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전설’들이 패권을 다투는 이번 승부는 어느 한판 빼놓지 않고 모든 대국이 명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훈현 vs 조치훈의 한일 정상대결이나 조훈현 vs 이창호의 사제대결, 조훈현 vs 서봉수의 라이벌 승부, 날카로운 창과 최고의 방패가 조우하게 될 유창혁 vs 이창호의 대결 등은 판판이 바둑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명승부가 될 것이다.
개막식이 열리기 며칠 전 한국기원 2층에 자리한 기자실에서는 ‘한국바둑의 전설’들의 대결을 앞두고 이를 전망해보는 기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주제는 과연 누가 우승컵을 안을 것이냐. 또 순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이번 전설들의 대결은 토너먼트가 아닌 풀리그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5명의 서열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다. 우승상금은 5000만 원, 준우승상금은 2000만 원이다. 3위는 1200만 원, 4위 800만 원, 5위 600만 원의 상금도 별도로 책정돼 있다. 따라서 우승 못지않게 순위를 둘러싼 자존심 다툼이 끝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승 영순위는 단연 이창호 9단이 꼽혔다. 전성기 시절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단 유일한 40대로 가장 젊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승후보로 이창호 9단을 꼽지 않은 기자가 없었을 정도이니 이 9단이 우승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가장 큰 이변일 것이다.
논쟁은 2위 자리를 두고 벌어졌다. 이창호가 1위라면 2위는 누구냐. 이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
제일 먼저 꼽힌 것은 유창혁 9단. A 기자 외 다수가 유창혁 9단을 2위 후보로 꼽았다. 바둑 취재 20년 경력의 베테랑 A 기자는 “유창혁 9단을 2위로 언급했지만 이창호 9단과 우승도 다툴 수 있다고 본다. 이 9단과 나이 차가 가장 적고 현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어 어린 친구들과 매일 바둑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그거 무시할 수 없다. 시니어 기사들이 최신 유행수법에 둔감한 편인데 유 9단은 속속들이 꿰뚫고 있을 테니 엄청난 강점이 될 것이다”며 유창혁 9단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 유창혁 9단은 18일 열린 맥심커피배 본선 1회전에서 랭킹 18위 허영호 9단을 상대로 반집승부를 펼쳐 큰 승부를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성공리에 마쳤다.
조치훈 9단을 꼽은 이는 필자 외 약간 명. 무엇보다 실전 경험이 지금도 제일 풍부하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혔다. 젊은 기사들이 득세하는 한국 바둑계와는 달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치훈 9단은 여전히 쌩쌩한 현역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며 실전경험을 잃지 않는 것과 대국 없이 연구에만 매진하는 것은 천양지차. 조치훈 9단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다.
다만 상대전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걸리는 점. 유창혁 9단에게만 한번 겨뤄 1승을 올리고 있을 뿐 이창호, 조훈현, 서봉수 9단에게는 통산전적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다.
조훈현 9단을 앞에 놓는 기자들도 많았다. 조 9단은 이창호 9단에게는 열세지만 다른 ‘전설’들과는 역대 전적에서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조 9단은 서봉수 9단에게 251승119패, 조치훈 9단에게는 7승3패, 유창혁 9단에게는 72승1무53패를 기록 중이다.
서봉수 9단의 이름은 가장 나중에 거론됐지만 뜻밖에도 그가 이번 대회에 임하는 소감을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서 9단이 오후 5시쯤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섰기 때문. “어떻게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서 9단은 “옛날에 그렇게 징글징글하게 생각하던 친구들을 나이 먹어 또 만나게 됐다. 예전에도 저들 4명이 중국이나 일본 기사들보다 피곤한 상대였다. 이젠 모두 나이가 들었으니 누가 착각을 덜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본다. 내가 우승하기는 어렵겠지만 조치훈 9단이나 유창혁 9단과는 좋은 승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중간은 하지 않을까”라고 임전소감을 밝혔다.
국내 바둑팬은 물론 전 세계 바둑인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이들의 일전은 22일 개막식에 이어 다음달 14일까지 숨 가쁜 레이스가 이어진다. 모든 대국은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의 개국 기념 특집방송으로 생중계되며, JTBC를 통해서도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씩 4회 특집 방송된다.
한편 한국기원은 후원사인 전자랜드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전설 1인과의 지도기’ ‘사인 바둑판·부채 증정’ 등의 이벤트도 벌일 예정이다.
유경춘 객원기자
새해 박정환이 독해졌다 응씨배 ‘복수혈전’ 벼른다 랭킹1위 박정환 9단이 2016년엔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출발은 좋다. 박정환 9단이 새해 치러진 2개의 결승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2관왕에 올랐다. 18일 열린 국수전 도전 5번기에서 박정환 9단(오른쪽)이 조한승 9단을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어 18일 열린 제59기 국수전 도전5번기 제3국에서 조한승 9단에게 승리를 거두고 종합전적 3-0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국수전이 끝난 후 박정환은 “4월 열리는 응씨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4년 전 응씨배 결승전에서 중국 판팅위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만큼 올해는 반드시 정상에 오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번 인터뷰에서 박정환은 그동안의 천편일률적 답변에서 벗어나 다부진 각오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박정환은 “지금까지 세계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열 번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고 밝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과연 박정환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바둑팬들에게 사랑받는 기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