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아가방, 영실업, 초록뱀미디어 홈페이지 캡처. 이들은 이제 중국 회사다.
상하이자동차는 연간 10~20%의 성장률을 보이며, 중국 최대 완성차 회사로 거듭났다. 특히 중국의 소득 상승과 레저 인구 증가 등으로 늘어난 RV 차량 수요를 싹쓸이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2014년 전 세계적으로 561만 9900여 대를 판매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이미 현대자동차 단일 브랜드를 제쳤으며, 순이익은 닛산에 앞섰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의 강자 BOE(징둥팡·京東方)도 마찬가지다. BOE는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며,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전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회사다. BOE의 LCD 사업도 한국 기업이 모태다. BOE는 2002년 하이닉스의 TFT-LCD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해 디스플레이 사업을 꾸렸다. 당시 현대는 TV 시장이 브라운관에서 LCD 등 패널형태로 바뀔 것으로 점치고 일찌감치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모기업의 해체와 경영난에 부딪히면서, 알토란같은 회사를 BOE에 넘겼고 BOE는 현재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성장했다.
BOE는 지난해부터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에 도쿄돔 17배 규모의 LCD 패널 공장 설립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10.5세대 공장으로 한국·일본이 주력하는 7세대보다 앞서며, 투입되는 돈만 20조 원에 달한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37%로 떨어지는 데 비해 중국·대만은 42%로 오를 전망이다. 중국의 물량 공세로 LCD 가격이 떨어져,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BOE는 칭화유니그룹과 더불어 메모리반도체에 도전할 계획이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양분하고 있는 시장에 큰 위협이 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를 ‘7대 신성장 산업’으로 선정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10월 미국업체 샌디스크를 190억 달러(21조 9000억 원)에 인수한 것을 비롯, 미국 웨스턴디지털그룹·대만 파워텍을 잇달아 사들였다.
여기에 중국 기업은 삼성전자 등 국내 인력에 대해 최소 3배, 많게는 9배의 연봉을 최소 3년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스카우트하고 있다. 취업 제한이 걸린 기간 동안에도 집과 자동차를 제공, 중국 거주를 돕는다. 구조조정에 내몰린 국내 엔지니어가 중국 기업의 손짓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최근에는 수출이 아니라 내수시장,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콘텐츠 분야까지도 중국 기업이 잠식하고 있다. 중국 자본의 유입이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에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2014년부터 다수의 중견 제작사들이 중국에 넘어가고 있어 경계심이 커진다.
드라마 <올인>과 <주몽>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제작한 초록뱀미디어는 중국 최대 콘텐츠 배급사인 주나인터내셔널에 매각됐다. 1000만 영화 <변호인>과 <7번방의 선물>을 배급한 배급사 뉴(NEW)는 중국의 화처미디어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5%를 단번에 사들였고, 중국 소후닷컴은 배우 김수현과 배용준 등의 소속사인 키이스트에 150억 원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중국 상하이자동차 홈페이지(왼쪽)와 시진핑 국가주석의 BOE 충칭 공장 방문 화면 캡처.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임업의 경우 중국 최대의 게임회사 텐센트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텐센트는 국내 모바일 게임사 ‘네시삼십삼분’에 10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했고, 모바일게임 ‘아이러브커피’를 만든 파티게임즈에도 200억 원을 투자해 2대주주로 올라섰다. CJ게임즈(현 넷마블게임즈)에도 5300억 원을 투자했고, 이보다 앞선 2012년에는 카카오에 720억 원을 투자했다. 한류 콘텐츠 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공습으로, 경영권은 물론 콘텐츠 제작 주도권까지 중국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 깔려있다.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인 내수 기업의 경우 중국의 M&A(인수·합병) 손길에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1979년 ‘보라유통산업’으로 시작한 토종 1호 유아용품업체 아가방앤컴퍼니도 이제는 중국 회사다. 아가방앤컴퍼니는 실적 악화와 경영권 분쟁 등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다 지난 2014년 11월 라임패션코리아에 매각됐다. 아가방앤컴퍼니를 사들인 라임패션코리아는 중국의 여성복 브랜드 ‘랑시’를 운영하는 랑시주식유한회사의 한국 의류 도소매 회사다.
토종 완구 회사인 영실업도 지난해 홍콩계 사모펀드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에 팔렸다. 블랙박스 전문업체인 미동전자통신도 중국계인 신세기그룹 산하 펀드로 넘어갔다. 아가방앤컴퍼니는 중국의 2자녀 정책에 맞춰 가파른 성장이 기대되며, 한국 시장으로 제품 역수출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또봇’ 열풍이 시들하지만, 영실업 역시 국내 시장을 겨냥해 ‘바이클론’ 등 새로운 완구를 지속해서 내놓고 있다. 중국 기업의 한국 내수시장 공습이 시작된 셈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막연하게 갖고 있던 공중증(恐中症)이 차츰 현실화하고 있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