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남성 또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제품들에서 ‘성’의 장벽을 허물고 시장을 확대하는 기업체가 늘어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따로 여성전용 매장이 준비되어 있다면 어떨까. 맞춤 가발 업체 하이모는 지난 2010년 여성가발 전문 브랜드 ‘하이모 레이디’를 선보였다. 론칭 2년 만에 하이모 전체 매출의 1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만큼 고객의 반응이 좋다는 방증이다.
하이모 관계자는 “가발이 기존 탈모를 가리기 위한 방편에서 이미지 변신을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하이모 레이디를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하이모 레이디 매장 관계자는 “기존의 하이모 브랜드처럼 탈모를 가리기 위해 찾는 여성 고객도 있지만 패션 아이템으로 가발을 찾는 고객이 더 많다”고 말했다.
여성 고객의 마음을 잡으려는 시도는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숙취해소음료 시장이다. 2005년 600억 원 규모이던 숙취해소음료 시장은 2015년에는 2000억 원에 다다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지난해 ‘순하리 열풍’이라 할 만큼 과일소주의 폭발적인 인기도 숙취해소음료 시장의 성장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 중 여성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20% 정도로 보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꾸준히 늘고 숙취해소음료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감도 희석되며 향후 여성 소비자의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1위인 CJ헬스케어의 ‘컨디션’은 20년간 4억 4000만 병(2012년 기준)이 판매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다. CJ헬스케어는 지난 2012년 여성은 남성과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해도 위와 간의 손상이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해 기존 컨디션 제품의 주요 성분과 함께 피부 보습에 좋은 히알루론산을 추가한 ‘컨디션 레이디’를 선보였다. CJ헬스케어 관계자는 “전체 숙취해소음료 시장에서 컨디션 레이디 제품 한 가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에 이른다”며 “2015년에는 전년 대비 80%의 매출 성장을 보였고, 레이디 제품의 출시로 인해 컨디션 제품군 전체의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동아제약에서도 지난 2013년 여성용 숙취해소음료 ‘모닝케어 레이디’를 내놨다. 동아제약 측은 “여성의 주류 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여성용 제품을 출시했다”고 출시 배경을 밝혔다.
반대로 여성이 주요 고객이었던 업계의 남성 고객 잡기도 한창이다. 대다수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삶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종종 소개되는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들은 SNS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외모뿐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들만큼 다이어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쥬비스 포맨’을 통해 30kg를 감량한 것으로 알려진 가수 노유민 씨의 비포&애프터.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색조화장품도 이제는 심심찮게 남성 고객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아직은 남성용 BB크림 등 일부 제품에 국한되어 있지만, 점차 남성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군에서 색조 제품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화장품 매장에는 품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몇몇 남성용 색조 화장품들 중에서 마치 여성용 콤팩트 파우더처럼 생긴 ‘에어쿠션’이란 제품이 눈에 띄었다.
매장 관계자는 “아직 에어쿠션 제품을 찾는 남성 고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한번 사용해 본 고객들은 확실히 효과를 체감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구매한다”며 “채용 면접에서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아이라이너와 립밤을 사용하는 남성 고객도 있다. 제품을 사용하면 확실히 생동감을 더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매장의 다른 관계자는 “평범한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색조 화장품을 구입해 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반면에 남성 화장품 라인에 색조 제품이 있으면 부담 없이 제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창일 연세필정신건강네트워크 공동대표(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대 사회는 성에 따른 고유 영역을 탈피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화장품을 통해 미를 추구하는 행위를 예로 든다면,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구분보다는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게 됐다”며 “기업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 즉 트렌드를 기업이 쫓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된 사회 모습에 맞춰 기업이 제품을 내놓는다거나 광고를 내보내면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효과는 있다”고 분석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