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주민들이 나뭇잎을 상품화해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은 약 26억 원. 연간 1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농가도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인만 남은 두메산골에 놀라운 기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나뭇잎을 지폐로 바꾸는, 마법의 마을”이라고도 말한다. 고령화된 산골마을이 어떻게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들어본다.
가미카쓰 마을의 성공신화는 <이로도리, 인생 2막>이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가미카쓰 마을. 여느 산골마을과 다를 바 없었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다. 전통적으로 가미카쓰 마을은 임업과 귤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나 값싼 수입 목재에 밀리고, 한파가 몰아닥쳐 귤나무마저 죽자 순식간에 마을은 쇠퇴했다. 설상가상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마을은 폐촌 위기에까지 몰렸다.
당시 농협 직원이었던 요코이시 도모지 씨는 이 위기를 돌파하라는 특명을 받는다.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특산물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는데,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 초밥집에서 요리에 딸려 나온 단풍잎을 손수건에 소중히 싸는 여성을 발견하곤 무릎을 탁 쳤다. 고급 일식요리점들이 장식용 잎을 많이 쓴다는 점에 착안, 나뭇잎을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뭇잎이라면 가미카쓰 산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뿐더러 가볍기 때문에 힘이 약한 노인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요리점들은 장식용으로 쓰이는 나뭇잎을 수습생들에게 시켜 직접 따오게 했다. 허나 원하는 종류의, 색감 좋은 나뭇잎을 제때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골마을엔 흔한 나뭇잎이지만, 도시에서는 돈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직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 ‘나뭇잎 사업’ 이야기를 꺼냈을 땐 마을 주민들은 물론 농협 동료들까지 “지천에 널린 나뭇잎이 팔릴 리 만무하다” “바보 같은 얘기”라며 코웃음을 쳤다. 동조해준 농가는 불과 4채. 그것도 고령의 할머니들뿐이었다. 게다가 어렵사리 시장에 상품을 내놨으나 아무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요코이시 씨는 수년 동안 전국 요리점을 찾아다니며 판로를 개척했다. 필요로 하는 상품을 적시에 준비하기 위해 비닐하우스에서 나무를 재배하고, 당일택배 시스템을 가동하는 등 경쟁력도 갖췄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고령자가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사용하기 간편한 IT 기반을 구축, 각 농가마다 컴퓨터와 태블릿을 대여해주고 주문접수와 출하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일련의 노력들은 결실을 맺어 2003년 ‘나뭇잎 사업’ 매출액은 20억 원을 넘어섰고, 2012년에는 26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단 4가구로 시작했던 사업이 지금은 190여 농가로 늘어났으며, 지난해부터는 프랑스 등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이제 나뭇잎 사업은 가미카쓰의 주력 산업으로 뽑힌다.
어쩌면 “사업규모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출하하는 상품이 ‘나뭇잎’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야채나 과일이 아닌, 단순히 나뭇잎만으로 26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건 역시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주로 노인들의 ‘부업’으로 이뤄진다. 80대 고령의 할머니가 컴퓨터와 태블릿을 사용해, 나뭇잎을 지폐로 바꾸는 동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평범한 산골마을은 ‘기적의 땅’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귀향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이곳 노인들의 지식과 경험을 배우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연간 5000명 이상이 마을을 찾는다.
고급 일식요리(가이세키 요리) 장식품으로 쓰이는 나뭇잎을 ‘쓰마모노’라 부른다.
한편 가미카쓰 마을은 또 다른 ‘기적’을 꿈꾸고 있다. 다름 아니라 2020년까지 쓰레기 소각 양을 제로로 하겠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 재활용률을 100%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이 이 같은 운동을 펼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쓰레기 소각이 환경이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한 공기와 맛있는 물, 풍요로운 대지를 물려주자는 결의에서 ‘쓰레기 제로’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하고 있을까. 우선 생활 속 쓰레기를 34종류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쉽게 버리는 페트병도 뚜껑, 병, 라벨지 등으로 아주 세세하게 나누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처음에는 분류 방법을 지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어려움을 겪는 노인을 위해서는 주민 자원봉사자가 도와주는 식이다.
이렇게 분류된 쓰레기들은 각각의 재활용 업체와 제휴함으로써 자원으로 재활용된다. 쓸 만한 물건은 무료로 나눠주고, 오래된 천은 솜씨 좋은 마을 주민들이 소품이나 옷으로 만든다. 음식물 쓰레기는 어떨까. 퇴비로 만들어 쓰면 된다. 모두들 서로 돕고 협력해 쓰레기를 소각하지 않는 생활방식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만일 쓰레기가 배출될 시에는 최대한 재활용하자는 마음이다.
현재 가미카쓰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약 80%. 일본 최고 수준이다. 나뭇잎을 지폐로 바꾼 ‘마법의 마을’은 가장 친환경적인 ‘건강한 마을’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해외 언론들도 쓰레기 제로 운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 작은 산골마을에 큰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반가운 소식은 가미카쓰 마을에 매료되어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헌 민가를 활용한 카페가 개점을 하고, 지역의 찻잎을 생산 판매하는 조합이 탄생하는 등 창업 열기도 뜨겁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한때 폐촌 위기까지 몰렸던 가미카쓰 마을이 앞으로 어떠한 기적을 더 일궈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