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거 출마자들이 평균 사용하는 선거비용은 약 8000만 원. 닥터 나카마쓰는 2년에 한 번씩 꾸준히 출마하고 있으니 그때마다 적어도 8000만 원의 돈을 지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닥터 나카마쓰는 도쿄에서도 최고급 주택가인 세타가야구에 살고 있다. 저택 공사비만 300억 원 가까이 들었고 ‘기발한 발명을 위해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황금같이 지내자’는 의미에서 황금으로 된 화장실도 마련했다. 억만장자가 아니고서야 꿈도 못 꿀 일들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막대한 부를 쌓았을까. 언뜻 ‘발명으로 큰돈을 번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부터 살펴보자. 폴짝폴짝 높이 뛸 수 있는 점핑슈즈, 자체 개발한 ‘섹스 방정식’을 이용해 만든 성감도 3배 증진(최음제) 스프레이, 20분만 앉아 있으면 계산 능력이 좋아진다는 의자 등등 닥터 나카마쓰의 발명품 중에는 실제로 상품화되어 크게 히트한 건 없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위대한’ 발명 특허가 존재한다. 가령 닥터 나카마쓰는 자신이 ‘플로피디스크의 첫 발명자’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1952년 ‘나카비전’이라는 물건을 특허출원해 인정받았는데, 이것이 플로피디스크의 원조라는 것이다. 나카비전은 축음기로 음악을 들을 때 레코드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불편한 점을 레코드에 재킷을 씌우고 실제 재생되는 부분만 구멍을 뚫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취득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보를 저장하는 플로피디스크와는 다르다.
반면 플로피디스크는 미국 IBM에서 근무했던 앨런 슈거트가 개발해 1970년 특허를 출원, 1971년부터 상용화됐다. 그런데 당시 IBM은 기술과 상관없는 유사 특허 취득자들의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닥터 나카마쓰는 자서전을 통해 “IBM 부사장이 전용기를 타고 직접 찾아와 특허를 사갔다”고 언급했으나 일각에서는 “나카마쓰가 미국으로 날아가 IBM 측과 접촉했고 일부 특허사용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후사정이 어찌됐든 IBM이 1979년 일본에서 플로피디스크 판매를 시작할 때 그에게 특허 대가를 지불한 것은 맞다. 그 뒤 나카마쓰는 자신이 “플로피디스크 최초 발명자이며 세계를 크게 바꿨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지만 IBM 측은 “특허사용 계약을 나카마쓰와 맺긴 했으나 그건 플로피디스크 기술 관련이 아니다. 플로피디스크는 IBM이 자체 개발했다”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다.
점핑슈즈.
1991년부터는 도쿄 도지사 선거에 무려 7번, 참의원 선거에 5번 출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이색 공약을 내세워 눈길을 모았는데, 예를 들어 “당선되면 북한 미사일을 U턴 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겠다” “미발표 발명품을 전부 공개해 일본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식이었다. 안타깝게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지만, 홍보 효과는 탁월해선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밖에도 자신을 포함해 ‘세계 천재들의 회의’를 개최하는 등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그칠 줄 몰랐다.
또한 스스로 발명가로서의 업적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었다. 그는 “세계발명대회에서 11년 연속 그랑프리를 수상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주간신조>는 “경기 주최자인 국제발명협회 회장이 나카마쓰 본인이라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의 에디슨’이라는 유명세가 따르면 따를수록 한쪽에서는 “나카마쓰의 발명품은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리에서 짜낸 것을 종이에 써 특허권자가 됐지만, 실제로 만든 건 거의 없다” 등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혹자는 닥터 나카마쓰를 두고, 특허 출원을 잔뜩 한 다음에 비슷한 물건이 히트를 치면 소송으로 수익을 내는 ‘특허 사냥꾼’에 견주기도 한다. “누구보다 빨리 특허를 출원하는 민첩함이 그의 재능이며, 이것을 사업모델로 확장시킨 것이야말로 닥터 나카마쓰의 발명”이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도 닥터 나카마쓰는 2005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해 또 한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그노벨상은 재미있고 기발한 업적을 발굴하는 상으로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수여된다. 닥터 나카마쓰는 34년 동안 자신이 먹은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음식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공로로 이 상을 수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78세였던 닥터 나카마쓰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 계산에 따르면 144세까지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중년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닥터 나카마쓰 저택에 마련한 황금 화장실과 그가 개발한 손목에 차는 휴대전화, 성감도 세 배 증진 스프레이(왼쪽부터).
다만, 그는 “정말 암에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2년의 시한부 인생을 넘어서 하루라도 살고 있다면 내 발명이 증명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닥터 나카마쓰는 “한 달 내로 기자회견을 열어 상세히 보고하겠다”면서 “그때 회견장에 내 관이 있거나 내가 살아 앉아 있거나 경우의 수는 두 가지”라는 농담을 던지는 등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위드뉴스>는 “닥터 나카마쓰가 암 치료 로봇을 발명했다고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