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식 김치를 담그고 있는 학생들. 맨 오른쪽이 씨엔룬(위). 국제외교학을 전공하는 뭉섬은 한국 유학을 꿈꾸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는 잘합니다. 스태프들이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학, 수학성적이 떨어져 지난주부터는 매주 토요일 학교 선생님을 어렵게 모셔다 과외(?)를 시킵니다. 10학년 아이들 8명이 대상입니다. 이렇게 성의를 다하니까 아이들도 낑낑거리며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뭉섬과 씨엔룬. 두 학생을 눈여겨보는 까닭은 두 학생은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를 가장 잘합니다. 질문이 많습니다. 뭉섬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가서 더 공부해서 국제기구나 양국 대사관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씨엔룬은 아직은 어리지만 한국으로 대학을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어합니다. 한국에도 인기 있는 셰프,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말합니다. 공부하고 돌아와 양곤에 있는 호텔의 요리사로 일하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때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 애가 물어옵니다. 그래, 요즘 아주 큰 호텔들 많이 짓고 있더라. 나중에 거긴 한국 사람이 많을 거야. 제가 대답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으레 두 학생이 제 곁으로 슬그머니 옵니다. 며칠 전엔 셋이서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교와 학과를 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국제외교학과와 요리학과. 저도 잘 모르는 분야입니다. 선생님도 잘 모르는데 나중에 어떻게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저희들은 장학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고 하던데요.
고심 끝에 제가 겪은 얘기를 해줍니다. “내가 한국서 실제 겪은 일이야. 내가 회사할 때, 일 잘하는 한 여직원이 있었어. 사회복지를 더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사표를 냈어. 일 잘하는 직원이라 붙들었지. 그래도 1년 영어공부 해서 간다고. 단호했어. 그래서 모아둔 돈 미국 가서 쓰지 말고 노르웨이로 가라고 말해줬어. 사회복지 하면 스칸디나비아 아니냐. 그러니 그 직원이 ‘그 나라 말도 모르는데 어떻게 갑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요’라고 해. 그래서 거기 영어 프로그램 있고 장학제도 있는 대학원 찾아서 전공학과장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봐. 한번 안되면 계속 써.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너희들 같으면 어떡허겠냐?”
저 같으면 받아주겠어요. 불쌍하잖아요. 뭉섬이 대답합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열성에 감동이 되어서 받아주는 거지. 그래서 정말 갔어. 동양의 쬐그만 나라, 한국 학생은 첨이래. 시간은 좀 걸렸지만 오슬로 가기 전에 고맙다고 밥도 샀어. 너희들은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데 무슨 걱정이냐? 너희들은 영어하고 한국어 두 가지로 편지를 써. 그때는 내가 편지내용을 도와줄게.”
이렇게 하여 두 학생의 아주 특별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얼마 전부터 뭉섬에게는 바둑을 가르칩니다. 여기 아이들은 다 체스를 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체스 말고 동양의 바둑을 배우라고 했더니 이 나라엔 바둑판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녀도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한국 갔다 오면서 그 무거운 바둑판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아직은 15점을 놓고도 382집을 지는 수준입니다. 바둑판의 칸이 총 361인데 그렇게도 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겪어봅니다. 다른 애들은 바둑이 어려우니까 알까기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둡니다. 하지만 뭉섬은 열심히 배웁니다. 한국 사람이 두는 게임이니까요.
씨엔룬에게는 한국 사람들이 잘 아는 시를 가르쳐줍니다. 오늘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입니다. 시를 설명해주니 ‘하나님’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구절 때문이겠지요. 씨엔룬은 아빠가 없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양곤으로 돌아오리라는. 먼훗날 우리는 양곤의 ‘아주 큰 호텔’에서 씨엔룬이 만드는 ‘유학파 한식’을 먹게 될 수 있을까요?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