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첫 통합 창당준비위원회 기획조정회의가 지난 27일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렸다. 이 회의 도중 자리를 먼저 떠나는 국민회의 천정배 의원이 국민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민의당과 국민회의 통합에는 김한길 의원이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일단 모멘텀(상승 동력)은 마련했다. 다만 지속 가능성 여부는 예단할 수 없다. 갈등 화약고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의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맞불작전으로 안·천·김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 안·천 통합은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고도의 승부수’인가, 아니면 제3정당 잔혹사를 이어가는 ‘자충수’인가. 판도라 상자는 곧 열린다.
안·천 통합은 극비리의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양측 간 통합이 알려진 것은 지난 1월 25일 오전 10시 5분께. 안 의원은 당일 오전 9시 서울 마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 기획조정회의 직전에야 탈당한 의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김 의원과 천 의원은 한 시간 전인 오전 8시께 국회 의원회관 김한길 의원실에 들어가 통합 합의문 자구수정에 돌입했다. 양측 최대 주주인 안 의원과 천 의원, 통합 막후 역할을 한 김 의원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앞서 이들은 19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비밀리에 만나 총선 승리를 위한 통합 전략에 합의하면서 철옹성 같던 장벽의 물꼬를 텄다. 이후 안·천의 중재자였던 김 의원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천 의원을 만나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십고초려’를 통해 ‘김한길 존재감’을 부각시킨 셈이다. 당시 천 의원은 ‘소통합’ 이외에 더민주와의 당 대 당 통합도 염두에 두고 친노계와 접촉했다. 야권 외곽지대에 있던 ‘박주선·정동영’과의 3자 통합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른바 ‘꽃놀이패’를 고리로 양측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더민주 내부에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간극이 한층 커지자, 천 의원이 결국 더민주로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범주류인 정세균계 관계자는 당시 천 의원의 향후 행보에 대해 “갈 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아니냐”면서 “결국 더민주와 당 대 당 통합을 할 것으로 본다. 인재영입에 실패한 천 의원은 ‘호남 자민련’에서 벗어나고 우리는 ‘호남복원’ 기치를 들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에 천 의원 측은 “모든 것은 열려있다”면서 줄타기의 끈을 쥐고 제1야당과 안 의원을 흔들었다.
야권 세력재편 기류가 급격히 바뀐 것은 24일. 안 의원은 이날 인천 부평구청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인천시당 창당대회에서 “모든 대권 후보들에게 당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국민의당 조기 합류 당시 불거진 ‘대권 안철수-당권 김한길’ 의혹을 불식하는 일종의 승부수로 풀이됐다.
인천시당 대회를 마친 안 의원과 김 의원은 이날 저녁께 천 의원에게 SOS를 쳤다. 광주에 있던 천 의원은 곧바로 서울로 직행했다. 이 과정에서도 김 의원의 역할이 막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윽고 밤샘 협상이 이어졌다. 새벽을 지나 오전 10시 30분 안·천·김과 국민의당 윤여준·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은 합의문을 최종 조율했다. 2014년 3월 ‘007작전’을 방불케 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발표와 흡사했다. 지난 27일에는 박주선 의원도 합류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한길 역할론’, 다른 하나는 ‘통합 합의문’ 내용이다. 안·천·김 3자 회동의 물꼬를 튼 1월 19∼25일 전후로 국민의당은 ‘내부 알력설’로 몸살을 앓았다. 김한길계인 김관영 의원(국민의당 창준위 디지털정당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이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으로부터 “한상진 꺾고 안철수계(?) 조용히 있으라 하고 다시 한 번 심기일전”이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더민주 탈당파 그룹 내부가 국민의당 ‘그림자 실세’로 이태규 창준위 실무지원단장을 지목하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탈당파 그룹 한 관계자는 “사실상 이태규가 실세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내부 알력설에 휩싸인 국민의당은 이내 위기에 빠졌다. 안 의원의 인재영입은 지지부진했다. 더민주가 연일 인재영입을 지렛대 삼아 지지율 반등 기회로 삼는 것과는 대조됐다. 여기에 한 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은 호남 지지층 이탈을 불렀다. 애초 안 의원이 공략대상으로 삼은 호남과 중도·무당파의 쌍끌이 전략은 힘 한번 쓰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를 놓고 ‘안철수 의존성’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 통합한 데 이어 박주선 의원(왼쪽서 네 번째)이 추진하던 ‘통합신당’과도 지난 27일 전격 통합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야권 소통합을 꾀한 국민의당과 ‘박준영·김민석’ 그룹의 중통합 과정,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합류 등도 김한길 역할론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김한길 역할론이 커지면 커질수록 신진 인사를 통한 안철수 그룹의 새정치 효과가 반감된다는 점이다. 안 의원으로선 안·천·김 통합이 총·대선 승리의 도약대가 아니라, ‘도로 민주당’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통합이 화학적 결합은커녕 ‘뺄셈의 정치’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합의문도 갈등의 화약고다. 이들은 통합 합의문에 ‘정치인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합이어야 한다’, ‘개혁적 가치와 비전을 지닌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을 총선 후보로 공천하기 위해 규칙과 절차를 마련한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20대 총선에서 공천 혁신 통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이는 그간 천 의원이 주장했던 ‘개혁 공천’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더민주와 통합을 논의했던 천 의원은 ‘5 대 5’ 지분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통합 과정에서 당 구성 비율 등 구체적인 지분 논의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속도전식 통합을 위해 천 의원의 의중을 서둘러 반영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더민주 탈당파 주승용 의원은 “호남 지역 다선 의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물갈이하는 것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향후 개혁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다툼을 예고한 대목이다.
딜레마는 이뿐만이 아니다. 창당 일자(2월 2일)에 쫓기는 국민의당은 당헌·당규 제정부터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중도정당에 방점을 찍은 기존의 그룹과 개혁적인 천정배 그룹 간 노선·이념 투쟁이 본격화할 경우 야권 내부분열로 자멸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거기에 진보색이 뚜렷한 정동영 전 장관이 합류할 경우 노선투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창준위 당헌기초위원장인 유성엽 의원은 ‘숙의 선거인단’ 관철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내부 반응은 차갑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경우에 따라 낙천한 호남 의원들이 탈당, ‘안철수 심판론’을 들고 야권 분열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대표직 선출과 야권연대 여부도 논란거리다. 한상진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당의 CEO(최고경영자)는 책임지고 결정 내리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며 안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반면, 더민주 탈당파 내부에선 사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야권연대 방식도 ‘동상이몽’ 그 자체다. 안 의원이 독자세력화에 방점을 찍는 것과는 달리, 천 의원은 그간 ‘수도권 연대-호남 경쟁’ 방식을 주창했다.
안·천·김 갈등의 뇌관이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 이후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 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안·천·김 통합은 호남 지지율 이탈에 처한 안 의원과 지역정당으로 전락한 천 의원의 조급함이 낳은 결과물”이라며 “호남민심도 잃고 중도·무당파로부터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혹평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