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건에 휘말린 강남 유명 금 거래소 본점. 원 안은 굳게 닫힌 사무실 출입문.
지난해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강남 유명 금 거래소의 신임 회장 취임식이 대대적으로 열렸다. 취임식에는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고, 진행은 유명 중견 탤런트가 맡았다. 신임 회장 A 씨는 취임사에서 “각 가정이 보유하고 있는 반지, 목걸리, 귀걸이 등 다양한 형태의 금이 장롱에서 잠자고 있다”며 “금 거래 활성화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위해 전국 곳곳으로 1인 창조기업 형태의 금 거래소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취임식에 참석한 수십 명의 투자자들이 업체에 대한 신뢰감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
해당 업체는 지난해 1월 설립됐다. 투명한 금 거래 활성화를 사업 방식으로 내세우며 국제금무역총연합회 승인을 받는 등 공신력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했다. 대대적인 홍보에 투자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금값 시세가 낮아지는 시기라 잘만하면 큰 재테크 수단이 될 것이라는 황금빛 기대감도 작용했다. 업체는 서울에 분점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열린 신임 회장 취임식은 업체가 한층 도약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국회에서 취임식이 열렸다는 나름의 상징성도 있었다.
실제로 업체 한 관계자는 “다단계해서 없어지고 먹고 튀는 회사를 국회에서 해주겠느냐”며 투자자들을 설득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금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취임식 현장은 일부 매체에서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떠들썩한 행사가 끝난 이후 업체 내부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일부 업체 관계자들이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했던 투자자들도 점차 의구심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경 대표이사를 포함 임직원 전원이 잠적을 하게 된 것이다.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경찰과 피해자들에 따르면 업체는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으로 사기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지난해 11월경부터 있었다. 업체는 피해자들에게 투자를 하면 한 달에 투자금의 20%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금을 모아 금을 싸게 매입한 후 자체 보유한 매장에서 이윤을 붙여 되팔아 수익을 내겠다고 설득했다. 실제로 첫 달에는 투자자들에게 20% 수익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두 번째 달이 되자 수익은커녕 그대로 투자금을 들고 사라진 것이다.
현재까지 피해자는 40여 명에 피해 액수는 최소 20억여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이미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이다. 고소인 조사는 마쳤지만 업체 대표가 잠적을 한 탓에 피고소인 조사는 아직 하지 못했다. 행방이 파악되는 대로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피해 규모가 큰 만큼 향후 고소를 제기할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치러진 신임 회장 취임식. 회장도 취임 이후 곧 사퇴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여러 뒷말은 여전히 무성하다. 무엇보다 업체가 국회에서 어떻게 행사를 진행했는지 여부다. 업체가 국회에서 세를 과시하고 신뢰도를 높인 만큼 중요하게 짚고 가야 할 부분인 셈이다. 의원회관 대관의 경우 반드시 의원실을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 뒤에 정치권 인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행사 당일 실제로 A 의원의 명의로 대관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A 의원 측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A 의원 측 관계자는 “지인이 하도 부탁하기에 몇 번 거절하다 결국 대관을 해줬는데 이런 사고가 터지니까 정말 깜짝 놀랐다. 나중에 지인에게 항의하니 ‘정말 미안하다. 자기도 당했다’고 얘기를 하더라”라며 “A 의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대관을 함부로 해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라고 해명했다.
A 의원뿐만 아니라 정치권 원로 인사인 B 전 의원도 암암리에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B 전 의원은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정치인으로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업체 핵심 관계자 중 한 사람이 B 전 의원과 연관이 있고, B 전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의혹이다.
B 전 의원 측 관계자 역시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B 전 의원과의 연관성은 극구 부인했다. 해당 관계자는 “업체 관계자가 B 전 의원과 과거 인연을 잠깐 맺은 사람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서 B 전 의원의 얘기가 나온 듯한데 정작 B 전 의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업체가 뭔지도 모르고 행사에 참여도 안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취임식을 대대적으로 열며 얼굴을 내민 업체의 신임 회장 역시 여러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인물로 신망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B 전 의원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 핵심 관계자가 신임 회장을 끌고 온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신임 회장은 취임 일주일 만에 사퇴를 했다고 한다. 신임 회장 측 한 관계자는 “업체 관계자가 지인이라 부탁을 들어주고 회장에 취임했는데 막상 취임하고 보니 사기 업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바로 내용증명 등을 보내고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라고 전했다.
결국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금 거래소 사기 사건은 업체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잠적함에 따라 수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다른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속속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 규모가 큰 만큼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연계됐다는 의혹 부분은 수사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다”라고 전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직접 해당 금 거래소를 찾아갔으나 이미 사무실은 모두 정리되거나 출입문이 굳게 잠긴 상태였다. 업체 관계자들에게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결국 닿지 않았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