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악플러 처벌에 소극적이었던 연예인들이 최근 법적 대응에 나서거나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왼쪽부터 설현,아이유,수지.
물론 스타들이 악플러를 향한 강경 대응에 나서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됐다. 약 7~8년 전부터 배우 송혜교, 김태희 등 톱스타들이 자신들을 향해 악성 댓글을 쓰고 허위 루머를 퍼트린 누리꾼을 처벌해달라는 고소를 진행했다. 이후에도 비슷하게 처벌 의사를 밝힌 스타들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악플러를 붙잡고 이들을 처벌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법 적용이 어려웠다기보다 악플러에게 죄를 묻지 않는, ‘선처’를 선택한 연예인이 많았던 탓이다. 또한 루머의 근원을 뿌리 뽑겠다고 나선 연예인들 가운데 주위 시선을 의식하고 악플러의 개인 사정을 고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악플러를 용서한 이들도 적지 않다.
# 평범한 주부부터 미성년자까지…‘선처의 딜레마’
연예인을 향한 악성 댓글의 내용이 점차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모하지만 정작 이런 글들을 작성하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그룹 미쓰에이의 멤버 수지는 2014년 자신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온라인을 통해 반복해 유포한 누리꾼을 붙잡아 달라고 사이버수사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수사를 통해 붙잡힌 누리꾼은 30대 여성 회사원 A 씨. 그는 수지의 SNS에 지속적으로 ‘연예계에서 추방되라’,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려라’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악플을 작성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입건됐다.
A 씨가 붙잡히고 나자 연예계에서도 적지 않게 놀랐다.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주부이자 회사원이었기 때문. A 씨가 수지를 향해 악성 댓글을 작성한 이유도 단순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수지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질투심을 느껴 글을 썼다”고 진술했다.
체조 국가대표 손연재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해 손연재를 향해 악의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온라인에 쓴 30대 여성 B 씨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B 씨는 포털사이트 스포츠게시판을 통해 ‘돈연재’, ‘발목 부상인데 갈라쇼 연습을 10시간씩 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작성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됐다.
붙잡힌 악플러들 가운데는 평범한 주부뿐 아니라 미성년자도 많다. 이들의 사법처리를 놓고 연예인들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피의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악플러를 용서한다면 재판에 넘겨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미성년자들이 해당 연예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왼쪽부터 손연재,이정재,김준수
이럴 때면 연예인은 붙잡힌 악플러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다시는 악플을 쓰지 않겠다’는 등 내용을 담은 각서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각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꾸준한 ‘감시’가 필요하다. 연예계에서 악플러의 존재를 “악순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 증거수집 관건…팬들도 나서
악플러 고소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증거 수집’이다. 하지만 연예인이나 그 소속사의 인력으로는 이런 악플러를 찾아내 혐의를 증명할 만한 증거를 찾기가 버거운 게 사실. 연예인 관련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때문에 스타들은 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악플러를 찾아내 감시하는 권한을 직접 맡기는 식이다.
가수 아이유는 지난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인신공격을 해온 악플러를 고소했다. 당시 그의 팬들은 악플러들을 직접 찾아내고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도왔다. 최근 악플러를 고소할 뜻을 밝힌 그룹 AOA 설현 역시 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악플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설현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악플러 대응에 대한 제보와 협조를 바란다”고 알리며 “팬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 게재된 명백한 악성 댓글이나 루머를 복사한 이미지나 주소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도 부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이상 악플러를 ‘선처하지 않겠다’고 나선 스타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고소와 용서, 그 다음에 또 이어지는 2차 피해의 악순환을 반복해 겪은 연예인들이 이제는 악플러가 근절될 때까지 법적인 대응을 멈추지 않겠다는 방식으로 돌아선 셈이다.
아이유가 대표적이다. 3년 전 악플러를 고소했다가 재발방지를 약속받고 용서했던 그는 같은 문제가 반복해 벌어지자 이번에는 “선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소속사 로엔트리는 “2012년에도 악플러를 고소해 사회봉사를 하는 선에서 선처를 했지만 갈수록 악성 댓글의 강도가 심해져 다시 법적인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