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스타플레이어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KBO리그가 흥행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시즌 프로야구의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분명 위기가 닥칠 것이다. 외적, 내적인 변화가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프로야구가 스포츠 산업으로 정착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달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야구는 사상누각이다. 모기업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모기업이 흔들리면 프로야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그런 점에서 제일기획이 삼성 스포츠단을 흡수해 운영하는 부분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두 번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KBO리그의 선수들이 확 늘어나면서 스타플레이어가 빠진 공허함을 KBO리그가 얼마나 잘 채울지 궁금하다. 야구는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한 고정 팬이 많기 때문에 한두 명의 스타급 선수들이 빠져나가도 흔들리지 않겠지만 6명의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상황은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선수들의 윤리 의식이 새로이 정립돼야 한다. 또 다시 도덕적으로 지탄 받는 사건 사고들이 발생한다면 팬들은 야구를 외면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마 야구가 없인 한국 야구의 미래는 없다.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로야구의 고정 팬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인기와 관심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자, 한 번 생각해보자. 작년엔 류현진이 수술하면서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강정호가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팬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리그가 선전한 데에는 김성근 감독의 역할이 컸다. 김 감독이 다시 프로에 복귀하고, 그의 훈련법과 경기내용 등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거워지면서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렇다면 올해는 무엇을 내세워서 메이저리그에 쏠린 시선을 국내 야구로 끌어올 수 있겠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전체적인 경기 수준을 높여야 하고, 선수들은 허슬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경기 시간도 단축시키고, 구단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여야 한다. 이런 부분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우리 야구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직행할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 건 공감하지만, 그래도 프로야구는 프로야구이다. 타종목에서 부러워 할 정도의 단단한 팬덤이 형성돼 있다 보니 다양한 위기 속에서도 야구는 잘 버텨 왔다.
“물론 긍정적인 요소도 많다. 일단 10개 팀 감독들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는 게 재미있다. 올해는 상위권의 팀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FA나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의 손실과 이득을 본 팀들이 존재하기에 이 부분은 팀 성적으로 직결된다. FA 선수들의 고액 연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그래도 야구 잘해서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야구를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팬들이 많다. 야구인들이 공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허 위원은 인터뷰 때마다 공부하는 학원 스포츠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일선 지도자들 사이에선 일반 학생들처럼 공부하고 남은 시간에 운동해선 실력을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 감독들도 자신이 배우고 경험했던 훈련법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야구만 해선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배출할지언정, 인성이 훌륭한 선수를 만들긴 어렵다. 지금까진 무조건 훈련만 반복하는 기계적인 선수 배출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버티는 선수가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운동선수로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은퇴 후의 삶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왜 발생한다고 생각하나.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들이 받는 교육을 무시하고 운동만 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터지는 것이다.”
양산시 ‘강민호 야구장’ 건립 협약식(왼쪽)과 고척돔 내부 모습.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왼쪽)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최근 경남 양산시에 최초로 현역선수 이름을 딴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강민호 야구장’이었는데, 허 위원은 그 야구장 준공식에 참석해서 “강민호보다 더 많은 돈을 번 선수들에게 야구장 짓는데 힘을 보태날라고 설득했지만 다들 거절했다. 강민호만이 해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강민호는 이 야구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2억 원을 기부했고, 양산시에서 3억 원을 보태 총 5억 원을 들여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장을 개장했다).
“난 개인적으로 최경주 선수를 좋아한다. 그가 우승을 많이 해서가 아니다. PGA 투어에서 활약하면서 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형태로 기부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들은 이 기부 문화에 인색한 편이다. 기부를 하더라도 스폰서를 끼고 하려 하지,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걸 꺼려한다. 그 책임은 선배들한테 있다. 선배들이 그런 문화를 조성하지 못했고, 그런 문화를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후배들로선 보고 배울 게 없었던 것이다. 요즘 선수들은 스폰서로부터 받은 물건을 내놓으면서 마치 자신이 기부한 것처럼 떠들어댄다. 진정한 기부는 자기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돈이 없는 선수들은 재능 기부를 하면 된다. 프로 선수로 살아가며 부와 명예를 얻은 선수들이라면 혜택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 이상을 베풀어야 한다. 선수들이 돈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스포츠를 통해 그만큼 먹고 살게 됐으면, 어느 정도 부를 이뤘으면,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고척돔구장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고척돔을 돔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도 높은 지적을 했다.
“솔직히 지금도 고척돔을 떠올리면 열불이 난다. 솔직히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는 지경이다. 어떻게 그런 설계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선수단 더그아웃에 지붕이 없고, 불펜은 지하에 있고, 관중석도 30개씩 붙어 있고 공간도 너무 협소하다. 고척돔을 완성하기 전까지 서울시는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인 내게 단 한 번도 자문을 구한 적이 없다. 어떻게 4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구장이 2700억 원을 들이고, 또 그 엄청난 돈이 지급된 경기장이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완성됐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고척돔이 완성되기 전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서 지금의 설계대로 진행이 될 경우 백 프로 실패한다고 직언을 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더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민들 세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결과가 잘못됐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자기들 집 같으면 그렇게 짓겠는지를 묻고 싶다. 공무원들이 예산 따는 데에만 관심 있고, 그걸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 2700억 원이나 들여 이런 식의 돔구장을 지었다는 게 알려지면 외국에서도 비웃을 일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야구장 광고권, 운영권을 구단이 아닌 지자체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문제점을 지적해왔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운동장만 지어놨다고 해서 광고가 들어온다고 생각하나. 잠실야구장에 LG와 두산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그곳에다 광고를 낼 거라고 보나. 절대 아니다. 프로야구팀이 있기 때문에 광고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돈을 서울시가 다 가져가나. 아무리 모기업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라고 해도 구단들이 자립할 수 있게끔 수익구조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처럼 광고와 운영권이 모두 지자체 소유가 된다면 프로야구팀은 노래만 부르고 돈을 받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야구단 산업화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선 지자체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허구연 위원은 야구선수들로부터 존경받은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주례 청탁을 많이 받는다. 처음엔 거절을 거듭하다가 최희섭이 결혼할 때 처음으로 주례를 맡았고, 이후 비시즌 때만 되면 그는 결혼식 주례자로 거듭난다. 허 위원이 야구 선수와 결혼하는 신부에게 빠트리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있다. “거울보다 요리책을 더 많이 봐라.”
스프링캠프를 통해 전력 향상을 꾀하는 10개 팀의 올 시즌 성적을 묻는 질문에 대해 허 위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삼성의 전력이 약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안지만, 윤성환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 한화가 전력 보강을 많이 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다. 올 시즌은 지난해 중하위권 팀들이 올라서면서 전체적으로 평준화가 될 것이다. 그중 막내팀 kt가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