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몇 년 동안 데뷔를 위해 애쓴 걸그룹 준비 팀이 있는데 멤버 가운데 한 명이 회사 투자자와 스폰서 관계를 맺고 있다. 만약 그 멤버가 스폰서 관계를 거부하면 투자도 끊겨 해당 걸그룹은 데뷔도 무산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함께 고생한 멤버들 생각에, 또 데뷔를 위해 고생한 지난날에 대한 생각에 그런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게 된다. 자기가 희생해서 함께 고생한 멤버들과 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폰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 처지에 놓인 아이 입장은 말 그대로 외통수다.”
최근 달라진 연예계 스폰서에 대해 설명하던 한 중견 연예관계자가 들려준 말이다. 소속 연예인은 물론이고 소속사 대표까지 유명한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데뷔하는 걸그룹 멤버들은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만 연예관계자들조차 생소한 이름의 중소 연예기획사도 많고 거기서 데뷔하는 걸그룹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잘 돼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걸그룹이 더 많다. 방송 활동은 미미하지만 행사 무대 등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걸그룹도 많고 한두 달 반짝 활동하다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불손한 의도로 운영되는 중소 연예기획사들도 있다. 그런 곳에서 이런 부적절한 투자가 거듭되고 있는 셈이다. 가요 관련 프로그램에서 오래 활동한 한 예능 PD는 가요기획사라 불러선 안 될 사기꾼 회사들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방송국에서 일하면 처음 듣는 회사에서 새로 데뷔한 걸그룹이라며 PR용 CD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신설 가요기획사일지라도 홍보를 위해 들어오는 매니저는 대부분 아는 얼굴들인데 전혀 처음 보는 이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곤 PR용 CD를 내밀면서 곧바로 얼마면 방송에 출연시킬 수 있냐며 달라는 대로 돈을 주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성공적인 데뷔가 목적이 아니라 데뷔해서 방송을 한두 번 타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다. 아는 매니저들을 통해 그 까닭을 들어 보니 ‘데뷔 앨범 발매와 방송 몇 회 출연, 기사 몇 건 노출’ 등을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서 데뷔시킨 걸그룹이라 그 조건만 채우려고 하는 거라고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멤버 가운데 한 명의 스폰서가 투자자다. 결국 그 조건을 충족시켜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해당 걸그룹 멤버들에게도 해줄 건 다 해줬다는 얘길 하려는 것 같다. 이만큼 회사가 밀어줬는데 못 뜬 건 결국 너희들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거액의 투자금만 챙기는 수법 같다.”
아예 이런 스폰서를 통한 투자자 모집을 위해 프로젝트 팀을 꾸리는 연예기획사도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멤버를 모으는 과정부터 데뷔해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스폰서 관계를 통해 투자를 받는 것이 최우선인 걸그룹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멤버 가운데 한 명을 엄청 부유한 집 자제로 뽑는 방식이 유행이었다. 이는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모두 해당되는데 사실상 그 멤버의 집에서 거액을 투자 받아서 데뷔를 시키는 방식이었다. 지금 보면 이는 그나마 좋은 방식이었다. 요즘에는 다른 연예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다 아쉽게 데뷔를 못한 지망생들이 많다. 이들 가운데 유독 리더십이 뛰어나고 의리가 남다른 친구를 찾는다. 이런 친구들을 데려다가 리더를 시킨 뒤 은밀히 스폰서를 대준 뒤 네가 희생하면 팀이 데뷔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또한 유독 집안이 어렵다고 알려진 지망생도 타깃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형편을 악용해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그렇게 멤버가 모이면 멤버 가운데 한 명과 스폰서 관계를 맺을 투자자를 찾아 멤버들의 프로필을 보여주고 접근한다. 그런 회사는 사무실도 열악하고 연습도 대충 시키지만 프로필 하나는 큰돈을 들여서 정말 화려하게 찍는다.”
가요관계자들은 이런 형태의 회사를 가요기획사로 분류하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가요계 데뷔를 빌미로 사실상 사기를 치는 회사이기 때문이라는 것. 수년 전 이런 형태의 회사가 검찰에 적발돼 매스컴에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요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런 형태로 불법 운영을 하던 회사가 경찰이나 검찰에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고 한다. 또한 이런 불법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서 데뷔할 경우 결코 가수가 되고 싶었던 본래의 꿈을 이룰 수 없으니 지망생들의 주의가 절실하다고 지적하는 가요관계자도 있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