는 그 시설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는 그의 예술인생에서 최고로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사람들은 내남없이 고난의 불가마 속에 던져진다. 많은 그릇들이 가마 안에서 거센 불을 견디지 못해 깨지듯, 사람들도 고난의 불 속에서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강한 불을 견딘 사람은 삶의 색채와 문양이 선명하고 단단하게 그의 영혼에 고착되는 것 같다. 고난과 나눔이 그의 인생과 노래를 완성시킨 건 아닐까. 있어도 계속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거지다. 없어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부자다. 인간사 고달파도 세상은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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